주수자
소설가, 서울대학교 미술대학에서 조각을 전공하고 미국 콜케이드 신학대학원을 졸업했다. 2001년 『한국소설』로 등단했으며 소설집 『버펄로 폭설』 『붉은 의자』 『안개동산』 『빗소리몽환도』, 시집으로는 『나비의 등에 업혀』, 희곡 『복제인간 1001』, 영어 저서 『NIGHT PICTURE OF RAIN SOUND』 등이 있다.
권희민
물리학자, 서울대학교 물리학과를 졸업하고 미국 캘리포니아 공과대학(CAL TECH)에서 박사학위를 받았다. 프랑스 ILL(INSTITUTE LAUE LANGEVIN)과 스위스 SIN(SWISS INSTITUTE FOR NUCLEAR RESEARCH)에서 뉴트리노 실험을 했다. 미국 뉴욕 주 KODAK 연구소에서 근무하다가 귀국 후 삼성전자 부사장을 역임했다. 2018년까지 서울대학교 물리학과 객원교수로 있었다.
1장 _ 일상
「아침」 미역국의 무한함 018
우리가 먹는 음식들은 다양하게 보이지만 먹이사슬의 근간을 찾아가면 종착점은 식물이다. 식물은 탄산가스와 물을 원료로 하고 태양에서 오는 빛을 이용하여 포도당 형태로 에너지를 만든다. 이것의 빛의 에너지를 화학에너지로 바꾸는 식물의 광합성이다.
그러니까 모든 음식은 태양에서 오는 빛 에너지 덕분에 만들어진 것이고, 태양 에너지의 원천은 별들로 인해 형성된 것이다. 우리가 먹는 음식이란 모조리 이렇게 엄청난 고리들의 연속으로 이어지며, 궁극적으로 우주와 연결되어 있다.
「오전 10시」 먼지를 추적하다 024
우리가 쓸어버리는 먼지의 거의 대부분인 99.99%는 지구 내의 물질들이 순환하는 것들이다. 하지만 그 중에는 놀랍게도 우주적인 것들이 섞여 있다. 우주 탄생의 비밀을 담고 있는 먼지가 아지 미미한 소량이지만 있을 수 있다.
「오전 11시」 꽃과 색과 눈과 뇌 028
색도 개별적이다. 물론 종의 관점에서 묶인다. 그러나 개체의 종마다 두뇌의 인식에 관련되기 때문에 어떻게 느끼는지 알 길은 없지만, 색을 인지하는 것이 개별적이라는 결론이 내려진다.
하나의 색이란 존재하지 않는 것과 같다. 그러므로 '색은 없다'라고도 말할 수 있게 된다. 그리고 객관적인 색이나 실체가 없다는 말로 이어진다. 이상하게도!
「정오」 손오공의 축지법+요술카펫 036
네비게이션의 작동원리는 인공위성들과의 신호를 주고 받음으로서 유지되고 있다. GPS 위성은 약 20여 개로 지구 주위를 돌면서 각각 저마다의 위치와 시간을 지속적으로 내 보내고 있는데, 3개 이상의 위성의 신호를 받으면 지구 표면에서의 위치를 알 수 있다. 여기에 아인슈타인의 일반상대성이론과 특수 상대성이론이 적용되고 있는 것이 바로 자동차의 네비게이션이다.
특수상대성이론에 의하면 움직이는 시계는 늦게 간다. 또 중력이 강하면 시계가 늦게 간다. 이 두 문제, 움직이는 시계는 느리게 간다는 특수상대성이론과 중력 내의 시계는 느리게 간다는 일반상대성이론에 의한 시간의 보정이 이루어지지 않으면 자동차 내비는 거리에 오차가 생기게 된다.
「오후 4시」 커피, 검은 메피스토 043
카페인은 뇌를 비롯한 다른 신체의 활동을 억제하고 자극하는 두 가지 역할 중에 억제하는 한 쪽에만 편을 들어 인간을 흥분시키는 것이다. 우리는 커피를 흥분제로 알고 있지만 실제로 그 자체가 흥분제는 아니다. 신경세포를 억제하는 힘을 방해함으로써 결과적으로 그렇게 되었을 뿐이다.
「오후 6시」 째깍째깍 지극히 인간적인 049
흔히들 시간은 강물과 같다고들 한다. 그것은 일방적으로 흐르는 강물을 말하고 있다기 보다는 전체적 흐름에도 불구하고 물줄기가 멈추기도, 흐르기도, 이따금 합류하기도, 수렴되기도 하며, 여러 갈래가 뒤죽박죽 혼재된다는 의미가 강하다. 하나의 흐름 속에 혼재가 존재한다는 뜻이다. 하나의 결말만이 아닌, 무수한 물줄기의 은유이며, 마치 꿈속처럼 시간의 정체를 알 수 없는 영역에 두고 있는 것이다.
결론적으로 바늘이 째깍째깍 가리키고 있는 순간만이 이른바 '현재' 이다.
이 현재 만이 삶의 양태이다. 시간은 요리와도 같다.
「저녁」 천변만화의 분자 파티 055
단백질 분자와 지방 분자들이 만나서 케이크도 만들어내고, 그것을 담고 있는 유리쟁반은 규소 분자가 주요 성분이고, 또 탁자위에 소금은 염소와 나트륨 분자로 구성된 결정이고, 또 천장에 달린 형광등에는 네온가스 분자가 열을 띠며 빛을 내고 있으며, 사람들은 대화를 하면서 알게 모르게 서로 탄소와 산소들을 교환하고 있다. 당연히 요리의 모든 과정도 분자와 원자와 전자의 활동에 해당된다. 음식 재로인 여러 화학적 요소들이 서로 만나서 화합하고 또는 결별하고 다시 새롭게 결합하는 분자들의 다채로운 파티인 것이다.
「밤」 불과 전기, 암흑을 없앤 등불 062
전기와 자기는 같은 힘의 두 측면이야. 두 장은 끊임없이 상대방을 만들어내고 변화시키지. 이런 일이 영구히 반복되면서 파동이 만들어지게 돼. 전기는 자기장으로 바뀔 수 있어서 그것을 이용한 모터와 발전기가 발명되었고 그 덕분에 우린 쿠쿠 전기밥솥에다 밥을 할 수 있게 된 것야.
2장 _ 天우주
별 보기 070
별을 본다는 것은 서로 다른 과거에서 온 빛들이 중첩되어 한 화면에 나타나는 영상을 목격하는 일이다. 그것은 바로 '우주의 역사'를 보는 것과 같다.
달, 지구의 연인 073
이같이 태양과 동등한 힘을 소유하고 있는 달의 상황은 동양으로 하여금 음양으로 나누어 사유할 수 있었다. 즉 삼라만상이 음양의 조화로 인해 생성과 소멸을 순환하고 있다는 사상을 펼칠 수 있게 된 것이다. 이것은 오직 지구에서만 그러하기에 가능하다. 태양계의 다른 행성들에서는 이러한 상황은 상상할 수도 없다. 우선 그렇게 보이지 않으니까.
그럼에도 달은, 지구와 가장 가깝게 있지만 영원히 알 수 없는 면을 가지고 있다.
지구, 일 미터의 완벽한 세상 078
인간의 사이즈인 일 미터의 한계 안에서의 세상은 완벽하고도 절묘하게 디자인이 되어 있다. 일 미터의 유한이 무한한 세계를 볼때 그렇다는 말이다.
무변광대한 우주 가운데 작은 점에 불과한 지구에 살고있다는 것은 엄청난 균형으로 인한 것이다. 바꾸어 말하자면 기적 그 자체인 것이다.
생사를 거듭하는 별들 085
별들이 지구상의 모래알들을 모두 끌어 모은 것보다 더 많다는 별들의 세계를 바라볼 적마다 지구에 태어나기 전에 우리은 어디에 있었을까 하는 생각이 떠오른다. 게다가 아무리 눈을 비비고 우주를 들여다봐도, 천당과 지옥과 같은 것은 보이지도 않고 찾을 수도 없다. 물질계라서 그런지, 사랑, 정의, 신의 같은 것도 우주 현상에서는 보이지 않는다. 오직 생성과 소멸만 있다. 인류가 추구했던 아름다움이나 사랑과 같은 가치도 찾아낼 수 없다.
천체 공전, 중심을 잃어버리다 092
중심이란 시점이 있는 곳이다.
하지만 '우주의 중심이 도처에 있으며 원주는 그 어느 곳에도 없다' 부르노의 이 문장은 경험하기는 참으로 어려운 말이다.
어쩌면 '중심'이란 단어가 아니라 '무한'이란 쪽이 더 난해할 것 같다. 얼핏 이해가 된 듯하지만 실제로는 이해 불가능한 영역이다. 이해 했다는 착각에 빠질 뿐, 유한한 존재인 우리의 경험은 한계에 머문다. 아무리 개미에게 지구가 둥글다고 설명해주어도 2차원에 사는 존재가 다른 차원을 이해할 수 없듯이, 인간도 나름다로 어떤 한계에 갇혀 있기 때문이다.
우주를 엮는 네 가지 힘 100
인류는 오래 전부터 천체의 운동이나 자석의 현상을 직접 눈으로 확인함으로서 중력과 전자기력은 경험해왔다고 할 수 있다. 그에 반해 강력과 약력은 미시세계에만 작용하는 힘이다.
모든 사물에는 힘이 내재한다는 것만은 확실하다. 힘의 크기와 세기와 영향력이 다를 뿐, 보이지 않을지라도 힘이 없는 것은 없다. 내재하고 있는 힘을 발견하지 못해서 그렇지 인간의 경우도 힘이 없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대화의 평행선 또는 영원성 106
애초부터 보는 각도도 다르고 세계가 다른데 일방적 결론을 내리게 되면 위험하다는 말이지. 인문학 하는 사람들은 자꾸 자기네 언어로 빗대어 말해버리거든. 확실한 증명이 없다면 오히려 곡해하는 결과를 초래하게 되고, 본질에서 벗어나게 될 수 가 있어. 예를 들자면, 마음을 비운다던지 인생은 이렇다든지 따위의 말은 과학에선 아주 싫어하지.
3장 _ 地자연
지구 달력 114
지구의 역사는 땅과 바다, 바람과 기후, 그리고 생명을 품은 여정으로 이루어졌다. 지구가 흘러온 시간을 1년으로 축약한 달력이다. 지구의 나이를 일단 46억년으로 지정하고 그것을 12달로 나누어 환산해보았다. 따라서 하루는 1260만 년에 해당된다. 이 방식은 지구의 시간이란 우리가 감지할 수 없는 어마어마한 스케일이라서 이해를 돕기 위한 방편이다.
땅 119
땅이란 단어처럼 우리에게 든든한 이미지를 주는 것은 없다. 그러므로 땅에 대해 쓴다는 것은 엄청난 일이다. 새삼스럽게 들리겠지만 우리는 땅에 발붙이고 살다가 죽으면 땅에 묻히며 사는 동안에도 땅의 생명들에 의지해서 목숨을 유지하기 때문이다. 땅이란 인간에게 그토록 절대적인 존재다. 어쩌면 하늘의 신보다 더 구체적이고 실용적이고 너그러운지도 모르겠다. 그래서 대지를 어머니라고 부르게 된 지도.
땅의 시간은 인간의 시간보다 어마어마하게 느리다. 그래서 어느덧 백만 년 지나면 에베레스트는 평지처럼 납작하게 되고, 벌판은 높은 산이 될 것이다. 산도 자라드 올라가고 또 늙어가듯 가라앉는다. 인간 시간이 아닌 지리적 시간으로 보면 그렇다.
변신하는 돌 125
무수한 시간이 지나면서 돌들은 열과 압력에 의해 새롭게 변하게 된다. 전혀 새로운 광물이 만들어지기도 한다. 나비들이 애벌레에서 탈바꿈하는 변형을 연상시킨다.
그러니까 인간들이 그러하듯, 돌들도 태어나서 지구 표면에서 지내다가 시간이 지나면 다시 지구 내부로 들어가 새로운 돌로 변용되는 원순환을 보여주고 있다고 하겠다.
풀의 혁명 129
1만 2천 년 전에는 풀들로 인해 세상을 영원히 바꿀 중대한 사건이 일어났다. 그것은 어떤 특정한 풀에서 시작되었다. 즉 우리가 빵을 만들어 먹는 '밀'이라는 풀이다. 그 밀이란 풀로 인해 인간은 유목생활에서 농경생활로 전환했고, 이어서 문명이란 것도 탄생하게 되었다.
식물은 본래 스스로 애써서 씨를 퍼트려야 되지만 인간이 밀을 경작하게 되면서부터는 엉뚱하게도 풀과 인류의 주종관계는 모호해졌다. 밀과 인간은 서로를 필요로 할 수밖에 없게 되어버린 것이다.
그러니까 풀들이 스스로를 불태우는 전략은 그야말로 혁명 중의 혁명이었다! 결과적으로 인류의 운명까지 바꾸어놓게 되었으니.
구름, 하늘에 백만 마리 코끼리 134
구름은 변화 과정에 있는 물이다. 끊임없이 하늘과 땅을 오르내리는 물의 순환 중 잠깐 스쳐 지나는 한 단계에 불과한 것이다. 그럼에도 디이비드 소로우의 말을 빌리자면, 노을의 아름다움은 오직 구름 때문일 것이다.
바람 140
바람은 기본적으로 기체에 머물러 있다. 물론 바람도 대기를 훑어 가며 세기와 강도를 바꾸어, 살랑살랑 미풍에서 난폭한 폭군과 같은 허리케인으로 변하기는 하지만 물이나 흙처럼 순환되거나 변형된다고 보기는 힘들다. 방식이 순환체계라기보다는 그저 기체의 움직임이라고 보인다. 순환은 순환이라지만 독특한 스타일이다.
「엔트로피」 온도 1도 144
열은 움직임이므로 에너지의 한 형태이다. 에너지는 무언가를 움직일 수 있는 능력이고, 모든 움직이는 물체에는 운동 에너지가 들어 있다. 그래서 휘발유의 화학에너지가 자동차에 들아가 운동에너지로 변해서 차는 움직일 수 있게 되는 것이고, 태양의 광에너지가 식물에 들어가 꽃들이 개화할 수 있는 것이다.
이것이 바로 에너지 보존법칙이다. '에너지는 모습이 변해도 총량은 일정하다. 생성과 소멸이 되지 않는다.'가 그 이론이다.
4장 _ 人인간
겹겹이 양파와도 같은 154
늘 그래왔듯이, 신화는 앞서가고 있다. 지금의 과학은 우리 우주 너머의 또 다른 우주에 대해서는 아직은 상상조차 못하고 있지만, 언젠가 미래에는 어떤 상상의 씨앗도 바로하되라 믿는다. 인간이 상상했던 것들은 언제나 실현되어 왔듯이.
「원자」 억 x 억 x 억의 158
인간도 별의 산물인 것이다! 소우주인 인간이 대우주와 상통한다는 오래된 진실이 과학적 근거를 만나고 있는 것이다.
흔히 우리는 우주인을 완벽히 다른 이질의 생명체로 상상하지만, 구성성분과 성질은 다를지라도 실제로는 그들도 우리들과 같은 원소로 만들어져 있을 것임이 틀림없다.
모든 건 별의 구성요소로 만들어졌으니 이 글을 읽는 당신도 원래 별입니다.!
「DNA」 몸 안의 도서관 163
백조 개의 세포 차원에서 보면, 인간의 몸도 하나의 우주다. 한 인간은 바벨의 도서관일 것이다. 원자-분자-세포-오장육부-인간-지구-태양계-은하계-은하군-우주로 무한히 이어진다. 우주 안에 작은 우주가, 그 안에 더 작은 우주가 있고 그 반대로 우주 너머에 우주가 그 너머 밖으로 또 우주가 존재한다는 말이 된다.
나의 「미토콘드리아」 168
우리 몸에는 약 100조 개 세포가 있다. 그리고 두뇌에는 약 1000억 개의 신경세포인 뉴런이 있다. 우연하게도 우주엔 100조 가량의 별들이 있고, 우리 은하에는 무려 1000억 개의 별이 있다.
백년도 채 넘지 못하고 소멸하는 한 인간 속에 우주의 역사가 담겨져 있다는 것, 이런 인식과 체험이야말로 과학이 진정으로 원하는 나침반이고 또한 예술이 궁극적으로 지향하는 바가 아닐까.
「원소」 불꽃놀이, 그와 그녀 174
분자가 커지든복잡해지든 간에 분자는 결합을 통해서 다른 분자와 상호작용을 한다. 더 정확하게 말하자면 서로 가까이 있는 원자 속에 들어 있는 전자의 상호작용에 의존하는 것이다. 원소들이 붙었다 떨어졌다를 주관하는 것은 에너지의 투입이지만 그들의 결합을 가능하게 하는 것은 전자들이다.
주기율표가 바로 그런 세계의 지도이다. 원소라는 이름으로 불리는 대량 백 개 정도가 다양한 불꽃놀이를 하며 끊임없이 무수한 물질들을 만들어내서 이루어진 게 바로 우리의 세계인 것이다.
「전자」 너무나도 먼 당신! 178
하이젠베르크의 "불확정성 원리"
전자의 위치를 더 정확히 측정하면 할수록 측정하는 순간의 운동량은 정확히 알 수 없으며, 전자의 운동량을 정확히 측정하면 할수록 그 순간의 전자의 위치는 정확히 알 수 없게 된다.
전자 4개인 실로콘은 산소와 짝 달라붙어서 이산화규소인 모래가 된다. 다만 다양한 구조를 가질 수 없는 실리콘은 생명의 초석이 될 수가 없다. 이것이 탄소와 다른 점이다.
지구상의 가장 풍부한 물질인 모래를 정제해서 순수 실리콘으로 만든 다음에 약간의 불순물을 섞으면 반도체가 된다. 실리콘은 반도체 형태로 인공지능과 모든 컴퓨터 부품의 기초가 되고 있다. 이것이 21세기의 문명을 만들어 낸 것이다. 디지털 문명이라고 부르고 있는데, 지금 우리는 그 초기의 입구에 서 있다.
「과학과 신화」 어떻게 원숭이가? 185
인간 뇌가 작동하려면 소비하는 전기는 20 와트이다. 원숭이는 에너지의 10%를 뇌에 사용하는데 비해 사람은 그것의 2배인 20%를 사용한다. 뇌에 쓰는 에너지가 온몸에 쓰는 에너지 양의 5분의 1이란 비율이 시사하는 바는 인간의 고유성은 상당히 많은 부분의 에너지를 뇌에 사용하는 점에 있다고 볼 수 있다.
21세기에 사는 우리는 전기를 조종할 뿐만 아니라 삶 전체가 가느다란 전깃줄에 대롱대롱 매달려 살아가는 형국이 되어버렸다. 만약 서울 같은 대도시에 하루만 정전이 된다면, 아니 한 시간만이라도 전기를 사용하지 못하게 된다면 얼마나 혼란스러울지 불 보듯 뻔하다.
세계를 뒤집어놓은 「사람들과 책」 190
코페르니쿠스, 갈릴레오, 뉴턴, 전기를 발견한 패러데이, 주기율표를 만들어낸 멘델레프, 포앙카레의 우주의 모양에 대한 가설을 증명한 페렐만.
그들 이름을 부르는 것만으로도 가슴의 떨림이 찾아온다. 이런 말이 거창한 듯이 들릴지 모르겠지만 그들은 진리를 추구하던 진인이었다. 무엇보다도 그들은 인류의 삶을 바꾸었다. 어떤 혁명가들보다도 사회의 구조를 완전히 뒤집어놓았다. 예언자만큼 획기적어었고 사상가 못지않게 영향력이 막강했다. 또한 종교적 창시자들처럼 진리의 등불을 들었으며 그들의 삶은 헌신적이었고, 그들의 순교자들 처럼 비극적이었다.
5장 _ 신비한 언어, 수
수들의 향연 202
수는 저마다 개성을 가지고 있으며, 광대무변한 우주라는 무대에서 각각의 수는 맡은 바가 있다. 그 역할은 하나라기보다는 복잡하고 다양하다. 우리를 둘러싸고 있는 지구 환경이나 우리 자신의 몸과 내면에도 적용된다.
수라는 것은 공간상에도 시간상에도 존재하지 않는다. 결론을 내리자면, 수가 가지는 성질은 현실의 존재로 남아있으면서 동시에 우주가 생기기 이전에도 우주가 끝난 뒤에도 존재할 것이다.
수는 1에서 시작된다 206
"무한, 우주와 세계에 대해여" 저술한 지오다노 브루노는 '우주의 중심은 도처에 있으며 원주는 그 어느 곳에도 없다' 고 의미심장한 진리를 말했지만 결국 화형을 당했다. 측정불가하고 끝이 없는 우주의 원주를 상상만 해도 등골에 전율이 흐른다.
어찌되었든, 모든 원은 몸속에서 유한성과 무한성을 내포하고 있다. 원의 다른 이름인 수 1도 당연히 그러하다.
수 2, 거울과 대칭과 미로 209
우리의 실존은 수 2의 양극성으로 구성되어 있다. 전기가 두 개의 극, 양극과 음극을 갖고 있듯이. 하루가 낮과 밤으로 이루어졌듯이. 겉으로 나타나는 현상이 다르고 논리적으로도 둘은 반대로 보인다. 그러나 논리를 제쳐놓으면 그 둘은 반대가 아니라 보완적이다.
수 3, 구조의 모든 것 215
3의 구조는 생활 곳곳에 스며들어 있다. 머리를 세 가락으로 나누어서 하나로 만드는 땋은 머리모양은 두 가닥씩 엇갈려 꼬며 땋아 내려간다. 별개의 세 가닥이 하나로 몪이고 강화되며 새로운 전체로 묶인 것이다. 일상에서 흔히 보는 밧줄도 바로 그런 방식이다. 여기에 수 3의 원형에 대한 단서가 있다.
존재는 이원적으로 만들어놓았지만, 또는 만들어져 있지만, 모든 것의 구조는 수 3으로 무한하게 계속된다.
오, 아름다운 수, 5 220
수 5의 특징인 자기대칭성은 동식물의 생리현상이나 무생물의 형태에서 무수히 발견된다. 예를 들면 불가사리의 경우, 다리가 하나 잘려도 그 자리에서 또 생겨날 뿐만 아니라 잘려나간 다리는 완전히 새로운 개체로 자라난다. 현대의학이 추구하는 유전자복제의 가능성을 이미 불가사리가 보여주고 있다고 하겠다.
사과나 배나 해삼을 자르면 오각형이 드러난다. 야채의 샐러리가 부엌칼에 의해 도마에서 잘려 나간 후에 보면 그 꼭지 부분도 오각형 별모양을 하고 있다. 앞마당 소나무에 열린 솔방울에서도 피보나치수열을 찾아볼 수 있으며, 두부찌개에 넣은 조개껍데기에서도 황금 나선형의 비밀을 흘낏 엿볼 수 있다.
음악의 수, 7 225
음계는 우주의 모형을 보여주는 하나의 방식이다. 그 7음계는 우리가 다 잘 아는 '도레미파솔라시도'이다. 그러나 그 음계의 이름이 어디서 유래했는지를 잘 모르는 수가 많은데, 음계의 뜻과 의미는 라틴어 첫 글자에서 출발했다.
7음계 구조는 절대 신성으로부터 시작하여 천체의 일곱 계단을 내려와 다시 돌아가는 순환이다. 그런 가운데, 화음으로 결합되거나, 불협화음으로 분열되거나, 하면서 조화와 부조화를 일으키는 양극단 사이에의 떨림이 바로 음악인 것이다.
시인과 수학자 232
수학은 돈이 벌리지 않는 학문이지만 공부하려면 돈이 들지도 않는다. 종이와 연필과 시간만 있으면 우주를 계산할 수도 있고, 알아낼 수도 있다. 기하학자는 컴퍼스와 자와 연필을 필요로 하지만 수학자는 그것들마저도 필요 없고 머릿속에다 방정식을 담고 있을 수 있다.
페렐만 237
과학도 예술도 개인의 욕망을 초월해 있는 것이다. 또한 유명해지기 위해서가 절대 아니다. 그런 의미에서 페렐만이 의도하지도 않았겠지만, 또 그런 것 따위엔 관심도 없었겠지만, 그가 보여준 행동은 과학자들과 예술가드레게, 또한 미래에게도, 귀감이 된다. 아름다운 인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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