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성림
뉴욕대학NYU에서 러시아문학을 전공하고, 외국계 회사와 컨설팅 회사를 거치며 20여 년간 약 50여 개 국내외 유명 브랜드 전략을 수립했다. 전략가이자 트렌드 분석가로 활동하던 2016년 어느 날, 자신의 인생 전략을 세워야겠다고 결단하고 3년간 고군분투했다. 연이어 실패를 거듭하며 그 원인을 찾는 데 빠져들었다. 마침내 그 답을 ‘의식’에서 찾을 수 있었다.
이 책은 오늘날 대부분의 사람들이 감각 소비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이유를 진화심리학과 뇌과학이 현대에 이르러 발견한 진실을 근거로 밝힌다. 더불어 나를 의식하는 삶, 의식에 이르는 길을 안내한다. 마침내 우리는 각자 새로운 의식체계를 구축하여 지금까지와는 전혀 다른 인생을 살 수 있다는 인식의 전환을 불러일으킨다.
1장 ‘감각’에서 ‘의식’으로
점점 더 감각을 좇는 사람들
- 감각 소비에 열을 올리다
우리는 감각을 통해 격하게 좋은 감정, 즉 쾌락을 느끼는 데 매우 익숙하다. 감각 소비는 다른 말로 쾌락 소비다. 우리는 일상 속에서 그 쾌락에 점점 더 중독되어 감각 소비를 멈추기 어렵다.
- 감각의 쾌락을 추구하는 데는 날개가 없다
쾌락은 이렇듯 일시적이다. 이 연구 결과를 소개한 진화심리학자 로버트 라이트 Robert Wright는 "쾌락이 일시적인 이유는 쾌락이 쉽게 사라져야만 그것이 사라졌을 때 불만족을 느낀 나머지 더 큰 쾌락을 추구하도록, 그래서 더 많은 유전자를 퍼뜨리는 행동을 하도록 자연선택이 설계했기 때문이다. 자연선택은 우리가 행복하기를 원하지 않는다. 단지 유전자를 많이 퍼뜨리길 원할 뿐이다." 라고 말한다.
- 우리가 과식하는 이유
우리는 주로 열량이 높고 영양가가 많으며 단 음식과 쉽게 사랑에 빠진다. 이는 먼 과거의 우리 조상이 그런 음식을 생존을 위해 먹어왔고 특별히 더 선호했기 때문이다. 오랫동안 생존하기 위해서는 칼로리 높은 동물성 단백질을 섭취하는 것이 더 유리했다.
세계적으로 바삭한 음식은 가장 선호되는 음식 형태 중 하나다. 신경문화인류학자 존 앨런은 바삭한 음식을 선호하는 이유로 세 가지를 꼽는다.
첫째, 인류가 등껍질이 바삭바삭한 곤충을 먹어왔다. 둘째, 신선 유통이 없던 원시 시절 인류는 아삭아삭한 신선한 채소를 먹어왔다. 박테리아에 오염된 채소는 흐물흐물해지기 때문에 먹지 않았을 것으로 추정한다. 셋째, 불로 익히면 음식의 표면이 캐러멜화되며 바삭바삭해지고 더 풍부한 맛이 나기 때문에 이를 매우 선호했을 것이다.
물질 소비에서 감각 소비로, 그 이후는?
물질 소비에 빠져 있는 동안 기업은 마치 댐에서 방류라도 하듯 신상품을 쏟아냈다. 새로운 상품에 정신이 팔려 있던 어느 날 문든 회의감이 밀려든다. 그러는 사이, 새로운 경험과 가치를 사고 내 감정과 감각을 만족시키는 쪽으로 흘러갔다. 그렇게 마침내 감각 소비의 시대로 넘어왔다.
- 더 자극적으로 더 다양하게 감각을 소비하다
모든 감각 신경계의 보편적 특징으로 순응 habituation 현상이 있다. 순응이란 어떤 자극에 계속 노출될 경우 감각신경의 반응이 감소하는 것을 말한다. 예를 들어 자신의 체취나 입 냄새를 하루 종일 맡다 보면 거의 느끼지 못한다. 그런데 우리가 쉽게 미각에 지배당하는 것은 음식을 많이 먹어도 순응 현상이 일어나지 않는 데 있다. 음식을 입에 넣고 식도로 넘기기까지 시간이 짧기 때문이다. 그래서 먹을 때마다 새롭게 느껴진다.
우리의 감각은 이대로 괜찮은가?
'아이디어의 창출과 영감의 발현이 바로 여기 대뇌피질에서 이루어진다. 이곳에서 읽기와 쓰기, 수학적 추론과 작곡이 이루어진다. 인간으로 하여금 의식적 삶을 가능케 하는 부위가 다름 아닌 대뇌피질인 것이다. 인류와 다른 종의 차별화가 대뇌피질에서 비롯되며, 인간의 아름다움은 바로 이 대뇌피질 때문에 가능하다.' 한마디로 문명은 대뇌피질의 산물이다.
나의 일상, 내 의식이 끌고 가는 걸까?
- 무의식으로 굴러가는 일상
우리는 하루 종일 생활하며 깨어 잇다. 그러나 그건 그냥 말 그대로 깨어 있는 거지, 일상의 대부분은 우리가 의식하지 못하는 무의식이라는 바다 위를 하염없이 떠다니는 떠돌이 돛단배처럼 그냥 바람 따라 파도 따라 저절로 흘러가는 거다. 그러다 어느 순간 바위에 부딪히고 배가 뒤집혀야, '어! 여긴 어디? 나는 누구?' 하는 거다.
- 과학이 관심을 보이기 시작한 ‘의식’
의식이란 대체 정확히 무엇일까? 그것이 존재하기는 하는 것인지, 존재한다면 과연 어디에 존재하는 것인지, 어떻게 의식이 일어나는 것인지, 그 의식은 어떻게 주관적일 수 있는지, 무의식과의 경계는 어디인지, 이 많은 문제가 아직도 과학적으로 명쾌하게 맑혀지지 않은 난제로 남아 있다.
의식이란 무엇인가?
- 의식에 대한 다양한 주장들
시대에 따라 의식에 대한 정의는 다양한 이론과 주장이 서로 대립하거나 확장되거나 회귀하기도 했다. 의식은 선천적이냐 아니냐의 문제, 이성이냐 감각이냐의 문제, 표면적이냐 아니냐의 문제, 혹은 그보다 훨씬 복잡한 문제들이 결합되고 엉킨 채 계속 바뀌어 갔다.
- 의식의 의미
이처럼 '의식'에 대한 신경과학적 접근이 대세다. 뇌 속에 활성화 영역과 화학적 반응을 탐구하여 철학과 심리학에서 빠진 생물학적 신경 메커니즘을 밝히는 중이다. 이토록 활발하게 연구가 진행되고 있으니, 언젠가는 의식에 대해 과학적으로 명확한 규명이 이루어지리라 기대한다. PET나 fMRI가 없던 18~19세기 철학적 차원의 의식에 대한 규명들이 어떤 형태로 재해석되고 재탄생될지, 흥미로운 주제가 아닐 수 없다.
2장 삶을 바꾸는 힘, 의식
습관처럼 살아가는 삶
나는 내 인생을 통째로 혁명적으로 바꾸고 싶은데 그 방법이 무엇일지 수년간 고민했다. 마침내 내 삶의 꼭대기에서 주인 노릇을 하는 것이 다른 아닌 '의식' 이라고 판단했다. 그런데 의식을 알면 알수록 너무나 모호하고 광범위하여 알 듯 모를 듯했다. 게다가 그동안 내 의식대로 살아왔다고 생각했으나 그것이 아니라는 것을 깨달은 순간 더 깊이 의식에 빠져들 수밖에 없었다.
- 1차 의식에 지배당하다
신경과학자 제럴드 에델만은 동물이 지니고 있는 생존 반응을 '1차적 의식 primary conscious'이라고 불렀다. 그러나 인간은 '고차 의식'으로 도약했다는 것이 에델만의 주장이다.
내 안으로 시선을 옮기다
그럼에도 우리는 평소 항상 의식하며 지낸다고 착각한다. 혹은 그렇게 생각하고 싶어 한다. 왜냐하면 난 깨어 있고, 깨어 있는 내내 내 상황을 알고 있다고 여기며, 쉬지 않고 생각하고, 무언가 실제로 느끼기 때문이다. 그러나 순간순간의 생각, 감정, 느낌, 이 모든 것들은 깨어 있기에 당연히 일어나는 일일뿐이다.
- 2차 의식은 자연스럽게 일어나지 않는다
우리는 최초의 의사결정을 본능적 감정에 따라 하기도 하고, 아무 생각 없이 하기도 한다. 내 생각인 줄 알고 하기도 하지만, 대부분의 선택은 무언가에 흘리듯 끌려서 한다. 저지르고 시간이 지나서야 내가 무슨 짓을 한 건가 싶다. 어제 산 청바지도, 지난주에 산 패딩도, 석 달 전에 산 주식도, 작년에 산 오토바이도, 10년 전에 한 결혼마저. 많은 선택과 결정 앞에서 우리는 항상 혼란에 빠진다. 대부분 의식이 아닌, '1차 의식'으로 선택하고 결정한다.
- 2차 의식으로의 접근
이 의식은 가끔씩 나타나 내 인생의 여러 측면을 예리하게 콕콕 짚어 판단하고 분석하고 잘못된 부분을 실랄하게 비판하며 다시 제대로 나아갈 방향을 제시한다. 내 인생의 전략 방향을 수립한다. 그 방향 안에는 세세한 전략 프로그램이 개발되는 것과 전략의 재수정도 포함하고 있다. 그렇게 하는 이유도 분명하다. 이게 '2차 의식'이 하는 기능이다.
나의 '진짜 의식'인 2차 의식은 관찰의 조각, 성찰의 조각, 상상의 조각, 계획의 조각, 학습의 조각, 창조의 조각으로 내게 다가온다. 우리의 '진짜 의식'은 이렇게 단편 조각 같지만, 매우 섬세하고 칼날같이 예리하며, 조각 하나하나마다 알 수 없는 힘이 있다.
의식의 진화
인간의 마음 진화를 다룬 NHK 특별 다큐멘터리 <휴먼>을 보면 4가지 인류 탐구 결과를 보여 준다. 협력하는 사람, 던지는 사람, 경작하는 사람, 교환하는 사람 그 4가지다.
2차 의식의 여섯 조각
1. 관찰의 조각
관찰은 멈춤이다. 앞만 보고 달려가던, 1차 의식으로 살아가던 길에서 잠시 멈춰 고요히 나를 들여다보는 일이다. 우리 인생은 항상 무언가에 쫓기고 분주하다. 어디로 향해 나아가는지 모를 안개속에 뿌옇게 갇혀 있다. 이 멈춤은 우리 인생에 필요한 시간이리라. 관찰은 멈추어 집중해서 응시하고 면밀히 살펴보는 일이다. 주의 깊게 자세히 쳐다보고 파악하는 일이다. 나 자신을, 나의 말을, 내 생각을, 내 행동을. 나는 스스로 관찰자가 되어 나 자신을 바라 볼 수 있어야 한다.
처음으로 관찰해야 할 대상은 나의 하루를 온통 뒤덮고 있는 나의 '생각' 이다.
생각 관찰하기
반추는 반성과 다른 말이다. "반성은 일어난 이유에 관한 자연스러운 호기심이나 내면 관찰이나 철학적 분석이다. 건강한 불편함을 빚어 낼 수도 있다. 반면, 반추는 자신의 문제를 계속 다시 떠올리는 행위다.
반추는 그저 문제를 푸는 행위처럼 보이는 것에 불과하다. 반추에 사로잡힌다는 것은 점점 더 부정적이고 자기 비판적인 사고라는 소용돌이에 빠져드는 것과 비슷하다.
명상으로 관찰하기
공간 관찰하기
이름 붙이기
일상에서 관찰하기
부정적 마음 방황과 그 느낌을 관찰하는 것만으로도 일상에 많은 변화가 일어난다. 깨어 있는 시간의 대부분을 채우던 기분 나쁜 생각들이 급격히 줄어들어 저절로 그 시간을 기분 좋은 시간으로 채울 수 있게 되기 때문이다. 관찰의 의식 조각 하나만으로도 내 진짜 의식을 찾을 수 있다. 일상도 바뀐다. 2차 의식의 사용은 이렇게 일상에서 시작되어야 한다. 관찰을 통해야만 자기 자신을 알 수 있고, 내 의식의 방향을 설정할 수 있다.
말 관찰하기
거짓말
이간질
거친 말
쓸데없는 말
2. 성찰의 조각
성찰은 사색과 사유가 결합한 행동이다. 자신의 마음을 점검하고 파악하는 일은 사색하고 사유하는 과정을 통해 일어난다. 테카르트는 추운 겨울이면 난로 앞에서 온종일 명상하며 사색에 잠겼다. 사색과 사유를 통해 자기 자신을 파악하고 자신만의 철학을 탄생시켰다. 난로 밖으로 나올 때 철학의 절반은 완성되었다고 말했다.
사유하기
자신을 돌아보고 제대로 알고 난 후에는 자기 자신에게 친절해져야 한다. 자신을 있는 그대로 인정한 후에는 다독임이 필요하다. 그래야 다시 일어설 힘이 생긴다. 우리가 잘하지 못하는 것 중 하나가 자기 자신을 칭찬하는 일이다. 우리는 셀프 칭찬에 좀 익숙해 져야 한다.
3. 상상의 조각
'의심'은 혹시 더 나은 방향, 아니 훨씬 더 좋은 방향이 있는데도 그냥 주어진 대로 사는 것은 아닌지를 생각해 본다는 뜻이다. 이때 '2차 의식'이 동원된다. 더 나은 미래를 끝없이 상상해야 한다. 그래야 변화가 찾아온다.
자신의 꿈 상상하기
나이가 들었다고 해서 어떻게 요리해 먹으면 더 맛있을지. 어떤 산책로를 새롭게 만들지, 또 어떤 새로운 친구를 사귀고 노래를 배우며 글씨체를 개발하고 오디오북을 듣고 낯선 곳으로 여행을 떠날지 생각하는 게 이상한 일인가? 그러지 않는 게 오히려 더 이상하지 않은가?
레오나르도 다빈치는 일생을 걸쳐 과학과 예술을 넘나드는 수많은 작품을 탄생시키는 기적을 일으켰다. 몇 년째 똑같은 궁금증과 똑같은 할 일 목록을 적고 또 적기를 되풀이했다고도 알려져 있다. 호기심이 풀릴 때까지, 만들어 낼 때까지 수년이 걸려도 상관없었다.
4. 계획의 조각
의식은 '계획'의 조각이다. 계획할 때 우리의 의식은 마치 건축가처럼 의식의 집을 짓는다. 우리의 일상은 특별히 의식하지 않아도 자동으로 이루어진다고 앞서 이야기한 바 있다. 또한 의식 연구의 선두 과학자인 프랜시스 크릭과 크리스토퍼 코흐는 이렇게 자동으로 움직여지는 신경 운동을 일컬어 '좀비 작동체'라 일컬었다.
좀비처럼 알아서 반응하는 일상의 무의식 활동에 몇 초 후의 일조차 계획할 수 있는 기능은 없다.
5. 학습의 조각
기존에 아무리 강력하게 학습되어 절대로 바꿀 수 없는 습관의 행동이 있다 하더라도 그것의 강약을 조절해 주는, 멈출 수도 있게 하는 새로운 회로가 나타나 기존의 학습된 습관을 좌지우지할 수 있다는 얘기다. 캔델은 학습의 이 두 번째 신경회로를 '조절회로'라고 명명했다. 캔델은 이 조절회로가 매개 회로에 '선생 노릇을 한다'고 말했다.
우리는 스스로에게 완전히 새로운 경험이 되고 영감을 주는 것들을 소비하기로 결정할 수 있다. 예전에 보지 못했던 위대한 사람들의 그림을 보고, 음악을 듣고, 새로운 스포츠를 배우고, 춤을 익히고, 세계적 석학의 글들을 보고, 고전 인문학을 읽고, 평생 해본적 없는 악기를 배우며, 가죽공예 모임에 나가고, 시를 써 볼 수 도 있다.
6. 창조의 조각
세계적인 창조가도 모두 처음에는 기존 것을 학습하는 데서 출발하여 자기 것을 만들어 내는 데 성공했다. 위대한 인물이 된 사람들은 모두 그 이전의 위대했던 사람들의 사상과 결과물들을 학습했고 그로부터 생각하여 창조한 사람들이다. 꿈을 상상하고 계획하고 학습하고 있다면, 이 삶에 집중하고 있다면, 내가 원하는 방향대로 새로 조합하고 결합할 수 있다.
감각을 소비하는 것은 나의 감각을 만족을 극대화하기 위한 소비이고, 감각을 더 쓰고 더 키우는 소비 행위다. 그리고 이것은 즉각적이지만 순간적이다. 나를 성장시키지는 못한다. 내 삶을 변화시키는 것도 아니다. 그야말로 쾌락 소비다. 이와는 다르게 의식을 활용하는 것은 나의 의식 에너지를 쓰는 것이다. 궁극적으로 내 의식이 전환되고 확장되고 강화할 수 있도록 돕는다.
2차 의식으로 인생을 바꾼 사람들
- 임상심리학자 조던 피터슨 ‘진실’ 의식
이 기준이 곧 자기 주체성이다. 이 기준이 곧 나의 2차 의식이다.
조던 피터슨처럼 2차 의식의 방향 키를 '진실'에 맞추고 살아가는 사람들은 어떤 상황에서도 자기합리화를 통한 거짓을 말하지 않는다. 의사결정을 할 때 혼란스러워하지 않으며 후회나 자책도 현저히 적다.
- 이순신 장군 ‘투지’ 의식
'투지'란 싸우고자 한는 굳센 마음이다. 그렇게 불가능한 상황을 극복한 '투지' 의식에 대한 뻖나 얘기를 반복하고자 이순신을 언급하는 건 아니다. 그런 역사적으로 위대한 인물도 우리와 똑같은 인간이었음을 말하고자 한다.
- 빌 게이츠와 스티브 잡스 ‘승리’ 의식 vs- ‘혁명’ 의식
동갑내기 빌 케이츠와 스티브 잡스는 수없이 거론되는 대성한 사람들이다. 21세기 IT 역사에 큰 획을 그은 그들은 우리와는 다른 별세계 사람들로 보인다. 이들은 24시간이 모자랄 정도로 꿈을 꾸며 산 사람들이다. 상상의 의식 조각을 그 누구보다 많이 소비하며 산 사람들이다. 아니, 상상 그 속에서 살았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 르네 데카르트 ‘통찰’ 의식
데카르트는 모든 존재에 대해 처음부터 차근차근 깊이 있게 꿰뚫어 보고자 한는 '통찰' 의식이라는 삶의 방향성을 가졌다. 세상 모든 것을 꿰뚫어 보아 진리를 찾고자 했고 이를 대중에게 전달하고자 했다.
- 그람 비카스 대표 조 마디아스 ‘혜안’ 의식
조 마디아스가 이끄는 그람 비카스가 시행하는 상하수도 보급 방식은 좀 독특하다. 마을별로 모든 가정의 상수도를 하나의 급수 본관에 연결한다. 카스트(인도의 신분 제도)가 높든 낮든 전체 가정이 물을 공유하는 시스템이다. 이는 신분을 초월하여 협력해야 하는 최초의 지역 활동 계기가 되었다. 그리고 이 방식은 일반적 상하수도 설치비용의 80퍼센트를 절감하는 획기적 방식이었다. 이는 또한 비위생적 환경에서 벗어나 삶의 질을 개선하는 것만을 목적으로 하지 않는다. 질병을 막고 극빈층의 사망률을 낮추는 데 크게 기여한다. 이 시스템을 받아들인 마을은 설사증 발병률을 절반으로, 말라리아 발병률을 3분의 1로 줄이는 데 성공했다. 조 마디아스는 올바른 것을 볼 줄 아는 지혜의 눈을 가졌다. 이것이 바로 슬기를 넘어선 '혜안' 의식이다.
- 스웨덴 10대 환경운동가 그레타 툰베리 ‘용기’ 의식
툰베리가 전 세계에 보여 준 의식은 '용기' 의식이다. 이 용기는 자발성과 적극성을 동반한 진정한 의미의 '용기'다. 열정이고 자유의지며 정도를 걷는 선한 도전 의식이다. 이런 툰베리의 '용기'를 통해 세상은 희망을 본다.
내 의식은 어디로 향하는가?
- step1 관찰과 성찰의 조각 모으기
- step2 의식 방향 설정하기
- step3 상상, 계획, 학습의 조각 만들기
3장 의식을 움직이는 무의식
모든 것은 무의식으로부터 나온다
- 무한한 무의식의 세계
인간이 살아가는 1백 년이라는 시간은 우주 나이로 눈 한 번 깜박이는 시간도 되지 않는다. 그 시간에 우리는 무엇을 하고 떠날 것인가? 무엇을 남기고 갈 것인가? 우리가 태어날 때 몸과 마음을 물려받았듯이, 그 속에 엄청난 정보와 잠재력이 있음을 알았듯이, 우리가 가고 나면 우리의 다음 세대 또 그다음 세대에는 어떤 세상을 남기고 갈 것인가? 이처럼 불합리하고 불공평하고 부조리와 갈등으로 점점 더 악화되어 가는 세상을 고스란이 다음 세대로 떠넘기고 갈 것인가?
- 무의식의 의식화
무의식을 의식화하지 않으면 무의식이 삶의 방향을 결정하게 된다. 바로 우리가 흔히 '운명'이라고 부르는 것이다. 칼 융이 한 말이다. 이 말인즉 우리는 스스로 무의식을 의식으로 전환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의식을 불과 5퍼센트밖에 움직이지 못하고 살아가는 우리들 대부분은 무의식에게 삶의 방향을 결정하도록 자유를 주었다.
의식은 네트워크로 움직인다
물질을 뚫고 들어가 보면 볼수록 자연은 어떤 독립된 기본적인 구성체를 보여 주지 않고 오히려 전체의 여러 부분 사이에 있는 복잡한 그물의 관계로서 나타난다. 이러한 관계들은 언제나 그 본질적인 면에서 관찰자를 포함한다. 인간이라는 관찰자는 관찰되는 과정들의 연쇄에서 마지막 연결을 이루며, 어떤 원자적 대상물의 성질도 단지 관찰자와 대상의 상호작용에 의해서만 이해될 수 있다.
의식과 물질 세계의 관계
양자로 가득하다는 것은 내가 이 세상을 어떻게 바라보느냐에 따라 천국에 가까울 수도 지옥에 가까울 수도 있다는 말이다. 나의 미래는, 미래의 내 의식은, 그리고 나의 미래와 연결되어 있는 우리 사회의 미래는 정해진 것이 아니다. 확률로만 움직인다.
4장 새로운 행복 공식
의식 수준에 행복이 달려 있다
- 나의 의식 수준은 어느 정도일까
낮은 의식 수준(200 이하)
낮은 의식 수준 영역은 수치심, 죄책감, 무기력, 슬픔, 두려움 같은 100 이하의 수준과 욕망, 분노, 자부심 등 100 이상의 수준으로 구분된다.
욕구불만: 낮은 수준에서의 삶은, 생존과 얻음이 목적이고 이득의 쾌락을 목표로 살아가기 때문에 한번 얻으면 그다음 것을 얻고 싶은 욕망에 더 강하게 사로잡힌다. 좀처럼 만족하지 않는 습성이 자리 잡혀 있다. 점점 더 많이, 점점 더 좋은 걸 원하게 되는 생존의 원리와 생리로 돌아가는 시스템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낮은 수준에서는 욕구불만이 끝없이 증복된다.
뇌신경 반응체계: 더 놀라운 것 중 하나는 실제 뇌 신경의 반응체계이다. 낮은 의식 수준의 사람들은 외부의 조건에 반응할 때, 입력된 정보가 매우 빠른 속도로 편도체에 다다른다. 편도체는 감정중추 기관이다. 그보다 늦은 속도로 전전두피질에 이른다. 전전두피질은 대뇌피질의 한 부위로 지성을 주관한다. 전전두피질에 입
력 정보가 도착할 때쯤엔 이미 나의 감정은 외부로 표출된 이후다. 내 감정을 내 안에서 수정할 기회를 놓친다. 표출된 감정은 쾌락, 분노, 두려움, 불안, 수치심, 죄책감, 적개심 등 부정적 감정들이 지배적이다. 기회를 잃은 이성은 사후 반응 또한 유아적 수준이다.
부정의 메모리: 이성보다 감정이 늘 먼저 반응하는 신경체계를 갖고 있는 것은 자신이 느낀 감정들이 고스란히 해마에 저장되고기억된다는 점에서 위험하다. 뇌는 기억을 미리 알아차리고 행동하기 직전에 스위치를 먼저 켜 주는 놀라운 예측력도 갖고 있다.
그렇기 때문에 본능적인 충동과 감정의 지배는 하나의 패턴으로 더욱 고착화할 가능성이 크다. 화를 한 번 내면 계속해서 더 많이 화낼 가능성이 크다는 말이다. 더 나쁜 건 이것이 반복된다는 점이다. 결국 그 반복된 결과는 사회에 빈곤, 실업, 범죄를 낳는다. 낮은 의식 수준에 놓여 있는 이런 사람들은 낮은 에너지 장에 갇히고 사회에 의존적이 된다.
에고 증식: 본능적 감정을 주관하는 주체는 에고ego다. 에고는 이기적인 '나'다. 이 에고는 낮은 의식 수준에서 매우 강력하고 지배적으로 활동한다. 본능에 충실한 에고는 스스로 증식하려는 본성을 지녔다. 두려움을 느끼면 그 두려움의 감정을 가진 에고는 더 큰 두려움을 끌어들인다. 두려움을 가진 그 상태로 여러 다양한 두려움을 불러일으키며 무한 확장할 수 있다. 호킨스 박사는 이를 '에고 팽창'이라고 부른다.
두려움은 본래 동물의 가장 큰 속성 중 하나다. 파충류나 양서류가 주변 색과 동일한 보호색으로 변할 수 있는 건 포식자로부터 들키고 잡아 먹힐까 봐 두렵기 때문이다. 포유류로 갈수록 그 두려움의 정도는 덜하지만 여전히 두려움은 가장 크게 작용한다. 미어캣은 항상 서서 주시한다. 길고양이는 작은 소리에도 예민하여 가닌길을 멈추고 재빨리 차 밑으로 몸을 숨긴다.
높은 의식 수준(200 이상)
200 이상의 높은 의식 수준 영역으로 들어가면 용기, 중립(중용), 자발성, 수용(포용), 이성 같은 500 이하의 영역과 사랑, 무조건적 사랑, 기쁨, 평과, 깨달음 등 500 이상의 영역으로 구분된다.
뇌 신경 반응체계: 높은 의식 수준의 사람들이 외부 조건에 반응할 때 뇌에 입력된 정보는 가장 빠른 속도로 전전두피질(지성을 주관)에 먼저 도착한다. 그보다 좀 더 느리게 편도체(감정 중추)에 다다른다. 지성이 먼저 작동하는 메커니즘이 므로, 높은 수준에서는 원시적 감정이 먼저 튀어나가지 않도록 자기제어가 가능하다. 표출되는 감정은 지극히 긍정적이다. 사랑, 기쁨, 감사, 평온, 낙관주의, 신중함, 사려 깊음, 겸손함 등으로 나타난다.
긍정의 메모리: 이렇게 높은 의식 수준에서는 이성과 지성이 감정을 수정할 기회를 갖는다. 부정적 감정이 먼저 표출되지 않도록 제어할 수 있다. 혹은 긍정적 감정으로 재빨리 전환하기를 선택할 수 있다. 이러한 반응체계 및 결과로 내놓는 감정은 해마에 저장되고 기억된다. 반복되면 습관이 되고 패턴이 된다. 이러한 긍정적 패턴의 습관화는 삶에 활기를 불어넣고 마음에 찾아오는 평온함은 더 오랜 시간 지속된다. 진정한 행복을 느끼는 길로 가는 것이다.
높은 의식 수준의 사람들에게는 이타주의가 작동하므로 사회적 책임을 생각한다. 200 이하 수준의 사람들이 겪는 빈곤, 실업, 사회적 갈등, 각종 범죄, 자살, 전쟁 등 다양한 사회적 문제를 해결하고자 머리를 맞댄다. 사회에 봉사하고 기여한다. 지성이 성찰을 돕고 긍정의 힘으로 선순환하는 것이다.
- 의식 수준의 질
의식 숮누은 부, 지식, 지위나 명예, 재능, 지능이나 학력, 경력이나 경험의 많고 적음, 혹은 기술이 있고 없는 등과 정비례하지 않는다.
내 의식의 전환
이 세가지 에피소드는 긍정적인 의식을 잘 보여 주었다. 그들은 좀 더 담대하게 조금은 덜 슬프고 덜 우울하게 대처하고, 그 덕분에 더 잘 견딜 수가 있구나, 그들은 더 용기를 내고 조금이라도 더 편안하고 행복한 순간을 인생 최악의 경우에도 만들어 내며 살아가는구나, 라는 교훈을 얻으며 내 의식의 전환이 일어난 시점이었다.
나를 의식하는 삶
- 쾌락은 행복인가?
기분 좋은 감각을 추구하고 긍정적인 감정을 불러일으키는 소비는 너무 쉽게 왔다가 사라지는 쾌락이다. 감각을 충족시키는 소비로 과연 행복해질 수 있을까? 몇 가지 조건만 갖춘다면 행복을 업을 수 있다. '소확행'이라는 말에서도 알 수 있듯이.
첫째, 지나쳐서 중독에 빠지지 않는 수준이어야 한다. 중독되는 순간 나의 신체적··정신적 ·사회적 건강이 급격하게 하락한다. 그리고 중독이 깊어질수록 더 헤어 나오기 어려운 수준으로 치닫게 마련이다. 둘째, 나의 꿈의 실현을 심각하게 방해하지 않는 수준이어야 한다. 감각적 쾌락에만 빠져 산다면 내가 한때 상상하던 꿈은 정말 꿈일 뿐이라고, 어차피 이루어지지 않으니까 꿈이라고 부르는 거라며, 온갖 이야기를 지어 내어 자기합리화를 하게 될 것이다. 그리고 상상의 조각은 과거형이 될 것이다.
마지막으로, 타인이나 사회에 해를 끼치지 않는 수준이어야 한다. 감각 소비가 나의 기분 좋은 상태를 유지시켜 주고 강화시켜 주는 수단으로만 사용되지 않고 극단으로 치닫게 되면 나 개인뿐 아니라 사회에 악영향을 끼칠 수밖에 없다. 우리는 모두 의식 네트워크로 묶여 있기 때문이다.
- 의식하는 순간 행복해진다
행복의 새로운 공식
- 연결된 사회 속에서 행복
우리는 무엇을 위해 살고 있고, 대체 어디로 가고 있는가? 나 스스로 의식체계를 만들고 내 인생의 방향성을 설정해 놓지 않고, 정신 똑바로 차리지 않으면, 이 사회가 만들어 가는 대로 파도에 휩쓸리듯 떠내려갈 수밖에 없다. 내 정체성은 무엇인지 지금 탐구해봐야 한다.
- 공감이 주는 행복
공감과 이타심과 연결할 수 있는 건 인간뿐이다. 공감은 하되 그 능력이 약하면 이타심은 생기지 않을 수 있다. 우리가 상부상조하도록 진화된 마음을 지닌 것은 서로에게 이익이 되기 때문이기도 하다. 그러나 이 세상이 반드시 그렇지 않다는 것은 높은 의식 수준을 가진 사람들의 행동에서 가끔 볼 수 있다. 나에게 어떤 이익이나 보상을 바라지 않고, 단지 주는 것이 훨씬 즐겁고 편하고 행복한 사람들이 있다. 우리는 공감이라는 감각을 더 강하게 발달시켜야 한다. 그래야 그다음 단계로 다른 사람들을 더 높은 수준의 의식 세계로, 더 큰 행복으로 이끌 수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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