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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ook Review

"룬샷" 전쟁, 질병, 불황의 위기를 승리로 이끄는 설계의 힘

by 욕심쟁이77 2020. 8. 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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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피 바칼

물리학자, 바이오테크 기업 창업자이자 최고경영자

물리학자 부부 사이에서 태어나 열세 살부터 프린스턴 대학교에서 물리학과 수학을 공부했다. 1988년 하버드 대학교를 최우등졸업(SUMMA CUM LAUDE)하고 스탠퍼드 대학교에서 물리학 박사 학위를 받았다. 이후 노벨 물리학상을 받은 로버트 러플린, 이론물리학계의 대가 레너드 서스킨드와 응축 물리 이론에 대해 연구했다. 미국 국립과학재단(NATIONAL SCIENCE FOUNDATION) 학술상을 받는 등 학자로서 두각을 나타냈다.

1998년 과학자에서 경영인으로 변신한다. 맥킨지앤드컴퍼니(MCKINSEY & COMPANY)의 전문 컨설턴트로 투자회사와 제약회사에 전략과 기술을 제시했다. 2001년에는 암 신약을 개발하는 바이오테크 기업 신타제약(SYNTA PHARMACEUTICALS)을 공동 설립하고 13년 동안 CEO로 일했다. 2007년에는 신타제약의 기업공개를 성공적으로 이끌었으며 오바마 정부 시절 대통령 과학자문위원회 위원으로 활동하기도 했다.

경영과 과학, 모두에 정통한 전문가로서 매년 벨연구소, 하버드 대학교, 코넬 대학교를 비롯한 유수의 교육·연구기관과 130곳이 넘는 금융, 투자, 의료 콘퍼런스에 초청받아 물리학과 비즈니스 현장을 접목한 경영 이론을 강의하고 있다.

주도자가 될 것인가, 희생자가 될 것인가

1. 가장 중요한 휙기적인 아이디어는 룬샷 loonshot으로 부터 나온다. 룬샷은 종종 그 주창자가 '미친 자' 취급을 받는, 많은 이들이 무시하는 아이디어다.

2. 언뜻 미친 것처럼 보이는 획기적 아이디어를 전쟁을 이기는 기술, 생명을 살리는 제품, 업계를 바꿔놓는 전략으로 탈바꿈시키려면 대규모 인원이 필요하다.

3. 상전이라는 과학적 원리를 팀이나 기업, 혹은 어떤 형태든 목적을 가진 집단의 행동에 적용해보면 룬샷을 더 빨리, 더 잘 키워내는 실용적 법칙을 도출할 수 있다.

문화보다 구조, 혁신보다 설계가 중요하다

밀러의 피나냐는 전향적인 룬샷이다. 가장 중요한 획기적 돌파구가 마련되었을 때 중앙 권력이 거기에 각종 수단과 돈을 쏟아부으며 레드 카펫을 깔고 팡파르를 울리는 경우는 거의 없다. 획기적 아이디어는 놀랄 만큼 위태로운 처지에 있다. 회의주의와 불확실성이라는 기나긴 터널을 통과하는 동안 부서지고 방치되기 십상이다. 그 주창자들은 종종 '미친 자' 취급을 받기도 하고, 밀러처럼 마냥 무시되기도 한다.

문화보다 구조

업계를 바꿔놓는 기술이 그렇듯, 생명을 구하는 신약도 발명가 혼자 미친 아이디어를 주창하며 시작되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그런 아이디어를 제대로 기능하는 제품으로 바꿔놓으려면 대규모 조직과 인력이 필요하다. 대형 연구업체들이 하나같이 밀러의 피라냐를 거절했던 것처럼, 아이디어를 제품으로 개발할 수단을 보유한 팀들이 아이디어를 거절해버리면 획기적 아이디어는 연구실 한구석에 파묻히거나 실패한 기업들의 폐허 더미에 깔린다.

15년간 암젠은 다시는 신약 발견의 성공 스토리를 쓰지 못했다. 조직 문화를 분석해놓은 그 책은 암젠이 특허 획득 개수로 측정되는 연구 성과가 보잘것없다고 지적하면서, 기업의 성공에 "혁신은 별로 중요하지 않은 듯하다"고 결론 내렸다.

암젠의 연구는 훌륭하지 않았을지 모르나 법무팀은 훌륭했다. 암젠은 소송마다 승소했고 경쟁자들은 나가떨어졌다. 업계 사람들은 암젠을 "신약을 가진 로펌"이라고 불렀다.

저녁 식사비를 내라는 것과 훌륭한 변호사를 고용하라는 것도 암젠의 성공 스토리에서 얻을 수 있는 유용한 교훈이다.

의학 연구 분야에서의 머크Merck는 수십 년간 가장 존경받는 기업이었다. <<포춘>>이 해마다 선정하는 '가장 존경받는 기업' 목록에서 머크는 1987년부터 1993년까지 1위를 차지했다. 7년 연속 1위 기록은 2014년 애플이 기록을 깰 대까지 유례가 없던 일이다. 머크는 최초의 콜레스테롤 저하제를 출시했다. 최초의 사상충증 약을 개발해 아프리카와 라틴아메리카의 수많은 나라들에 무료로 기증하기도 했다. 하지만 1993년 이후 10년간 머크는 중요한 신약 발견의 획기적 돌파구를 번번이 놓쳤다. 머크가 우습게 보았던 유전공학 기술은 업계의 판도를 바꿔놓았고(좀 더 자세한 이야기는 뒤에 소개한다), 역시 간과했던 항암제, 자가면역질환 치료제와 정신과 치료제는 1990년대와 2000년대 초반 가장 큰 성공 스토리를 썻다.

많으면 달라진다

물리학자 필립 앤더슨 Philip Anderson은 바로 이런 질문의 답이 될 수 있는 핵심 아이디어를 "많으면 달라진다 more is different"라는 말로 표현한 바 있다. "전체란 부분의 합보다 많을 뿐만 아니라 부분의 합과는 매우 다르다." 그가 이렇게 말한 것은 액체의 유동성과 고체의 딱딱함뿐만 아니라 금속 내 전자의 독특한 행동까지 설명하기 위해서였다(그는 이것으로 노벨상을 받았다). 물 분자하나 혹은 금속 내의 전자 하나를 분석해서 그런 집합적 행동을 설명할 방도는 없다. 이 행동은 완전히 새로운 것이다. 이게 바로 '물질의 상태 phases of matter'다

이와 같은 원리가 팀이나 기업에도 적용된다. 어느 개인의 행동을 분석해서 집단의 행동을 설명할 도리는 없다. 룬샷을 잘 키워낸다는 것은 (액체가 물질의 어떤 상태인 것과 마찬가지로) 인간조직의 어떤 상태다. 프랜차이즈(예컨대 영화의 후속 시리즈 같은 것)를 잘 개발한다는 것은 (고체가 물질의 또 다른 상태인 것처럼) 조직의 '다른' 상태다.

상전이: 모든 것이 변화하는 순간

모든 상전이는 (물속에서 줄다리기를 하고 있는 결합 에너지와 엔트로피처럼) 경쟁하는 두 힘이 만들어낸 결과다. 사람들이 하나의 팀이나 기업, 혹은 어떤 형태든 목적을 가진 조직을 이룰 때도 경쟁하는 두 힘이 만들어진다. 말하자면 두 가지 형태의 인센티브(동기부여 요소)가 생기는 셈이다. 이 경쟁하는 두 가지 인센티브를 대략 '판돈'과 '지위'정도로 생각할 수 있겠다.

예를 들어 집단의 규모가 작을 때는 집단 프로젝트의 결과에 따라 느구에게나 큰 '판돈'이 걸려 있다. 작은 바이오테크 회사에서 신약이 성공하면 모두가 영웅 대접을 받거나 백만장자가 된다. 실패하면 모두 실업자다. 이렇게 큰 판돈에 비하면 '지위' 에 따른 특전(승진에 따른 연봉 인상이나 직책명의 변경 다위)은 미미해 보인다.

팀이나 회사의 규모가 커지면 결과에 따라 주어지는 '판돈'은 줄어드는 반면, '지위'에 따른 특전이 커진다. 이 두 가지 조건의 크기가 역전될 때 시스템이 전환된다. 두 인센티브는 누구도 원치않는 행동을 부추기기 시작한다. 조직이 커지고 안정될수록 똑같은 사람으로 구성된 똑같은 집단임에도 룬샷을 퇴자 놓기 시작한다.

우리는 앞으로 상전이의 원리를 활용해서 어떻게 하면 더 혁신적인 조직을 만들 수 있을지 알아볼 것이다. '문화' 가 아니라 '구조'의 작은 변화를 통해 경직된 팀을 탈바꿈시킬 수 있다.

리더들은 많은 시간을 들여 혁신을 역설한다. 하지만 온도가 떨어지고 있는데, 분자 하나가 절박하게 애쓴다고 해서 주변 분자가 얼음이 되는 것을 막을 수는 없다. 그러나 구조의 작은 변화는 강철도 녹일 수 있다.

1부 우연의 설계자들

1장 룬샷, 2차 세계대전을 승리로 이끌다

구조를 설계하는 자가 지배한다

천재 기업가가 새로운 아이디어나 발명품을 가지고 건설한 제국이 오랫동안 건재하면 그를 둘러싼 신화가 널리 퍼진다. (이 신화와 그에 따른 함정에 대해 앞으로 몇 개 장에 걸쳐 살펴볼 것이다.) 그러나 정말로 성공을 이루는 사람들, 우연의 설계자들'은 그보다 덜 화려한 역할을 맡는다. 그들은 어느 한 룬샷을 열렬히 지지하기보다는 많은 룬샷을 육성할 수 있는 뛰어난 구조를 만든다. 그들은 예지력 있는 혁신가라기보다 세심한 정원사에 가깝다. 그들은 룬샷과 프랜차이즈 양쪽을 모두 잘 돌보며, 어느 한쪽이 다른 쪽을 압도하지 못하게 한다. 서로가 서로를 성장시키고 지원하게 하는 것이 그들의 역할이다.

이런 정원사가 만들어내는 구조에는 공통된 원칙들이 있다. 그런 원칙들을 나는 '부시-베일 법칙'이라고 부른다.

'부시-베일 법칙'의 첫 두 가지는 앞서 '0도에서 균형 잡기' 핵심 열쇠로 언급했다. 상태들(룬샷을 만들어내는 그룹과 프랜차이즈를 이어가는 그룹)을 분리하고, 동적평형(양쪽 그룹 사이에 프로젝트나 피드백이 수월하게 오가는 상태)을 조성하라. 분리되는 동시에 서로 계속 연결되게 하라.

상태를 분리하라

예술가와 병사를 분리하라

위험성이 높은 초기 단계의 아이디어를 개발하는 사람들('예술가'라고 부르자)은 조직 내에서 이미 성공해 꾸준히 성장하는 부문을 책임지고 있는 '병사들'로부터 공격받지 않아야 한다.

초기 단계의 프로젝트는 바람 앞 등불과 같다. 부시는 "군대 장교들은 어느 무기가 실전에서 완전히 증명되고 나면 새로운 무기 개발을 회피한다”고 쓰고 있다. 그 장교들은 '배아 단계'의 무기는 모조리 묵살했다. 레이더도 그랬고, 수륙양용 트럭도 그랬고, 혁신 초기의 거의 모든 무기가 같은 일을 겪었다. 초기 단계의 무기는 늘 허점투성이였기 때문이다. 그런 초창기 아이디어를 보호해주는 단단한 보호막이 없다면 아이디어는 폐기되거나 묻히고 만다. 영과 테일러가 일찌감치 발견한 레이더처럼 말이다.

업종을 막론하고 강력한 프랜차이즈의 리더들은 자잘한 허점을 집어내 초기 단계의 프로젝트를 묵살하는 것이 일상이다(그들이 그렇게 하는 이유에 관해서는 2부에서 자세히 다룬다). 대형 제약회사들은 종양에 대한 혈액 공급을 차단하는 방식으로 암을 치료하자는 획기적인 아이디어를 그냥 지나쳤다. 종양을 둘러싸고 있는 것으로 알려진 혈관들을 무관한 염증으로 일축했다. 대형 영화제 작사들은 메트로섹슈얼한 영국인 스파이가 세상을 구한다는 아이디어를 흘려보냈다(악당 두목이원숭이라는 것을 문제 삼았다). 그들은 '루크 스타킬러의 모험The Adventures of Luke Starkiller'이라는 제목의 시나리오도 놓쳤다. 플롯이 이해가 안 가고 '메이스 윈디'라는 주인공이 거품 가득한 슈퍼히어로를 연상시킨다고 했다.

나중에 다시 보겠지만, 제약과 영화 산업은 모두 (강력한 대기업들의 지배력에도 불구하고) 룬샷을 살리고 키우는 '구조'를 진화시켰다. '혈관 형성 억제 요법anti-angiogenesis therapy'이라고 하는,종양에 대한 혈액 공급을 차단하는 치료법은 지난 20년간 암 치료에서 가장 획기적인 아이디어 중 하나가 됐다. 그런 방식으로 가장 먼저 나온 치료제인 아바스틴Avastin은 연매출 70억 달러를 달성했다. 한편 가망이 없어 보이던 두 영화는 역사상 가장 성공한 프랜차이즈 영화가 됐다. '제임스 본드'와 '스타워즈Star Wars' 시리즈 말이다.

상분리의 목표는 ''룬샷 배양소'를 만드는 것이다. 룬샷 배양소는 배아 단계의 프로젝트를 보호하는 곳이다. 돌보미들이 보호시설 같은 환경을 설계해, 배아 단계의 프로젝트들이 성장하고 번창하고 허점을 보완할 수 있게 하는 곳이다.

상태에 딱 맞는 툴을 마련하라

룬샷 그룹과 프랜차이즈 그룹을 분리한 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조직도에 박스 하나를 더 그려 넣고 새로운 건물을 하나 임차하는 것은 어렵지 않다. 그러나 번쩍이는 연구소를 갖고도 실패한 기업은 많다. 진정한 상분리가 되려면 맞춤식 니즈를 충족하는 맞춤식 집이 필요하다. 각 상태의 니즈에 딱 맞는 별개의 시스템이 필요하다.

버니바 부시는 레이더 연구팀을 MIT에 있는 이름 없는 사무용 건물에 격리시켰다. 부시는 앞서 언급한, 군대에 필요한 긴장된 조직이 괴상한 것을 탐구하는 과학자들에게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연구소에 적합한 조직이 전장에 있는 전투 연대에 적합하지 않은 것”과 마찬가지였다.

시어도어 베일은 장거리 전화 기술 연구팀을 맨해튼 남부에 있는 어느 사무용 건물에 격리시켰다. 베일도 부시처럼 시스템을 딱 맞게 바꾸었다. 그 역시 전화 사업의 “엄격한 과업 할당 방식과는 거리가 먼”, 간섭이 적은 방식을 택했다. 부시도, 베일도 오늘날 우리가 계속 재발견하는 사항을 이미 수십 년 전에 직관적으로 알고 있었다. 식스시그마Six Sigma나 전사적 품질경영Total Quality Management처럼 효율을 중시하는 시스템은 프랜차이즈 프로젝트에는 도움이 될지 몰라도 예술가들을 숨 막히게 한다. 예컨대 포스트잇과 스카치테이프를 발명했던 3M이 2000년에 식스시그마의 열혈 전도사를 새 CEO로 들이자, 혁신은 곤두박질쳤다. 이런 상황은 그 사람이 떠나고 새로 부임한 CEO가 옛 시스템을 복원한 후 에도 한참이 지나서야 회복될 수 있었다. 새로 부임한 CEO는 효율주의 시스템을 실수라고 설명했다. “할당된 발명 개수를 채우지 못했으니 수요일에 좋은 아이디어 세 개, 금요일에 좋은 아이디어 두 개를 생각해내야겠어.…라고 할 수는 없는 노릇이죠.”은퇴한 포스트잇 발명가 아트 프라이Art Fry는 자신의 아이디어가 그 새로운 체제에서라면 결코 빛을 보지 못했을 거라고 말했다.

그렇다고 해서 효율성을 중시하는 시스템이 아무짝에도 쓸모없다는 얘기는 아니다. 느슨한 목표와 몽상하는 시간이 예술가들에게는 도움이 될지 몰라도, 군대의 일관성을 유지하는 데는 해가된다.

동적평형을 만들어내라

예술가와 병사를 똑같이 사랑하라

균형을 유지해서 어느 한 상태가 다른 상태를 압도하지 않게 하려면 필요한 부분이 있다. 바로 룬샷을 도모하는 예술가와 프랜차이즈를 도모하는 병사가 똑같이 사랑받는다고 느껴야 한다는것. 나약하고 모호한 소리처럼 들릴 수 있지만, 아주 현실적인 얘기이자 자주 간과되는 요소다.

벨 연구소Bell Labs의 전신이 되는 조직을 만든 뒤에 베일은 이렇게 썼다. “나머지를 희생시키면서 어느 한 사업부나 부서, 지부, 그룸을 무시하거나 편애한다면 반드시 전체의 균형이 깨진다." 그러나 대부분의 집단이 자연스레 병사는 병사를 편애하고, 예술가는 예술가를 편애하는 함정에 빠진다.

동등하게 존중하는 것은 보기 드물고 귀한 능력이다. 전쟁이 시작됐을 때 버니바 부시는 베테랑 학자였지만 군을 진심으로 존중했다. 나중에 그는 이렇게 썼다. “나는 과학자나 비즈니스맨, 교수를 비롯해 다른 어느 집단보다도 군인들과 어울리는 것이 즐겁다.” 버니바 부시는 그런 존중심을 가지고 장교들을 대했기 때문에, 앞서 실패한 수많은 과학자·엔지니어들보다 군대를 훨씬 더 잘 이해했고 결과적으로 군에 큰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었다.

어느 인물의 유명세에 비해서는 덜 알려진 어떤 역사를 보면 그가 이런 균형에 도달하기 위해 어떻게 진화해갔는지를 엿볼 수 있다. 애플 첫 재임 시절에 스티브 잡스는 맥Mac 컴퓨터를 연구하던 자신의 룬샷 그룹을 "해적들" 내지는 "예술가들"이라고 불렀다(물론 그는 본인이 최고의 해적이자 예술가라고 생각했다). 반면 애플 I|프랜차이즈를 개발 중이던 그룹은 "평범한 해병”이라고 일축했다. 잡스가 예술가를 떠받들고 병사를 업신여김으로써 두 그룹 사이에 형성된 적대감이 얼마나 컸던지, 사람들은 두 그룹이 각각 입주해 있던 건물 사이의 샛길을 '비무장지대'라고 불렀다.

이 적대감은 양쪽 제품 모두에 손해가 됐다. 잡스와 함께 애플을 설립한 스티브 워즈니악Steve Wozniak은 다른 중요 직원들과 함께 남아 애플 II 프랜차이즈 개발을 계속했다. 잡스가 아끼던 맥 컴퓨터는 시장에 출시됐으나 상업적으로 실패했다. 애플은 심각한 재정 압박에 직면했다. 잡스는축출됐고 존 스컬리John Sculley가 그 자리를 이어받았다(결국 스컬리가 맥 컴퓨터도 구해내고 재정 안정성도 회복했다).

12년이 흘러 다시 애플로 돌아온 잡스는 조니 아이브Jony Ive 같은 예술가와 팀 쿡Tim Cook 같은 병사를 똑같이 사랑하는 법을 터득한 상태였다. 기회를 동등하게 부여하는 능력을 우리가 타고 나기는 어렵다. 하지만 연습을 통해 키울 수는 있다.

기술이 아닌 기술이전을 경영하라

버니바 부시는 스스로도 뛰어난 발명가이자 엔지니어였으나 룬샷의 세부 사항에 대해서는 일절 관여하지 않는다는 원칙을 칼같이 지켰다. 그는 자신이 “전쟁 준비에 기술적으로 도움을 주거나 한 적은 전혀 없었다”고 쓰고 있다. “내가 갖고 있던 기술적 아이디어를 구현한 적은 한 번도 없었다. 사람들은 종종 나를 '원자과학자'라 부르기도 했지만, '아동심리학자'라 부르는 편이 훨씬정확하다."

베일 역시 기술 프로그램의 상세한 부분에는 관여하지 않았다. 부시도, 베일도 본인들의 할 일은 룬샷과 프랜차이즈 사이의 균형과 소통을 관리하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괴상한 것을 탐구하는 과학자와 탄약을 조립하는 병사들 사이의 균형과 소통, 벨 전화연구소의 뜬구름 잡는 연구와 전화 사업의 고된 업무 사이의 균형과 소통 말이다. 두 사람은 어느 한쪽에 깊이 뛰어들기보다는 둘 사이의 이전에 초점을 맞췄다.

간혹 균형이 깨지면 본인들이 직접 끼어들었다. 앞서 말했듯 획기적 돌파구를 만들어내는 과정에서 가장 약한 고리는 아이디어를 이전하는 일이다. 과학자는 병사나 마케팅 담당자가 안중에 없을지 모른다. 병사나 양복쟁이는 실험실 괴짜들이 지껄이는 소리를 일축할지 모른다. 부시와 베일은 바로 이 접점에 초점을 맞췄다. 레이더 탐지 장치가 물리학자들만 가득한 건물에 파묻혀 있었더라면 U보트를 한 척도 침몰시키지 못했을 것이다. 반도체로 만든 작은 스위치가 벨 전화연구소에 그냥 파묻혀 있었더라면 세기의 발견인 트랜지스터가 되지 못한 채 그냥 호기심의 대상으로 남았을 것이다.

다음 장들에서 계속 볼 테지만, 균형과 소통을 관리하는 것은 하나의 정교한 기술이다. 과잉 관리도 일종의 함정을 유발한다. 과소 관리는 또 다른 함정을 낳는다.

발명가가 현장으로 아이디어를 이전할 때 생기는 흠결만이 위험 요소가 아니다. 현장에서 발명가에게 아이디어를 이전하는 것도 위험 요소이긴 매한가지다. 처음부터 완벽하게 작동하는 제품은 없다. 현장의 피드백을 발명가가 무시한다면 처음의 열광적 반응은 빠르게 식어버리고 유망한 프로젝트도 중도 폐기된다. 예를 들어 초창기 항공 레이더는 사실상 무용지물이어서 조종사들은 레이더를 무시하고 운행했다. 버니바 부시는, 조종사들이 다시 과학자를 찾아가 '왜' 자신들이 레이더를 사용하지 않는지 반드시 설명하게끔 했다. 알고 보니 그 이유는 레이더 기술과는 전혀 무관했다. 조종사들은 정신없는 전투의 와중에 초창기 레이더 박스에 달려 있던 복잡한 스위치들을 조작할 시간이 없었을 뿐이다. 요즘으로 치자면 사용자 인터페이스가 형편없었다. 과학자들은 금세 딱 맞는 디스플레이 기술을 고안해냈다. 지금 우리가 'PPI 디스플레이'라고 부르는, 선이 화면을 훑고 지나갈 때 점들이 움직이는 화면이 그것이다. 조종사들은 그제야 레이더를 이용하기 시작했다.

앞서 언급한 벌지 전투를 승리로 이끈 레이더 장착 퓨즈가 달린 포탄의 사례처럼, 어떤 경우에는 약한 고리를 감지한 부시가 단독으로 움직이기도 했다. 처음에 육군이 이 퓨즈에 별 관심을 보이지 않자, 부시는 직접 비행기를 타고 유럽에 있는 작전 본부로 곧장 날아갔다. 부시를 맞이한 사람은 아이젠하워Dwight D. Eisenhower의 수석 부관 월터 베델 스미스Walter Bedell Smith였다.

스미스가 물었다. “대체 여기까지 웬일이십니까? 국장님이 오시지 않아도 구경 온 민간인은 충분할 것 같은데요?"

부시가 대답했다. “무지가 만연한 것 같아서요. 전쟁 역사상 최고의 무기가 폐기되는 걸 막으러 왔습니다."

부시의 말에 따르면 이후 두 사람은 금세 죽이 맞았다고 한다.

부시는 루스벨트 정부의 전쟁부 장관 헨리 스팀슨과 긴밀히 협업한 적도 있었다. 처음에 장성들이 레이더를 쳐다보지도 않으려 하자 부시는 스팀슨에게 연락했다. 스팀슨은 레이더 기술이 장착된 시험용 비행기에 올라서 레이더가 금세 먼 곳의 목표물을 포착하는 모습을 직접 지켜보았다. 다음 날 육군 및 공군 대장들의 책상에는 전쟁부 장관의 메모가 똑같이 놓여 있었다.

새로운 레이더 장비를 보고 왔소. 장군은 왜 안 봤소?

동적평형을 이루는 데 가장 중요한 동력은 핵심은 최고책임자의 지원이다. 부시가 장군들에게 자유롭게 이야기할 수 있었던 것도 그 덕분이었다. 힘든 마찰을 해결하던 때에 부시는 이렇게 썼다. "루스벨트 대통령에게 '뜨거운 감자를 나한테 넘기셨으니, 내가 몇몇 사람과 의논을 좀 해야할 것 같습니다'라고 말했다. 그의 답변을 똑똑히 기억한다. '얼마든지 하세요. 내가 지원사격 할테니."

얼마 지나지 않아 부시의 의논 상대가 됐던 사람 중 한 명이 대통령에게 가서 부시와 그의 조직을 성토했다. 배석했던 보좌관의 말에 따르면 당시 대통령은 어느 문서에 서명을 하고 있었다고 한다. 대통령은 잠시 손길을 멈추고 귀를 기울이더니, 다시 서명을 이어가며 말했다. “이봐요, 맥. 그 문제는 부시한테 일임했어요. 부시가 책임자라고요. 그러니 이제 좀 나가주쇼."

처음의 두 가지 법칙과 앞으로 나올 법칙들을 시각적으로 표현해보면 다음 그림과 같다.

부시와 베일은 침체에 빠진 조직을 곧장 사분면의 오른쪽 상단으로 데려오는 데 성공했다. 룬샷 그룹과 프랜차이즈 그룹이 잘 분리돼 있으면서 똑같이 강한 힘을 발휘하는 한편(상분리), 지속적으로 프로젝트와 아이디어를 양방향으로 교환하는 상태(동적평형)로 말이다.

그러나 많은 기업이, 특히나 위기에 직면하면 창의성과 혁신을 사방에 심으려고 기를 쓴다("우리 CEO는 CIO인 게 틀림없어. 최고혁신책임자Chief Innovation Officer 말!"). 그 결과는 보통 사분면의 왼쪽 상단, 즉 혼돈이 되고 만다.

세상의 모든 전화 사업자가 혁신의 전도사일 필요는 없다. 때로는 전화만 잘 걸려도 충분하다.

그러나 가장 흔한 함정은 사분면의 오른쪽 하단(함정)으로 직진하는 경우다. 앞서 언급한 것처럼 리더는 자랑스럽게 조직도에 박스를 하나 더 그려 넣고 새로운 건물을 임차해 새 연구소의 간판을 내건다. 이 책 3장부터 5장까지 우리는 왜 이런 행보가 그토록 자주 실패하는지, 어떻게 하면 사분면의 오른쪽 상단으로 돌려놓을 수 있을지 알아볼 것이다.

하지만 그 전에 먼저 룬샷의 '본질'에 관해 조금 더 알아둘 필요가 있다. 룬샷을 그토록 세심하게 보호해야 할 이유가 무엇인가? 룬샷은 왜 그토록 깨지기 쉬운가?

2장 세 번의 죽음 끝에 질병을 정복하다

가짜 실패를 경계하라

엔도 아키라와 주다 포크먼의 이야기는 '세 번의 죽음' 뿐만 아니라 룬샷에 흔한 '특정 유형의 죽음'을 여실히 보여준다. 예를 들어 쥐 실험에서 엔도의 약이 실패했을 때(두 번째 죽음), 산쿄에서 그의 프로그램은 거의 종료될 뻔했다. 비첨 제약Beecham Pharmaceuticals 이라는 다른 회사에서는 똑같은 실패가 일어나자, 비슷한 프로그램을 '영구적으로’ 끝내버렸다. 나중에 비첨은 스미스 클라인앤드프렌치Smith Kline & French와, 다음에는 글락소 웰컴Glaxo Wellcome과 합병해 오늘날의 글락소스미스클라인GlaxoSmithKlineO이 됐다. 연구를 계속했다면 비첨도 3000억 달러라는 스타틴 매출의 일부를 챙겼을지 모른다. 전체 매출이 3000억 달러라면 작은 일부라도 꽤 쏠쏠했을 것이다. 하지만 비첨은 포기했고 결국 아무것도 손에 쥐지 못했다.

쥐 실험에서 부정적 결과가 나온 것은 '가짜 실패'였다. 룬샷의 탓인 줄 알았지만 알고 보니 테스트에 결함이 있었던 것이다. 산쿄가 초창기 실패에도 연구를 계속 밀어붙인 것은 엔도 때문이었다. 산쿄는 경쟁에서 앞서가고 있었다. 산쿄는 엔도 덕분에 스타틴을 처음으로 발견했고, 처음으로 스타틴 특허를 냈고, 처음으로 스타틴을 사람에게 시험했고, 처음으로 환자에게서 임상적 효과를 보았다. 하지만 산쿄는 엔도가 떠난 후 나타난 다음번 '가짜 실패'에 무릎을 꿇고 말았다. 개 실험에서 나타난 가짜 결과 때문이었다. 산쿄는 3000억 달러 중 그들 몫이 될 수 있었던 것을 머크에 넘겨주고 말았다.

우리는 이런 '가짜 실패'를 도처에서 발견할 수 있다. 가짜 실패는 과학계에도 있고 비즈니스계에도 있다. 프로젝트가 폐기될 수 있는 이유는 수없이 많다. 자금 지원이 줄어들 수도 있고, 경쟁자가 승리할 수도 있고, 시장이 변화하거나 핵심 인물이 떠날 수도 있다. 그러나 룬샷이 폐기되는 흔한 이유는 가짜 실패 때문이다. 우리는 가짜 실패 때문에 프로젝트가 폐기될 위험을 완전히 없앨 수는 없다. 부정적 결과에는 ‘당신의 아이디어에 결함이 있습니다'라든가 ''당신의 테스트에 결함이 있습니다'라는 번쩍이는 네온사인이 따라오지 않는다. 그러나 이 위험성을 줄일 수는 있다. 엔도와 포크먼이 했던 일이 바로 그것이고, 이 책에서도 그 부분을 더 얘기할 것이다. 엔도와 포크먼이 위대한 발명가였다 해도 그들의 가장 뛰어난 능력은 실패를 철저히 수사하는 능력이었다. 두사람은 진짜 실패와 가짜 실패를 구분할 줄 알았다.

실패를 수사하는 능력은 괜찮은 과학자와 위대한 과학자를 구별할 뿐만 아니라 괜찮은 사업가와 위대한 사업가를 구별해준다.

예를 들어보자. 2004년에 페이스북Facebook이 출시됐을 때는 이미 많은 소셜 네트워크가 사용자들의 충성도를 얻으려 했으나 실패한 뒤였다. 사용자들은 이 네트워크에서 저 네트워크로 옮겨 다녔다. 클래스메이츠Classmates, 식스디그리즈SixDegrees, 케어투Care2, 에이전 애비뉴Asian Avenue, 블랙플래닛BlackPlanet, 키위박스Kiwibox, 라이브저널Live-Journal, 스텀블어폰StumbleUpon, 엘프우드티fwood, 미트업Meetup, 다지볼Dodgeball, 딜리셔스Delicious, 트라이브Tribe, 허브 컬처Hub Culture, 하이파이브HI5, 어스몰월드ASmallWorld 모두가 그랬다. 마크 저커버그Mark Zuckerberg가 스타트업을 세울 자금을 모집하려고 투자자들을 만났을 때도 사용자들은 가장 최근에 성공 스토리를 썼던 프렌드스터Friendster를 버리고 마이스페이스Myspace로 갈아타기시작하고 있었다. 대부분의 투자자는 이런 웹사이트들이 옷이 유행을 타는 것과 같다고 결론 내렸다. 사용자들은 청바지 갈아입듯 소셜 네트워크를 갈아탔고, 투자자들은 두 손을 들었다.

그러나 파운더스 펀드Founders Fund의 피터 틸Peter Thiel과 켄 하워리Ken Howery는 프렌드스터의 배후에 있는 지인들에게 연락을 취해봤다. 두 사람은 사용자들이 '왜' 프렌드스터를 떠나는지 파고들었다. 다른 사용자들과 마찬가지로 틸과 하워리도 프렌드스터가 종종 먹통이 된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또한 프렌드스터를 만든 팀이 사이트 확장 방법에 관해 중요한 조언을 받았으나 무시했다는 사실도 알게 됐다. 겨우 수천 명의 사용자를 염두에 두고 만들어진 시스템을 수백만명이 이용할 수 있게 변신시키는 방법에 관한 아주 중요한 조언이었는데 말이다. 틸과 하워리는 프렌드스터의 고객 유지 현황에 관한 데이터를 부탁해 받아보았다. 그러고는 프렌드스터가 그토록 짜증스럽게 먹통이 되는데도 사용자들이 거기 얼마나 오래 머무는지 알고 충격을 받았다.

틸과 하워리는 무슨 의류 브랜드처럼 소셜 네트워크의 비즈니스 모델이 약하기 때문에 사용자들이 떠나고 있는 게 아니라고 결론 내렸다. 사용자들이 떠나는 이유는 소프트웨어상의 결함 때문이었다. '가짜 실패'였다.

피터 틸은 저커버그에게 50만 달러짜리 수표를 써줬다. 8년 뒤에 틸은 자신의 지분 대부분을 페이스북에 팔고 대략 10억 달러를 받았다.

틸은 프렌드스터의 가짜 실패를 알아보았다. 엔도 아키라가 스타틴의 가짜 실패를 알아보고, 포크먼이 혈관 신생 억제 요법의 가짜 실패를 알아봤던 것처럼 말이다.

프로젝트 수호자를 만들어라

바람 앞 등불 같은 프로젝트에는 확고부동한 사람이 필요하다. 예를 들어 엔도가 떠난 이후 산코의 스타틴 프로그램은 시들해지더니 결국 주저앉았다. 내부적으로 가짜 실패를 조사하고 대처할 사람이 아무도 없었다. 다른 목적을 가진 사람들, 스타틴의 예산을 빼서 자기네 프로그램에 쓰고 싶어 하는 사람들의 비판으로부터 프로그램을 지켜낼 사람이 아무도 없었다.

엔도는 아이디어의 창안자일 뿐만 아니라 그 아이디어의 유능한 수호자였다. 주다 포크먼도 마찬가지다. 하지만 두 가지를 모두 갖춘 사람은 흔치 않다. 아이디어 창안자가 당연히 그 아이디어를 주도적으로 홍보하고 방어해야 하는 것 아닌가 하는 생각이 자연스럽게 든다. 하지만 최고의 창안자가 꼭 최고의 수호자가 되라는 법은 없다. 두 역할은 서로 다른 능력을 필요로 하고, 그 능력들은 종종 같은 사람에게서 발견되지 않을 수도 있다.

1장에서 1920년대 레이더의 원리를 발견한 호이트 테일러와 그 팀원들을 보았다. 그들은 훌륭한 창안자였으나 수호자로서의 능력은 형편없었다. 그들은 새로운 아이디어를 어떻게 포장해서 홍보해야 할지 감을 잡지 못했다. 회의적인 리더를 설득하는 방법도, 내키지 않아 하는 조직 내에 지원군을 확보하는 방법도 몰랐다.

미국 군대 레이더의 기원에 관한 설명을 읽어보면, 미국이 제때 기술을 발전시켜 세상을 바꾼데 대해 가장 큰 공로를 인정받아야 할 사람이 늘 빠져 있다. 바로 윌리엄 '딕' 파슨스William' Deak' Parsons 소위다(나중에 그는 제독이 된다). 직업 해군 장교였던 파슨스는 여가 시간에 《현대물리학 리뷰Reviews of Modern Physics》를 읽었다. 1933년 봄 그는 서른한 살의 나이로 두 번째 파견에서 돌아왔다. 군수품 사무국은 그를 해군연구소Naval Research Laboratory라고 하는, 해군내 “잘 안 알려진 조그만 곳”에 연락관으로 임명했다. 그곳에 간 파슨스는 스스로 알아낸 사실에어안이 벙벙해지고 말았다.

파슨스는 테일러가 설명해놓은 실험적 작업을 군에서 활용할 경우 어떤 가능성이 펼쳐질지 즉각 이해했다. (…)

육안으로 보이지 않는 항공기를 라디오 에코 장치로 탐지할 수 있다면 선박이나 항구가 기습당하지 않게 보호하고, 인명을 구하고, 어쩌면 전투의 흐름을 바꿀 수도 있었다. 그러나 황당하게도이 과감한 콘셉트를 제대로 탐구하려는 연구는 아무런 우선순위도 부여받지 못한 채 절름대고 있었다. 전문가 두 명이 파트타임처럼 작업하고 있는 것이 전부였다. 해군도, 두 과학자도 파슨스만큼 흥분하는 것 같지 않았다. (…)

파슨스가 한눈에 봐도 명백한 것을 아무도 알아보지 못하는 듯했다. 라디오 에코를 발견한 것이 해군 무기에 혁명을 가져올 수 있다는 사실을 말이다.

테일러의 팀에서 더 많은 정보를 알아낸 파슨스는 즉각 5000달러의 자금 지원을 요청했다. 경악스럽게도 요청은 거절되었다. 테일러를 침묵하게 만들었던 그 똑같은 회의적 시선이 파슨스의전투욕을 자극했다. 파슨스는 “집집마다 문을 두드리는 세일즈맨의 집요함으로” 해군 부서장들을 일일이 찾아다니며 아이디어를 소개하고 자신의 주장을 펼쳤다. 그의 경력이 위험해질 지경이었다. 그러나 파슨스는 해군연구소에 있는 과학자들에게 다시 힘을 불어넣었다. 그는 테일러에게 용기를 북돋워 처음으로 이 프로젝트에 전담 엔지니어 한 명을 배치하게 했다. 전담자가 된 로버트 페이지Robert Page는 연속적 신호가 아닌 펄스형 신호를 이용해 중요한 돌파구를 만들었다. 파슨스는 최고위 해군 장교들이 이 프로젝트를 위해 나서서 싸우도록 설득했다. 파슨스는 잠자던 곰이깨어날 때까지 찌르고 또 찔렀다.

세월이 한참 흐른 후, 전쟁 중에 대공 선박 보호를 감독했던 프레더릭 엔트위슬Frederick Entwistle 해군 소장과 버니바 부시는 파슨스의 공을 치하했다. 2차 세계대전이 시작됐을 때 실전에서 사용할 수 있도록 레이더가 준비되어 있던 것은 모두 파슨스 덕분이라고 말이다.

이게 바로 프로젝트 수호자다. 오늘날에는 발명가와 수호자의 역할을 분리할 줄 아는 훌륭한 바이오테크 회사나 제약회사가 많다. 그곳에선 프로젝트 수호자의 능력(파슨스의 능력)을 발휘할이들을 훈련하고 그들의 권위를 높여준다. 이게 자연스러운 일은 아니다. 창의적 측면에서 보면발명가(예술가)들은 남들이 자기 작품을 저절로 알아줄 거라고 생각할 때가 많다. 비즈니스 측면에서 보면 라인 매니저(병사)들은 아무것도 만들거나 팔지 않는 사람, 그저 어느 아이디어를 내부적으로 홍보할 뿐인 사람의 필요성을 느끼지 못한다. 그러나 훌륭한 프로젝트 수호자는 단순한 홍보 역할을 훌쩍 넘어선다. 그들은 두 가지 언어를 구사하는 전문가로, 예술가의 언어와 병사의 언어 모두에 능하기 때문에 양측을 한자리에 불러 모을 수 있다.

이런 수호자 역할을 만들어두면 이를 못마땅해하는 사람들도 있다. 하지만 그걸 잘하는 팀이나 회사는 해군이 레이더와 관련해 겪었던 일을 겪지 않아도 된다. 그럴 경우 훌륭한 수호자가 없어서 위대한 아이디어가 땅에 묻히는 일은 없을 것이다.

호기심을 갖고 실패에 귀 기울여라

나는 차질이 생기거나 거절당할 때마다(자주 있는 일이다), 룬샷의 위태로운 처지에서 비롯하는 세 번째 교훈을 되새긴다. 엔도 아키라, 주다 포크먼, 피터 틸이 가짜 실패를 넘어설 수 있었던 요령도 바로 이것이다. 나는 이것을 '호기심을 갖고 실패에 귀 기울이기'라고 생각한다. 공격을 받았을 때 방어하거나 무시하고 싶은 충동을 극복하고 열린 마음으로 실패를 조사하는 것 말이다.

예를 들어 동물 실험이 효과가 없었을 때 엔도는 남들처럼 포기하는 것이 아니라 '왜' 효과가 없는지 물었다. 그리고 여러 아이디어를 테스트하려고 했다. 친구에게 이제 곧 닭꼬치가 될 닭들에게 스타틴을 시험해보자고 설득하기 한참 전에 이미 엔도는 왜 자신의 약이 예상처럼 움직이지않는지 이해하려고 여러 달을 실험하며 노력했다. 엔도는 이미 '종의 차이'(동물 종에 따라 약물의효과가 매우 달라지는 것)를 의심하고 있었다. 그랬기 때문에 기회가 나타났을 때 재빨리 행동할 수 있었다.

남들은 프렌드스터가 소셜 네트워크 유행의 또 다른 사례일 뿐이라고 생각했을 때, 틸과 하워리는 더 깊이 파고들어서 '왜' 사용자들이 떠나는지 조사했다. 그리고 정반대의 답을 찾아내고 거기에 확신을 가졌다. 반대 의견에 확신이 선다면 아주 매력적인 투자처가 만들어진다.

앞서 생물학자인 내 친구가 “아무도 그의 데이터를 재현할 수 없다"며 주다 포크먼을 멀리하라고 조언해주었다는 얘기를 했다. 실제로 처음에 일부 사람들은 정말로 포크먼의 데이터를 재현할 수 없었다. 포크먼이 1997년 획기적 논문을 발표한 직후 다른 연구소들이 그 결과를 확증하고 확장하기 위해 자료와 지침을 요청하는 편지를 보냈다. 포크먼은 즉시 두 가지를 모두 보내주었다. 일부 연구소에서는 실험이 효과가 없었다(성공한 연구소들도 있었다). 어느 기자가 실패에 관한 이야기를 전해 들었고, 1998년 《월스트리트 저널The Wall Street Journal》에는 “결과 재현 실패로 새로운 암 치료법 휘청이다"라는 기사가 걸렸다. 학계에서는 결과가 재현되지 않으면 경력이 끝장난다. 특히나 전국 신문에 표제로 실렸다면 말이다.

그러나 포크먼은 평론가들에게 화풀이하는 대신, 조사를 했다. 다른 연구소가 정확히 뭘 어떻게 하고 있는지, '왜' 그들의 실험이 실패하는지 알아내려고 했다. 결국 그는 자신의 실험실이 보내준 민감한 일부 샘플 자료가 장거리 배송을 위한 동결 과정에서 손상을 입었음을 발견했다. 그는 샘플 배송 방법을 바꿨다. 실험은 효과를 내기 시작했고 전국의 연구소들은 다시 그의 연구를지원하기 시작했다.

실제로 '호기심을 갖고 실패에 귀 기울이기'가 집요하게 실행되는 것을 내가 처음 목격한 것은 주다를 통해서였다. 그는 공격을 받았을 때 상대를 반박하고 싶은 충동을 (보통은) 극복해내곤 했다. 그는 계속해서 열린 마음을 유지하고 진정한 관심과 배우고자 하는 열망으로 조용히 조사에 임했다.

왜 '호기심'이라고 표현했을까? 나는 자의로든 타의로든 경영자 교육 워크숍이나 감수성 교육을 꽤 자주 받았다. 그래서 '능동적으로 듣기’라는 주문이 머릿속에 박혀 있다. 방금 들은 얘기를 그대로 따라 해서 내가 이해했다는 사실을 보여라. 하지만 투자자들이 내 제안에 퇴짜를 놓거나 고객이 내 제품을 거절하거나 배우자가 방을 나가버렸을 때는 상대의 메시지를 알아들었다고 표시하는 것만으로는 충분치 않다. 어느 프로젝트에 내 영혼을 담았다면 나쁜 결과를 무시해버리고 싶은 유혹이 커진다. 내가 옳은 길로 가고 있다는 확인을 받고 싶어진다. 그래서 반대하는 사람을 무시하거나 공격하면서 친구나 멘토, 엄마에게서 확신을 얻으려 한다.

'호기심을 갖고 실패에 귀 기울이기'는 사탕발림에만 귀 기울이거나 단순히 반응을 듣고 마는 일이 아니다. 이는 진짜 호기심을 갖고서 '왜' 어떤 것이 잘 안 되는지, '왜' 사람들이 구매하지 않는지 더 깊이 파보는 행위다. 당신이 애지중지하는 무언가를 아무도 좋아하지 않는다는 얘기를 듣는 건 쉬운 일이 아니다. 거기에 이유까지 계속 물어본다면 더더욱 힘든 일이 될 것이다.

"언제 포기해야 하는지는 어떻게 알 수 있나요?" '호기심을 갖고 실패에 귀 기울이기'는 사업가를 비롯한 룬샷의 수호자들이 가장 괴로워하며 물어 오는 그 질문에 내가 제시하는 답변이기도하다. 이 질문은 꼭 밤늦은 시간에 술이 몇 잔 들어간 뒤에야 등장하곤 한다. 일상적 어려움에 관한 이야기가 잦아들고 실존의 문제로 대화가 옮겨 갈 즈음, 수년간 쌓인 피로가 몸에서 서서히 빠져나갈 즈음 말이다.

과연 끈기와 고집은 어떻게 구분해야 할까?

내 경우에는 '호기심을 갖고 실패에 귀 기울이기'가 하나의 신호다. 내가 수년을 투자한 프로젝트에 누군가 이의를 제기할 때 분노하며 방어할 것인가, 아니면 진정한 호기심을 가지고 조사에 임할 것인가.

내가 알아낸 바로는, 스스로 더 이상 지문하지 않을 때가 가장 걱정해야 할 때다. 이제 그 이야기를 해보자.

3장 위대한 기업의 착각

나의 맹점을 직시하라

팬암의 죽음이 놀랍기는 해도 특별한 경우는 아니다. 후안 트립 같은 제품형 룬샷의 대가들이이끈 기업은 거의 모두가 그런 충격을 받는다. 규제 당국이 되었든, 새로운 경쟁자가 되었든 갑작스러운 변화가 출현하는 순간 음악은 뚝 그치게 마련이다. 더 이상 룬샷-프랜차이즈 선순환이 작동하지 않는다. 바퀴가 한 바퀴만 더 돌아도 그 많은 보잉 747을 아무도 타려 하지 않는다. 반면 자체 룬샷을 계속 키워오다 그중 하나라도 새롭게 바뀐 세상에 꼭 맞는 것이 있는 경쟁자는 게임을 계속 이어간다.

아메리칸 항공의 로버트 크랜들을 비롯해 경쟁자들의 전략형 룬샷이 트립의 맹점을 덮쳤고 거인을 쓰러뜨렸다. 이런 일은 그 어느 업계에서든, 기업에서든, 팀에서든 벌어질 수 있다.

예를 들어 전설적인 IBM의 하드웨어 사업 80년 역사가 1990년대에 붕괴된 것은 전형적인 제품형 룬샷의 사례처럼 들릴지 모른다. 신기술(개인용 컴퓨터)이 구기술(메인프레임 컴퓨터)을 대체하면서 챔피언(IBM)을 완패시켰다고 말이다. 하지만 진실은 그렇지 않았다. 메인프레임 컴퓨터계의다른 '모든' 경쟁자와는 달리 IBM은 신기술에 통달해 있었다. IBM은 자사의 첫 번째 개인용 컴퓨터를 출시하고서 3년 만인 1981년 매출 50억 달러를 달성하며 시장점유율1위를 차지했다. 애플, 탠디Tandy, 코모도어Commodore, 덱DEC, 허니웰Honeywell, 스페리Sperry 등 모든 기업이 저 멀리 뒤처지거나 문을 닫았을 때 말이다.

팬암이 국제 여행을 장악했던 것처럼 IBM은 수십 년간 컴퓨터 업계를 지배했다. 1981년 IBM이 올린 130억 달러의 매출은 2위부터 일곱 개 경쟁사의 매출을 합한 것보다 많았다(컴퓨터 업계를 흔히 ‘IBM과 일곱 난쟁이’라고 불렀다). 트립이 새로운 제트엔진에 뛰어들었던 것처럼 IBM도 새로운 사업(개인용 컴퓨터)에 뛰어들었다. IBM은 컴퓨터 세상을 지배하고 있었기에 개인용 컴퓨터의 핵심 요소 두 가지, 즉 소프트웨어와 마이크로프로세서를 각각 마이크로소프트와 인텔Intel이라는 작디작은 기업에서 아웃소싱했다.

마이크로소프트는 직원이 고작 32명이었다. 인텔은 살아남기 위해 현금 수혈이 절박했다. 하지만 IBM은 이내 알게 된다. 개인 구매자들은 컴퓨터 박스에 적힌 브랜드보다는 친구들과의 파일 교환에 더 관심이 있다는 사실을 말이다. 파일 교환을 쉽게 하려면 중요한 것은 컴퓨터를 조립한 회사의 로고가 아니라 소프트웨어와 마이크로프로세서였다. IBM은 전략형 룬샷의 변화를 놓쳤다. 변화는 고객들이 중시하는 지점이 바뀐 데서 비롯했다.

마이크로소프트의 소프트웨어와 인텔의 칩을 발 빠르게 도입한 복제품이 시장에 쏟아져 나오자 IBM의 시장점유율은 훅훅 줄어들었다. 1993년 IBM은 81억 달러의 적자를 기록했다. 창립후 최대 규모의 적자였다. 그해에만 10만 명의 직원을 내보냈다. 역시 창립 후 최대 규모의 해고 였다. 10년 뒤 IBM은 남아 있던 개인용 컴퓨터 사업 전체를 레노버Lenovo에 매각했다.

한때 IBM의 조그만 공급자였던 마이크로소프트와 인텔의 현재 시가총액을 합하면 1조 5000억 달러에 육박한다. IBM의 열 배 이상이다. IBM은 제품형 룬샷을 정확히 예측해 전투에서 승리했다. 그러나 소프트웨어 표준이라는 중요한 전략형 룬샷을 놓침으로써 전쟁에서 패배했다.

자신의 맹점에 유의하라는 것은 중요한 교훈이다. 하지만 훨씬 더 큰 교훈이 있다. 이 교훈이바로 1장 끝부분에서 보았던 4사분면, 즉 '함정'으로 가는 열쇠다.

41년간 후안 트립은 산 정상에 서서 룬샷을 지목했다. 자신의 프랜차이즈를 성장시켜줄지 모를 신기술이나 제품형 룬샷(더 빠른 엔진이나 항법 시스템 같은 것들)을 보면 그는 그것들을 꼭 가져야 했다. 이성적인 그 어떤 전략으로도 더 크고, 더 빠르고, 더 많은 것을 정당화할 수 없을 때조차 그는 그것들을 가져야만 했다.

이것을 모세의 함정 Moses Trap이라고 부르자. 현장의 병사와 벤치의 예술가 사이에 오가는 균형 있는 아이디어와 피드백을 통해 가장 유리한 룬샷을 고르는 게 아니라, 오직 신성한 리더의 뜻에 따라 아이디어가 정지될 때, 팀이나 기업은 함정에 빠진다. 리더는 자신의 보좌진을 승진시키고, 바다를 갈라 선택받은 룬샷을 위한 길을 낸다. 위험한 선순환의 주기는 점점 더 빨라진다. 룬샷과 프랜차이즈는 서로를 더 크게, 더 빨리, 더 많이 키운다. 전지전능한 리더는 전략상의 이점을 바탕으로 움직이는 게 아니라 룬샷에 대한 애정에 따라 행동하기 시작한다. 그러다가 바퀴가 헛도는 일이 일어난다.

리더와 그 추종자들은 팬암처럼 달을 향해 팔을 뻗다가 날개가 꺾일 수도 있다. 아니면 정반대로 더 높은 곳까지 오를지도 모른다. 우리가 다음 장에서 보게 될 어느 모세처럼 말이다.

4장 눈먼 선지자

모세의 함정

폴라로이드 주주총회에서 폴라비전에 관한 발표가 끝나갈 무렵이었다. 랜드는 프레젠테이션을 마치고, 붉은 모자를 쓴 댄서에게 고맙다는 인사를 건넸다. 안내 직원들이 참석자들을 특별히 설계된 20개의 '영화 코너'로 데려갔다. 각 코너에는 마임 공연자와 댄서, 저글링하는 곡예사가 있었다. 기자들과 투자자들은 폴라비전을 살펴보고 3분짜리 즉석 인화 영화를 만들어본 다음, 질의응답 시간을 위해 다시 자리로 돌아왔다. 수십 명의 행복한 공연자들에 둘러싸인 랜드가 질문을받겠다고 했다. 뻔한 얘기가 잠시 오간 후 어느 애널리스트가 물었다. “실적은 어떻습니까?"

랜드는 그가 남긴 또 하나의 유명한 말로 답한다. “중요한 게 오직 실적밖에 없던가요? 그 얼마

나 주제넘은 소리인지. 실적은 하늘이 아시겠죠."

어떻게 '모세의 함정’에 빠지게 되나?

업계의 골리앗이 몰락한 익숙한 이야기는 수십 년간 이어진 성공에서 시작한다. 그 성공이 지나고 나면 우풀했던 늙은 기업은 신선함을 잃는다. 목마름을 잊어버린다. 이제 막 두각을 드러낸 꼬마 다윗이 나타나 예상치 못한 무기로 어기적거리는 거인을 단숨에 해치운다. 그 무기는 모두가간과했던 새로운 아이디어 혹은 새로운 기술이다. 일종의 룬샷이다.

그러나 에드윈 랜드와 후안 트립, 그리고 다음 장에서 만나볼 스티브 잡스가 세운 골리앗은 위그림에 들어맞지 않는다. 랜드와 트립, 잡스는 모두 제품 혁신의 대가였고, 자신의 목마름, 대담하고 위험한 프로젝트에 대한 애정을 ‘단 한 번도' 잃은 적이 없었다. 그들의 골리앗이 사라진(잡스의 경우는 '거의' 사라진)이유는 세 사람 모두 똑같은 패턴을 따라 똑같은 함정에 빠졌기 때문이다.

선지자적 기질을 가진 리더였던 이들은 뛰어난 룬샷 배양소를 만들었다. 이들은 부시-베일 법칙의 첫 번째 원칙 '상분리'를 이뤄냈다. 하지만 이들은 새로운 아이디어의 심판자이자 배심원이 되기로 마음먹었다. 버니바 부시나 시어도어 베일은 룬샷과 프랜차이즈 사이의 균형과 소통을 챙기고 아이디어의 이전과 교환을 장려하는 정원사가 되는 것이 본인의 역할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이들 세 명의 제품 혁신 대가들은 자신이 이집트에서 유대민족을 구해낸 모세 같은 존재라고 믿었다. 자신의 보좌진을 승진시키고 선택받은 룬샷을 지목했다. 다시 말해 이들은 부시-베일 법칙의 두 번째 원칙 '동적평형'을 이루는 데 실패했다. '모서세의 함정'에 관해 그동안 우리는 무엇을 알게 됐는지, 최고 중에 최고인 사람마저도 그런 함정에 빠지는 까닭은 무엇인지 살펴보기로 하자.

위험한 선순환에 가속도가 붙는다

제품형 룬샷은 프랜차이즈를 성장시키고, 프랜차이즈는 다시 더 많은 제품형 룬샷을 만들어낸다. 후안 트립은 새로운 엔진 덕분에 더 많은 승객을 태우고 더 멀리, 더 빨리 날아갈 수 있었다.

그러자 수입이 늘어났고 그 수입으로 더 크고 빠른 엔진을 설계할 수 있었다. 즉석 흑백사진은 즉석 컬러사진이 됐고, 이는 대량 수요를 창출했다. 그렇게 만들어진 자금으로 사진을 더 빨리 뽑을수 있는 SX-70을 만들어 더 많은 사진을 찍어냈고, 이는 더 큰 확장의 동력이 됐다. 더 빠르게, 더 좋게, 더 많이.

프랜차이즈만 눈에 보인다

결국 수레바퀴를 계속 돌리는 제품형 룬샷만이 중요해진다. 후안 트립은 로버트 크랜들이나 다른 대형 항공사들 혹은 퍼시픽 사우스웨스트 항공Pacific Southwest Airlines 같은 저가 항공사에게서 전략형 룬샷이라는 새로운 비즈니스 방법을 목격했다. 하지만 무시했다. 에드윈 랜드는 디지털을 목격하기만 한 것이 아니라 디지털 속으로 깊숙이 뛰어들었다. 그러나 본인의 회사에서는 폴라비전을 위해 디지털을 무시했다. 즉석 영화는 즉석 사진이 굴린 바퀴를 계속 돌아가게 했지만, 디지털은 그렇지 않았다.

디지털 사진이라는 제품형 룬샷이 폴라로이드를 쓰러뜨렸다. 하지만 그게 다는 아니었다. 디지털 사진이라는 신기술에는 숨은 전략형 룬샷이 따라왔다. 방금 보았던 것처럼 랜드는 디지털 사진기술을 완벽히 이해하고 있었다. 그는 디지털 사진의 잠재력을 누구보다 먼저 알아보았고, 고위직 장군들과 정치 지도자들 앞에서 디지털 사진의 가치를 옹호했다. 업계의 거의 모든 사람이 아직 디지털 사진에 대해 들어본 적도 없을 때 말이다.

랜드와 그의 경영진이 디지털을 일축한 이유는 30년간 필름을 팔아 돈을 벌었기 때문이었다. 폴라로이드는 카메라를 팔아서 버는 돈보다 즉석 사진의 카트리지를 팔아서 얻는 수입이 더 많았다. 디지털로 가면 필름이 설 자리가 없어지고 이는 수입이 없다는 뜻이 된다. 그래서 폴라로이드는 디지털이 "절대로 돈이 될 리 없다”고 했다. 랜드가 디지털이라는 새로운 기술을 일축한 이유는 전략형 룬샷, 그러니까 디지털을 통해 수입을 창출할 수 있는 수많은 방법을 찾아보지 않았기 때문이다. 요컨대 랜드는 후안 트립과 마찬가지로 본인의 강점(제품형 룬샷)에만 의지하고 약점(전략형 룬샷)을 직시하지 않았다.

모세는 무소불위가 되고 룬샷을 법으로 지정한다

버니바 부시와 시어도어 베일은 기술 자체보다는 '기술이전'을 경영했다. 그들은 룬샷과 프랜차이즈 사이의 균형과 소통을 중시했다. 반면 폴라비전 프로젝트에서 랜드는 '중심에 선 치어리더이자 대변인' 이었다. 랜드를 존경했고, 20년간 폴라로이드에서 여러 연구팀을 이끌었던 한 인사는 랜드에 관해 이렇게 썼다.

그는 회사 차원에서만이 아니라 연구 차원에서도 상사였다. 그리고 그 점은 시간이 지날수록 같다. 그는 회장이자 CEO였을 뿐만 아니라 연구소장이라는 직책도 보유했다. (...)여기서 진정한 관심사가 어디에 있었는지 알 수 있다. 연구와 관련한 의사결정은 언제나 그의 지시였지. 내 뜻은 아니었다.

폴라비전이 실패하고 제품 생산이 종료된 지 얼마 안 되어 랜드는 어느 프리랜서 조명 디자이 너를 즉석 무비카메라가 가득한 창고로 데려왔다. 디자이너는 랜드에게 왜 “이토록 슬픈 풍경”을 보여주느냐고 물었다.

랜드가 대답했다. "자만심이 어떻게 생겼는지 보여드리려고요."

1장에서 우리는 다음에 나오는 도표를 통해 부시와 베일이 무엇을 달성했는지 살펴보았다. 두사람은 자랑스러운 프랜차이즈를 보유했으나 빠르게 신선함을 잃어가던 오래된 조직을 사분면의 오른쪽 상단으로 끌고 왔다. 똑같이 강력한 연구 그룹과 프랜차이즈 그룹이 지속적으로 프로젝트와 아이디어를 교환했고(상분리), 어느 한쪽도 다른 한쪽을 압도하지 않았다(동적평형).

랜드와 트립은 사분면의 왼쪽 하단에서 벗어나는 데는 성공했다. 그러나 오른쪽 하단으로밖에 옮겨 가지 못했다. '모세의 함정'으로 직행한 것이다.

랜드는 그가 만든 룬샷 배양소에 담을 둘러쳐서 회사의 나머지 부분이 침범해 들어오지 못하게했다. 그는 회사의 엔지니어링 팀장이었던 빌 매큐Bil MeCune은 물론이고 자신의 연구에 직접적으로 관련된 사람이 아니면 그 누구도 9층에 있는 개인 실험실에 들어오지 못하게 했다. 그의 룬샷 배양소는 노벨상급의 획기적 돌파구를 여럿 배출했다. 회사의 프랜차이즈 그룹은 수백만 대의 카메라를 팔았다. 그러나 어떤 룬샷이 어느 시기에 어떤 조건에서 등장할지는 순전히 랜드의 마음에 달려 있었다.

사분면의 오른쪽 하단으로 옮겨 간다면 상전이와 쇠퇴를 좀 미룰 수 있을지는 몰라도 막을 수는 없다. 모세가 룬샷을 지목해 생명을 부여할 수는 있다. 그러나 수레바퀴가 멈추고 나면 마법은 더 이상 지속될 수 없다.

슈펭글러Oswald Spengler와 슘페터Joseph Schumpeter로 대표되는 오스트리아 및 독일의 숙명론적 학파는 쇠퇴를 피할 수 없다고 말한다. 그에 따르면 제국은 늘 경직될 것이고, 언제나 다윗이 등장해 골리앗을 무찌를 것이다. 이 창조적 파괴의 사이클은 정말로 피할 수 없는 것일까? 제국은 어찌해야 할까?

버니바 부시와 시어도어 베일은 역사의 순환에 따라 멸망의 날이 찾아오는 것이 반드시 불가피한 일만은 '아님'을 알고 있었다. 지속 가능하고 늘 신선한 창의성과 성장을 가져올 수 있는 최선의 길은 조직을 사분면의 오른쪽 상단으로 데려가는 것임을 알고 있었다. 두 상태가 분리되어 있으면서도 균형 잡힌 동적평형으로 연결되어 있는 형세 말이다.

하지만 대체 어떻게 해야 거기 도달할 수 있을까?

5장 모세의 함정 탈출하기

리더는 정원사다

앞서 제록스 파크의 사례가 여러 번 등장했다. 1부의 각 장에서 배운 이야기를 정리하기에 앞서 제록스 파크에서는 무슨 일이 있었는지 간략히 언급하고 지나가면 좋을 것 같다. 제록스 파크는 ‘모세의 함정'과 정반대되는 함정을 여실히 보여주기 때문이다.

1970년대 제록스는 혁신의 상징이었다. 애플이 등장하기 전까지 제록스는 한 가지 기술(복사기)을 도입해 10년 내 매출 10억 달러를 달성한 최초의 기업이 됐다. 하지만 이미 1970년 복사기 프랜차이즈는 성숙기에 이르렀고, 제록스 지도부는 캘리포니아주 팰로앨토에 별도 조직을 만들기로 했다. 회사 본부가 있는 뉴욕이나 제조 사업부가 위치한 텍사스주와는 멀리 떨어진 데서 새로운 기술을 탐구하기 위해서였다. 이 별도 조직을 그들은 팰로앨토 연구소Palo Alto Research Center, 줄여서 파크PARC라고 불렀다. 파크에는 가장 명석한 두뇌를 가진 최고 인재들이 모여들었다. 파크의 엔지니어들은 나중에 컴퓨터 과학 분야에서 이름 높은 상을 수도 없이 받았고, 아주초기 단계였던 여러 선구적인 컴퓨터 기업(애플도 그중 하나)을 창업하거나 거기에 합류하거나 그런 곳을 혁신하는 일을 하게 된다.

1970년대 파크의 엔지니어들은 최초의 그래픽 컴퓨터인 알토와 최초의 시각적 워드프로세서, 최초의 레이저프린터, 최초의 근거리통신망(이더넷ethernet), 최초의 객체 지향 프로그래밍 언어, 그 밖에도 최초의 대여섯 가지 기술을 발명했다. 믿기지 않는 발명의 연속이었다. 그러나 이런 획기적 돌파구들 중에서 제록스가 상용화한 것은 단 하나도 없다.

"혁신의 매립지 같은 회사들이 있다." 애플의 고위 경영자 중 한 명은 그렇게 썼다. 이 경영자는 파크에 있던 최고 엔지니어 몇몇을 애플로 데려왔다. “[파크는] 위대한 아이디어들이 죽으러가는 쓰레기장 같은 곳이다. 파크에서는 핵심 개발 인력이 속속 회사를 떠났다. 자신의 제품이 시장에 나오는 것을 도무지 볼 수가 없었기 때문이다."

파크에서 알토 프로젝트를 이끌던 리더 가운데 한 명은 파크에 있는 룬샷 그룸과 텍사스의 프랜차이즈 그룹(타자기를 비롯한 사무용 기기를 만들고 있었다) 사이를 갈라놓는 것이 “예상 비용이나 기술적 비전이 아니라 회사의 구조"임을 서서히 깨달았다. “[텍사스 그룹은] 알토 IⅢ를 샌드백 삼아 두들겨 패야 했다. 왜냐하면 알토 IⅢⅢ를 가지고는 도저히 숫자를 맞출 수도, 보너스를 받을 수도 없었기 때문이다. 타자기도 성공적으로 만들고, 세계 최초의 개인용 컴퓨터도 성공적으로 도입하는 것은 그들이 짊어질 수 없는 짐이었을 것이다. 그들에게 그런 식의 요구를 해서는 안 됐다. 그러니 알토 III 가 저격당한 것이다."

요컨대 앞서 이야기했듯 약한 고리는 아이디어의 공급이 아니라, 아이디어를 현장으로 이전하는 일이다. 그리고 이 약한 고리를 만들어내는 것은 사람이나 문화가 아니라 '구조'(시스템 설계)다.

파크는 '모세의 함정'과 상반되는 사례다. 파크는 상분리에 기가 막히게 성공했다. 그러나 룬샷들은 모세의 명령으로 바깥에 나오기는커녕, 내부에서 무시받고 적극 진압당해 영영 수면 위로 올라오지 못했다("“컬러'는 미래 업무가 아니다”).

파크는 결코 보기 드문 사례가 아니다. 이런 '파크의 함정'(룬샷이 계속 주차된 채 출발하지 못하는 현상)은 흔한 일이다. 예를 들어 1975년 코닥 연구소에서는 스티브 새슨Steve Sasson이 세계 최초의 디지털카메라 가운데 하나를 개발했지만, 코닥은 그 제품을 10년 동안이나 묻어뒀다.

리더는 좋은 의도로 격리된 뛰어난 연구 집단을 만들어 창조와 발명에 적합한 환경에 배치할수 있다. 제록스의 리더들이 했던 것처럼 말이다. 그런 조직은 사분면의 왼쪽 하단 '침체'에서 빠져나와 오른쪽으로 옮겨 간다. 그러나 새로운 아이디어에 대해 프랜차이즈 그룹 내에서는 언제나 저항이 일어난다. 버니바 부시의 그룹에서 나온 수많은 기술에 대해 군에서 처음에는 저항했던 것처럼 말이다.

균형과 소통을 제대로 유지하려면 내부의 장벽을 극복하게 도와줄 손길이 필요하다. 어느 모세의 보좌진의 손길이 아니라, 정원사의 손길처럼 부드러운 손길이 필요하다. 아이디어가 이전되는데 힘을 너무 받거나(추상같은 명령) 힘이 부족하면(아무 지원 없음), 유망한 아이디어와 기술도 실험실에서 썩게 될 것이다. 그러면 조직은 그 기술을 상실하고, 시간과의 싸움에서 질 것이며, 그 기술을 발명한 사람의 충성심을 잃게 된다. 핵심 인재는 회사에 오래 머물지 않을 것이다.

1부를 마무리하며 부시-베일 법칙의 1, 2, 3 원칙을 요약해보자.

1. 상태를 분리하리

- 예술가와 병사를 분리하라

- 상태에 딱 맞는 툴을 마련하라

- 맹점에 주의하라: 두 가지 유형의 룬샷(제품형 룬샷과 전략형 룬샷)을 모두 육성하라

2. 동적평형을 만들어내라

- 예술가와 병사를 똑같이 사랑하라

- 기술이 아닌 기술이전을 경영하라: 정원사가 되라

- 분리된 그룹을 서로 연결해줄 프로젝트 수호자를 임명하고 훈련하라

3. 시스템 사고를 퍼뜨려라

- 조직이 왜 그런 선택을 했는지 '이유'를 계속 질문하라

- 의사결정 과정을 개선할 수 있는 '방법'을 계속 질문하라

- 결과주의 사고를 가진 팀을 찾아내고, 이들을 도와 시스템 사고를 채택하게 하라

이 책을 시작할 때 우리는 아주 혁신적이었다가 갑자기 혁신을 멈춘 조직들의 사례를 보았다.

그중 캣멀이 디즈니의 쇠퇴에 관해 언급한 부분이 있다. "당시 [<라이언 킹> 성공 이후] 시작된 가뭄은 이후 16년간 지속됐다. (…) 나는 그 뒤에 숨은 요인들을 빨리 알아내야 한다는 다급함을 느꼈다."

앞서 정리한 부시-베일 법칙은 훌륭한 팀들이 위대한 아이디어를 사산시키기 시작할 때, 상전이에 따라오는 쇠퇴와 침체를 어떻게 막을지에 관해 알려준다. 하지만 아직 우리는 무엇과 왜를 다루지 않았다. 여기에 숨어 있는 힘은 과연 무엇이고, 그 힘은 왜 나타날까? 다시 말해 무엇이 상전이를 유발할까?

그러면 이제부터는 '무엇’과 ‘왜'를 다뤄보기로 하자. 그 숨은 힘들을 이해하고 나면 부시-베일법칙의 네 번째 원칙이 드러날 것이다.

먼저 전설의 형사 한 명과 그만큼이나 유명했던 어느 정치철학자를 만나보자. 둘은 모두 숨은 힘의 전문가였다.

2부 우연한 발견을 위대한 성공으로 이끄는 설계의 원리

6장 결혼, 산불 그리고 테러리스트 : 상전이Ⅰ

아주 미세한 줄다리기

아주 미세한 전투에서 흐름이 바뀌면 시스템은 전환한다. 액체가 갑자기 얼어붙고, 도로가 갑자기 꽉 막히고, 숲이나 테러 조직의 네트워크가 갑자기 폭발한다. 두 가지 힘은 서로 경쟁하며 승자의 이름이 순식간에 바뀐다.

달걀판에서 구슬은 각 칸의 바닥 쪽으로 끌린다. 하지만 달걀판을 충분히 세게 흔들면 구슬이 칸 밖으로 나올 수 있다. 이게 바로 결합 에너지와 엔트로피의 싸움이다.

운전자는 빠르게 운전하고 싶어 한다. 하지만 앞차의 범퍼를 들이받지 않기 위해 브레이크를 밟는다. 이것은 속도와 안전의 싸움이다.

산불은 나무에서 나무로 옮겨 간다. 하지만 탈 수 있는 연료가 다할 수도 있고 비가 와서 나무가 젖을 수도 있다. 폭력적 운동이 확산할 수도 있지만 열정이 식거나 정부 또는 기업이 가상 테러 조직을 찾아내 폐쇄할 수도 있다. 이 두 가지는 모두 확산성이 증가하는 것과 감소하는 것 사이의 싸움이다.

단독 원자나 개인이 행동하면 그 힘으로는 점증적 변화밖에 일으키지 못한다. 그러나 그 힘이 천 배, 만 배로 곱해지면 시스템이 일순간 전환될 수도 있다. 그게 바로 상전이다.

이제 이런 개념들을 팀이나 기업, 혹은 어떤 형태든 목적을 가진 집단의 행동에 적용할 방법을 알아보자.

7장 마법의 숫자 150 : 상전이Ⅱ

조직을 춤추게 하는 방정식

연봉과 지분이라는 동기 요소를 통합해서 점검해보면 조직에 임계 규모가 있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이게 바로 매직넘버 'M'이다. M을 넘어가면 균형점은 프로젝트 업무를 선호하던 것에서 사내 정치를 선호하는 쪽으로 바뀐다.

임계점 아래일 때 직원들은 룬샷을 성공시키는 데 힘을 모은다. 임계점 위로 올라가면 개인마다 자신의 경력 관리를 더 중요시하게 되고 사내 정치가 출현한다. 이 경우 프랜차이즈를 위해 룬샷을 묵살할 가능성이 커진다. 개별적으로 보면 모든 사람이 혁신을 열렬히 신봉할 수도 있지만, 전체를 보면 '보이지 않는 도끼'가 출현한다.

그렇다면 임계점을 가를 이 매직넘버는 얼마일까? 공식은 다음과 같다. (이 공식에 관한 상세한

정보는 부록 '혁신의 방정식'을 참고하라.)

위 공식의 원리를 알아보자. 지분 비율 E는 분자에 있으므로 E가 증가하면 매직넘버 M도 커진다. 이 말은 곧 룬샷 상태일 때는 더 많은 사람이 사내 정치에 구애받지 않고 협업할 수 있다는 뜻이다. 이게 일리가 있는 이유는, 앞서 얘기한 것처럼 지분이 클수록 사내 정치보다는 프로젝트에 시간을 더 쓰게 되기 때문이다. 관리 범위를 나타내는 S(제곱) 역시 분자에 있다. 관리 범위를 늘리면 층의 수가 줄어들고 사내 정치의 중요성도 줄어든다. 이는 또한 프로젝트 결과에 걸린 직원들의 이해관계를 높인다. 두 가지 모두 경력에 대한 관심보다는 룬샷에 집중하게 해준다.

그러나 연봉 상승률 G가 증가하면 반대 현상이 벌어진다. 연봉 상승분이 커지면 사내 정치가 탄력을 받는다. 직원들이 경쟁적으로 아첨을 해서 큰 연봉 상승을 이루려 하기 때문이다. 그렇게되면 룬샷 상태에서 협업할 수 있는 사람들의 최대 수인 M이 줄어든다.

마지막 요소는 조직 적합도 F다. 회사가 사내 정치를 방지할 수 있는 구체적인 실적 평가 체계를 만들고, 직원들의 능력을 개발하는 데 투자하고, 각자의 능력이 빛날 수 있는 프로젝트에 직원들을 잘 연결시킨다면 룬샷을 육성할 가능성도 증가한다.

그렇다면 현실 세계에서 매직넘버 M은 얼마일까?

관리 범위의 경우 앞서 말한 범위의 중간치에 해당하는 6을 사용하기로 하자. 그리고 승진에 따른 전형적인 연봉 상승률이 12퍼센트라고 하자. E와 F의 전형적인 값에 대해서는 나중에 다시

이야기할 것이다. 지금으로서는 균형을 이루고 있는 회사를 상정해, 지분과 연봉이 보상에서 같은비율(각각 50퍼센트)을 차지하고, 능력과 사내 정치의 비율도 같다고 가정하자(F=1).

이 숫자들을 넣으면 다음과 같은 공식이 된다.

150. 참 흥미로운 숫자다.

최근 연구에 따르면 관리 범위는 더 커졌다. 딜로이트Deloitte에서 2014년 248개 기업을 설문조사했더니 평균 관리 범위는 아홉 명에서 열한 명 사이였다. 관리 범위와 책임이 늘어나니 연봉도 당연히 늘어났다. 그렇다면 관리 범위를 10으로 잡고, 평균 연봉 상승률은 공격적이지만 터무니없는 수준은 아닌 3분의 1(33퍼센트)로 잡자. 그러면 공식은 아래와 같이 된다.

150. 역시나 아주 흥미로운 숫자다.

어쩌면 브리검 영이나 빌 고어, 맬컴 글래드웰, 로빈 던바는 본능적으로 뭔가를 알고 있었을지 모른다. 전형적인 현실 세계에서 제어 변수의 값을 보면 실제로 매직넘버 150을 중심으로 인센티브가 갑작스럽게 변한다. 이 규모가 되면 줄다리기하는 힘의 균형이 바뀌고, 시스템은 룬샷에서 경력 관리에 초점을 맞추는 쪽으로 갑자기 전환한다.

그러나 브리검 영 등이 사용한 방법(기도, 주차장, 영장류 연구)은 우리가 더 큰 규모의 집단이 그런 운명을 피하고 룬샷을 육성할 수 있도록 (만일 가능하다면) 매직넘버를 바꿀 수 있는 방법을 알려주지는 않는다. 프로젝트의 '다음 단계’나 '실천 사항'에 “직원들의 신피질 크기를 키운다”라고 쓸 수는 없다.

반면 창발의 과학은 우리가 쓸 수 있는 실용적 방안들을 제시한다. 우리는 제어 변수를 조절해 상전이를 관리할 수 있다. 앞서 이야기했듯 우리는 눈이 오기 전에 보도에 소금을 뿌려 물의 어는 점을 낮출 수 있다. 우리는 눈이 얼어서 딱딱하게 되기보다는 녹기를 원한다.

6장에서 우리는 상평형 그림을 통해 교통 흐름 및 산불의 상전이에서 핵심이 되는 사항을 파악하고, 상전이를 관리할 수 있는 지침을 얻었다. 그렇다면 이 경우에 상평형 그림은 어떤 모습이 될까? 그 그림은 우리에게 무엇을 알려줄까?

집단의 규모가 임계점(앞선 공식의 매직넘버)보다 작을 때, 인센티브는 개인들이 룬샷을 중심으로 힘을 모으게 하는 쪽으로 작용한다. 반면 집단의 규모가 매직넘버를 넘어서면 인센티브는 경력관리에 초점을 맞추는 쪽으로 작용한다. 즉 개인들은 승진을 위해 사내 정치에 집중하게 된다(그림의 1번에서 2번으로). 전형적인 구조의 집단에서는 이 숫자가 아마 대략 150 정도일 것이다. 그러나 조직 구조의 제어 변수(지분 비율, 적합도, 관리 범위, 보상의 상승률)를 조정하면 매직넘버를 올릴 수 있다(점선이 기울어진 것은 그 때문이다. 만약 우리가 매직넘버를 조정할 수 없다면 점선은 그냥 수직선일 것이다.).

다시 말해 150명 규모보다 훨씬 큰 집단(그림의 2번)이 경력을 위한 사내 정치에 빠져 있더라도, 구조를 조정하면 다시 룬샷으로 관심의 초점을 돌릴 수 있다(2번에서 3번으로).

앞서 이야기한 것처럼 이런 원리는 규모가 커지더라도 여전히 모험적인 기질을 유지하고 싶어하는 작은 팀들뿐만 아니라, 내부적으로 룬샷을 육성하는 강력한 팀을 만들고 싶어 하는 큰 조직에도 적용된다.

'200만 명'으로 구성된 조직도 룬샷 그룹을 만들어 지난 50년간 존재한 그 어느 조직보다 월등히 혁신적인 성과를 내놓을 수 있다. 다음 장에서는 바로 그 조직에 관해 알아보자.

8장 룬샷이 폭발하는 조직을 설계하라

매직넘버를 높이는 법

사내 정치의 효과를 줄여라

보상이나 승진을 위한 로비를 어렵게 만들어라. 이들 사항을 결정할 때 해당 직원의 관리자에 대한 의존도를 줄이고 독립적 평가가 늘어날 수 있는 방법을 찾아라.

소프트 에쿼티를 활용하라

영향력이 큰 비금전적 보상을 찾아내서 활용하라. 예) 동료들의 인정, 내적 동기부여.

프로젝트-능력 적합도를 높여라

직원의 능력과 할당된 프로젝트가 서로 어울리지 않을 때 그것을 찾아낼 수 있는 사람과 프로세스에 투자하라. 어울리지 않는 조합이 발견되면 역할을 수정하거나 직원을 다른 팀으로 보내라. 직원이 너무 어렵지도, 너무 쉽지도 않은 역할을 맡게 하는 것이 목표다.

중간 계층을 해결하라

의도는 좋았으나 의도치 않은 결과를 만드는 보상, 즉 잘못된 인센티브를 찾아내서 고쳐라. 룬샷과 사내 정치 간의 싸움에서 가장 약한 고리인 위험한 중간 계층에게 특별한 관심을 기울여라. 승진을 위해 싸우게 만드는 인센티브를 멀리하고 결과에 집중하는 인센티브를 만들어라. 지위가 아닌 결과를 예찬하라.

칼싸움에 총을 들이대라

인재와 룬샷 쟁탈전에 경쟁자들은 철 지난 인센티브 체계를 동원할지도 모른다. 인센티브 설계라는 까다로운 분야의 전문가를 데려와라. 최고인센티브책임자를 임명하라.

관리 범위를 미세하게 조정하라

룬샷 그룹에는(프랜차이즈 그룹에는 아니다) 관리 범위를 넓혀서 통제를 느슨하게 하고, 더 많은 실험과 동료 간 문제 해결이 가능하게 하라.

많으면 달라진다

급성장하고 있는 행동경제학 분야는 인센티브와 환경적 신호가 행동에 미치는 영향력을 전문적으로 연구한다. 이 연구를 보면 인센티브와 환경적 신호의 영향력은 감지하기 어려운 경우가 많다. 왜냐하면 영향력이 숨어 있거나 인지 편향이라는 괴이한 심리학에 기초하기 때문이다. 인지편향의 예를 하나 들어보면, 어느 연구에서는 경험 많은 판사들에게 판결을 내리기 전에 주사위를 던져달라고 했다. 그랬더니 큰 숫자가 나오면 작은 숫자가 나왔을 때보다 형기가 60퍼센트나 늘어났다.

판사들의 사례는 충격적이기는 해도, 통제된 실험 상황에서 벌어졌다. 그런데 실생활에서도 직장 내 숨은 영향력은 우리에게 충격을 주기 충분하다. 분만 과정에서 환자와 의사의 선택이 바로 그런 예다. 1980년 이후 미국에서는 제왕절개 분만 비율이 두 배나 높아졌다. 지금은 거의 출산 세건중 한 건에 해당할 정도로 제왕절개는 미국에서 가장 흔히 시행되는 수술이 됐다. 이 비율은 세계보건기구와 공공보건국Public Health Service이 가이드로 정한 10~15퍼센트라는 비율보다 훨씬 높은 수치다(제왕절개를 하면 산모가 심각한 합병증에 걸릴 위험이 증가한다). 행동경제학자들의 최근 연구에 따르면 왜곡된 금전적 인센티브가 이런 과도한 제왕절개 수술을 불러온 것으로 보인다. 의사나 병원은 자연분만보다 제왕절개를 했을 때 더 많은 돈을 받는다. 그 차액이 클수록 제왕절개 비율이 높아진다는 연구 결과도 있다. 이런 결과 때문에 일부 병원에서는 정책을 바꾸기도했다. 자연분만과 제왕절개에 같은 비용을 청구하는 것이다.

두 가지 방법에 같은 비용을 청구한다는 것이 의사나 환자에게 어느 방법을 택하라고 지시한다는 뜻은 아니다. 이는 안전벨트 규정이 벨트를 매라고 지시하는 것과는 다르다. 그러나 이렇게 하면 최소한 잘못된 인센티브는 사라진다. 강제는 아니지만 우리가 원하는 어떤 행동을 장려할 수 있는 작은 변화를 '넛지nudge'라고들 부른다. 같은 제목의 책에서 캐스 선스타인Cass Sunstein과 리처드 탈러Richard Thaler는 몇 가지 정책 사례를 소개하는데, 그중에는 아주 진지한 것(직원들의 퇴직적금 가입률을 높여주는 방안)도 있고, 덜 진지하지만 똑같이 효과적인 것(소변기에 파리를 그려넣어 소변이 밖으로 새는 것을 80퍼센트 줄인 사례)도 있다. 행동경제학이라는 분야가 출범하는 데 기여한 공로로 리처드 탈러는 2017년 노벨상을 받았다. 개인의 의사결정에 관한 심리학을 경제학에 도입해 탈러의 작업에 영감을 주었던 대니얼 카너먼Daniel Kahneman은 2002년 노벨상을 받았다. 그렇다면 이들 노벨상과 넛지, 그리고 앞서 말한 룬샷을 보다 효과적으로 육성하는 여러 아이디어들은 서로 어떤 관련이 있을까?

먼저 공통점은, 숨은 방식으로 혹은 예상치 못한 방식으로 인센티브와 환경이 행동에 미치는 영향을 면밀히 분석했다는 점이다. 다른 점은, 지금까지 행동경제학은 환경이 '개인'의 의사결정에 미치는 영향을 연구했지만, 앞서 우리가 다룬 내용은 환경이 '집합적' 의사결정에 미치는 영향을 설명한다는 점이다. 팀이나 기업이 왜 룬샷을 거부하는지를 말이다.

예를 들어 주사위를 던져 큰 숫자가 나왔을 때 더 많은 형량을 선고하는 판사들은 비이성적으로 '보인다'. 하지만 그렇게 겉으로 보이는 비이성적인 행동 아래에는 일상적 업무를 효율적으로 처리하기 위해 진화한, 의사결정에 관한 뇌의 법칙이 자리하고 있다. (주사위를 던진 후에 형량을 선고하는 것이 일상적인 업무는 아니다.) 마찬가지로 개인이라면 모두가 지지했을 귀중한 룬샷을 탐팀이 퇴짜를 놓는 행동은 비이성적으로 '보인다'. 우리가 했던 작업은 팀이 왜 그런 의사결정에 도달했는지 합리적 이유를 탐구한 것이다. 다시 말해, 개인뿐만 아니라 팀이나 기업이 왜 ‘뻔하게 비합리적'인지 알아본 것이다.

두 경우 모두 행동을 이해하면 행동을 관리하는 데 도움이 된다. 우리는 개인이 더 좋은 의사결정을 내리도록 환경을 설계하고 싶을 때도 있고, 대규모 집단이 혁신을 더 잘하도록 만들고 싶을때도 있으니 말이다.

개인의 행동을 연구하는 것과 집합적 행동을 연구하는 것의 차이는 다시 한 번 필립 앤더슨의 '많으면 달라진다' 라는 모토를 떠올리게 한다. 앤더슨은 일부 물질이 갑자기 도체(전기가 잘 통한다)에서 부도체(전기가 잘 통하지 않는다)로 변하는 이유를 설명해 노벨상을 받았다. 이를 '금속-절연체 상전이'라고 한다. 또한 그는 일부 물질이 갑자기 일반적 금속에서 초전도체로 변하는 이유를 설명하는 데도 도움을 주었다. 초전도체에서는 전기 저항이 모두 사라진다. 두 가지는 모두 '집합적' 행동의 예다. 그 안에 들어 있는 전자는 동일하다. '개별’ 전자의 행동을 따로 떼어 살펴서는 이런 상전이를 이해할 방법이 없다.

지금까지 우리가 해온 작업은 두 개의 노벨상을 결합한 것이다. 우리는 이렇게 별개인 두 원칙을 같은 문제에 적용했다. 그리하여 인센티브의 미묘한 변화가 '집합적' 의사결정에 어떤 영향을 줄 수 있는지 알아보고 있다.

개인의 행동만 따로 떼어 분석해서는 왜 갑자기 팀이나 기업이 혁신을 잘하는 집단에서 혁신에 형편없는 집단으로 바뀌는지 이해할 수 없다. 혁신을 잘하는 능력은 '집합적' 행동이다. '많으면 달라지는' 또 다른 예시다.

마지막으로 말해둘 것이 있다. 위 모든 얘기는 팀이나 집단에 있는 개인들의 협업 방법을 설계 할 때 '구조'의 한 요소로 생각될 수 있다. 앞서 언급했던 '문화'에 관한 산더미 같은 문헌들과는대조적이다.

그러나 어떤 단어나 주제가 무의미해질 정도로 남용되었다고 해서 완전히 묵살되어야 한다는 뜻은 아니다. 복잡계(시장의 구매자와 판매자, 회사의 직원과 관리자, 소용돌이치는 강물의 원자와 분자처럼 많은 요소가 상호작용하는 시스템을 가리키는 용어다)에 그런 이름이 붙은 데는 이유가 있다. 복잡계의 가장 흥미로운 질문들에 관한 답이 간단한 경우는 거의 없다. 예를 들어 인간 신체라는 복잡계를 보면 당뇨나 암에 더 잘 걸리게 만드는 유전자가 있다. 하지만 개인의 생활방식도 중요하다. 가당 음료를 하루에 몇 리터씩 마시면 당뇨에 걸릴 수 있다. 담배를 하루에 몇 갑씩 피우면 폐암에 걸릴 확률이 높아진다. 유전자와 생활방식은 두 가지 '모두' 중요하다. 팀이나 집단도 마찬가지다.

구조와 문화는 '둘 다' 중요하다.

이 책의 목적은 특정한 행동 패턴(예컨대 승리를 예찬하는 것)은 도움이 되고 다른 행동 패턴(비명을 지르는 것)은 도움이 덜 된다는 생각을 ‘대체'하려는 게 아니다. 이 책은 그런 생각을 '보충'하려는 것이다.

1부에서 우리는 버니바 부시와 시어도어 베일로부터 구조에 대한 교훈을 얻었고, 어느 체스 챔피언으로부터 아이디어를 빌려 오기도 했다. 이런 것들은 우리가 혼돈과 침체, '모세의 함정'으로 부터 벗어날 수 있게 도와주었다. 2부에서는 상전이의 과학이 만들어내는 신선한 통찰을 통해 더혁신적인 집단을 만드는 방법을 이야기했다. 그리고 몇몇 사례를 통해 그런 아이디어들이 합쳐지면 어떻게 전쟁을 이기고, 질병을 치료하고, 산업을 바꿔놓을 수 있는지 살펴보았다.

그러면 이제 마무리로 또 하나의 작은 주제를 들여다보기로 하자. 바로 인간이라는 종의 역사다.

3부 세계사의 흐름을 바꾼 룬샷들

9장 왜 중국어가 아니라 영어인가

기업 내부에서건, 어느 산업 내부에서건, 룬샷 배양소가 번창하려면 세 가지 조건이 갖춰져야 한다.

1. 상분리: 룬샷 그룹과 프랜차이즈 그룹을 분리한다.

2. 동적평형: 양 그룹 간에 막힘없는 교환이 오간다.

3. 임계질량: 룬샷 그룹이 연쇄반응을 일으킬 수 있을 만큼 크다.

상분리, 동적평형 조건은 부시-베일 법칙의 첫 부분에 나왔고 1부에서 다루었다. 세 번째 임계질량은 투자와 관련된다.

정부가 할리우드 영화사 시스템을 둘로 쪼겠다면, 유전공학은 제약 세스템을 둘로 쪼겠다. 유전공학은 제조(신약을 발명하는 과학자)와 유통(그 신약을 시장에 판매하는 제약회사)을 분리했다.

대형 제약회사들은 노바티스Novartis, 화이자, 머크, 존슨앤드존슨, 일라이 릴리 등 소수의 대형 다국적 기업이다. 이들은 여러모로 구축해놓은 관계와 규모를 이용해 아르헨티나에 제품을 출시하고, 프랑스에서 당구그이 허가를 받고, 푸에르토리코에서 제품을 제조하고, J.P. 모건에서 자금지원을 받고, 일본의 손해배상 가이드라인을 지키는 것이 가능하다.

영화 산업과 신약 개발 산업 모두 두 개의 시장으로 나뉘어 있다. 프랜차이즈 사업을 하는 대형 기업들의 시장과 룬샷을 육성하는 소규모 전문 기업들의 시장으로 말이다. 두 시장은 그물망 같은 파트너십으로 연결되어 있다. 이러한 분리와 연결은 앞서 설명한 세 가지 조건 중 앞의 두 가지(상분리와 동적평형)가 산업에 적용된 예다.

세 번째 조건인 임계질량도 사례를 통해 설명하면 이해하기 쉽다.

룬샷 배양소의 중요한 역할 중에 하나는 각종 실패와 거절을 겪으면서도 바람 앞 등불 같은 룬샷을 계속 살려놓는 것이다.

앞서 얘기한 것처럼 신약 개발 산업과 영화 산업을 보면 대형 제약회사나 영화사 내부에서 폐기된 프로젝트는 계속 사장되거나 아니면 좀비 상태(죽은 것도 산 것도 아닌 상태)가 된다. 그러나 보스턴에 있는 작은 바이오테크 회사나 할리우드에 있는 작은 영화사들로 이뤄진 룬샷 배양소에서는 종료된 프로젝트도 계속 흘러 다니다가 결국은 새로운 투자자를 만나게 된다.

임계질량은 중요한 요소였다. 수천 년간 유지되어온 독단적 교리를 깨기 위해서는 하나가 아니라 줄줄이 엮인 수많은 룬샷이 필요했다. 그런 룬샷 중 일부는 훨씬 오래전에 다른 사회에서 개별적으로 출현했다. 행성이 태양 주위를 돈다는 아이디어나 미적분의 중요한 전신은 케플러나 뉴턴보다 몇백 년 앞서 이미 인도 케랄라의 수학·천문학 전문학교에서 나타났다. 그러나 중국에서와 마찬가지로 이들 아이디어에는 불이 붙지 못했다.

반면 임계질량을 달성한 유럽 전역에서는 조화로운 여러 발견이 동시에 일어났다.

야구를 제외한 모든 산업이 그렇듯 국가들의 세계에서도 마이너리거가 성장하면 메이저리거가 될 수 있다. 영국도 디즈니나 암젠과 마찬가지로 작디작은 마이너리거로 시작했다. 두 회사와 마찬가지로 영국도 강력한 룬샷(모든 룬샷의 어머니)의 예상치 못한 성공을 발판으로 성장했다. 영국은 그 아이디어를 무기화해 산업화를 이루어 메이저리거로 진화했고, 자신들의 언어와 관습을 전세계에 확산시켰다.

중국과 이슬람, 인도 제국은 쌓아놓은 부와 역사적 이점에도 불구하고 왜 과학혁명을 놓쳤을까? 마이크로소프트가 모바일 사업을 놓친 것과 머크가 단백질 약을 놓친 것, 대형 영화사들이 <나의 그리스식 웨딩>을 놓친 것과 같은 이유다. 룬샷은 프랜차이즈에 치중하는 제국이 아니라, 룬샷 배양소에서 번성한다. 룬샷에 능한 것과 프랜차이즈에 능한 것은 한 조직이 갖는 두 가지 상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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