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동기
· 건국대학교 대학원 문화콘텐츠학과 겸임교수
· 연세대학교 경영학과 및 경영대학원 졸업, 단국대학교 대학원 경영학 박사
· 기업, 정부기관, 대학교 최고경영자과정 및 방송 등에서 인문학 강연
· 저서: ≪이 정도는 알아야 할 정치의 상식≫, ≪오늘, 행복에 한 걸음 더 다가갑니다≫, ≪ 오래된 책들의 생각≫, ≪아주 낯익은 지식들로 시작하는 인문학 공부≫, ≪회사에 대 한 오해와 착각을 깨는 인문학적 생각들≫, ≪생각여행≫, ≪네 글자의 힘≫, ≪인문경 영으로 리드하라≫, ≪인문학으로 스펙하라≫, ≪해피노믹스≫, ≪독서의 이유≫, ≪직 장인이여 나 자신에게 열광하라≫, ≪미래사회 리더의 경영 키워드≫ 및 그 외 다수의 오디오 북 있음
Part 1 미(美) - 왜 아름다움을 추구하는가?
01 어떤 고난에도 굴하지 않고 소처럼 무거운 걸음을 옮기면서_이중섭
엄마, 태성이 그리고 우리 태연이를 소달구지에 태우고 따뜻한 남쪽 나라로 아빠가 소를 끌고 가는 그림을 그렸던다. 소 위에 있는 것은 구름이란다. - 이중섭의 '길 떠나는 가족' 엽서 글에서
삶의 마지막 순간까지 이중섭은 소를 즐겨 그렸다. 소는 다름아닌 그의 '의지'의 표현이었다. 아내 남덕에게 편지를 보내면서 '어떤 고난에도 굴하지 않고 소처럼 무거운 걸음을 옮기면서 안간힘을 다해 제작을 계속하고 있소'라고 쓴다. 뚜벅 뚜벅 길을 가는 소처럼 환경에 굴하지 않고 쉼 없이 그림을 그려 단란한 완전체 가족을 다시 이루고야 말겠다는 이중섭의 굳센 '의지' 였다.
<길 떠나는 가족> 1954년 작
이중섭이 죽고 며칠 동안 그의 시신은 방치되었다. 돌보는 이없고 찾는 이도 없는 무연고자였기 때문이다. 3일 뒤 친구인 시인 구상이 찾아와 장례를 치르고 화장한 다음 뼈의 절반은 망우리 공동묘지에 묻고 나머지 절반은 일본의 가족에게 보냈다. 가족에게 돌아갈 날만을 손꼽아 기다리며 처절하게 그림을 그려왔던 이중섭은 한 줌 재가 되어서야 비로소 가족의 품으로 돌아갔다. 삶을 갈아 붓으로 찍어 옮긴 소, 닭, 꽃, 아이들은 오늘도 꽤적하고 널찍하고 품격 넘치는 공간에서 눈부신 스포트라이트를 받으며 황금의 광채를 발하고 있건만.
02 우리들의 싸움은 하늘과 땅 사이에 가득 차 있다_김수영
풀이 눕는다
바람보다도 더 빨리 눕는다
바람보다도 더 빨리 울고
바람보다 먼저 일어난다
- 김수영의 묘비명에서
'시작은 머리로 하는 것이 아니고 심장으로 하는 것도 아니고 몸으로 하는 것이다. 온몸으로 밀고 나가는 것이다. 정확하게 말하자면, 온몸으로 동시에 밀고 나가는 것이다.' 자신의 산문 '시여, 침을 뱉어라'에서 김수영이 한 말이다. 자신의 주장처럼 시인은 온몸으로 시를 썼다. 영원한 권력을 꿈꾸는 권력자나 일상을 보듬고 하루를 살아내는 이들이나 고급시어 찾기에 몸이 야위는 시인들까지 머리가 쭈뼛 설 정도로.
03 연꽃같이 맑고 깨끗하여라_윤이상
윤이상이 동포를 위해 병상에서 마지막으로 작곡한 교향시 <화염에 휩싸인 천사>
세계인 대부분이 한국이 어디 붙어 있는 나라인지도 모를 50년 전, 전 세계인의 눈과 귀가 몰리는 올림픽의 개막 축전 행사를 한국인이, 그것도 한국인의 전형적 정서인 '심청전'으로 만든 오페라라니. 세계인의 축제 뮌헨올림픽 서막의 주인공은 현대 음악의 거장이자 세계적인 작곡가 제독 한인 윤이상이었다. '한국인', 아니 '세계 시민' 윤이상이었다.
04 나는 내 슬픔과 어리석음에 눌리어 죽을 수밖에 없는 것을 느끼는 것이었다_백석
나는 혼자 쓸쓸히 않어 소주를 마신다
소주를 마시며 생각한다
나타샤와 나는
눈이 푹푹 쌓이는 밤 흰 당나귀 타고
산골로 가자 출출이 우는 깊은 산골로 가 마가리에 살자
- 백석의 '나와 타타샤와 한 당나귀' 에서
시인 백석의 언어는 담백하고 자유롭다. 감동을 강요하지 아니하고 가르치려 들지 아니하고 보편에 마음 쓰지 아니하고 형식에 애쓰지 아니한다. 그래서 24세의 백석이 남긴 유일한 시집 <<사슴>>은 '우리 시대 시인에게 가장 큰 영향을 끼친 작품'이 된다. 백석은 '시인들의 시인'이다. 오늘밤은 푹푹 눈이 내리면 좋겠다. 쓸쓸한 백석을 만나볼 수 있게.
05 천당이 가까운 줄 알았는데, 멀어, 멀어……_박수근
나는 인간의 선함과 진실함을 그려야 한다는, 대단히 평범한 견해를 가지고 있다. 따라서 내가 그리는 인간상은 단순하며, 다채롭지 않다. 나는 그들의 가정에 있는 평범한 할아버지와 할머니, 그리고 물론 어린아이들의 모습을 가장 즐겨 그린다.
- 세상을 떠나기 3개월 전 지인에게 보낸 편지에서
박수근은 병마 끝내 무릎을 꿇는다. "천당이 가까운 줄알았는데, 멀어, 멀어....."라는 마지막 말을 남기면서. 이승에서의 삶이 고단했던 탓일까, 그는 떠남을 서둘렀다. 그가 간 곳이 그의 믿음대로 천당이었으면 좋겠다. 그가 이곳 이승에 머물러, 이승은 조금은 더 천당에 가까워졌다. 그의 작품이 주는 부드러움, 따뜻함, 위안 그리고 회고로 사람들이 잠시라도 평안을 느낄수 있어서.
박수근 화백의 ‘공기놀이하는 아이들’.
06 새도 쉴 둥지 있고 짐승도 몸 눕힐 굴이 있는데_김삿갓
천리길 행장을 지팡이 하나에 의지하니
남은 돈 일곱냥은 오히려 많은 것이네
주머니 속 너를 깊이깊이 간직하려 했건만
석양 길 주막에 이르니 이를 어찌할거나
- 김삿갓 묘 가장 가까운 시비에서
김삿갓은 술과 여인과 구름을 사랑했다. 그래서 술을 벗하고, 여인을 노래하고, 구름을 따라 걸었다. 김삿갓은 위선과 권위와 형식을 미워했다. 그래서 세상을 마음껏 희롱하고 불쌍하고 힘없는 이들의 가난한 마음을 풍자와 익살로 달래주었다. 200년이 지난 지금도 사람들은 김삿갓을 찾는다. 김삿갓은 유쾌하고 통쾌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 유쾌함은 통쾌함 속에 아릿함이 배어 있기 때문이다.
07 나는 날마다 운명하였다_이상
날개야 다시 돋아라.
날자. 날자. 날자. 한 번만 날자꾸나.
한 번만 더 날아 보자꾸나
- 이상의 소설 <<날개>>에서
이상은 천상 욕망의 지식인이다. 시대의 현실이, 그리고 시대와 결코 타협할 수 없는 여린 그의 고뇌가 그를 처지게 하고 뒤틀리게 했다. 그는 자신의 처지고 뒤틀린 모습을 세밀화를 그리듯, 인물화의 표정을 그리듯 치밀하게 내면 묘사함으로써 지식인의 현실에서의 한계와 지식인의 억압되고 왜곡된 상황과의 불화 의지를 동시에 문학적으로 드러냈다.
08 지금 그 사람 이름은 잊었지만 그 눈동자 입술은 내 가슴에 있네_박인환
인생은 외롭지도 않고
그저 잡지의 표지처럼 통속하거늘
한탄할 그 무엇이 무서워서 우리는 떠나는 것일까
- 박인환의 묘 입구 비명
작가 이봉구는 박인환을 '구름처럼 왔다가 바람같이 가 버린 시인'이라 했다. 그랬다. 박인환은 구름처럼 왔다 서른 안 된 어느 날 목마를 타고 홀연히 떠났다. 쓰러진 술병 속에 바람소리만을 가득 남긴 채.
09 내가 인제 나비같이 죽겠기로_정지용
넓은 벌 동쪽 끝으로
옛 이야기 지줄대는 실개천이 휘돌아 나가고,
얼룩백이 황소가
해설피 금빛 게으른 울음을 우는 곳
- 정지용의 시 '향수'에서
정지용은 일찍이 떠났다. 그가 떠날 때 마지막 떠올렸을 그 '향수'도 오랫동안 그와 함께 잠잤다. 그리고 다시 돌아왔다. '향수'가 돌아와 퍽 다행이다. 그로 인해 다시 고향을 생생하게 꿈꿀 수 있게 되었으니.
10 가난은 내 직업_천상병
나 하늘로 돌아가리라
아름다운 이 세상 소풍 끝내는 날
가서, 아름다웠더라고 말하리라
- 천상병의 묘비명에서
시는 거울이다. 내가 보지 못한 내 얼굴의 일단을 비춰주고 내가 알아차리지 못한 내 심장의 미세한 떨림을 느끼게 해주는 것이 시다. 그래서, 시를 쓰는 이는 어린아이가 되어야 한다. 사물과 사람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고 느낀 대로 반응하는 순수하고 맑은 마음과 눈을 가진 어린아이. 천상병은 '문단의 마지막 순수시인'으로 불린다. 몸은 어른이지만 마음과 눈은 한없이 맑고 고운 어린아이였다는 이야기다. 시간이 지나도 사람들이 시인 천상병을 그리워하는 이유다.
11 모란이 피기까지는 나는 아직 나의 봄을 기둘리고 있을 테요_김영랑
무슨 대견한 였날였으랴
그래서 못 잊는 오월이랴
청산을 거닐면 하루 한 치씩
뻗어 오르는 풀숲 사이를
보람만 달리는 오월이러라
- 김영랑의 마지막 발표 시 '오월한'의 중간 연
삶의 마지막 순간 영랑의 눈앞을 스치는 것은 무엇이었을까?
차부진 마지막 뒷모습이었을까 남겨진 아내와 자식들이었을까? 아마도 강진 고향 집의 마당 그득한 모란, 돌담, 햇살 그리고 남녘의 바다가 실어다주는 부드러운 바람 아니었을까. 우리가 영랑을 생각하면 떠오르는 바로 그것들.
12 오늘밤에도 별이 바람에 스치운다_윤동주
죽는 날까지 하늘을 우러러
한점 부끄럼이 없기를.
잎세에 이는 바람에도
나는 괴로워했다.
별을 노래하는 마음으로
모든 죽어가는 것을 사랑해야지
그리고 나한테 주어진 길을
걸어가야겠다.
오늘밤에도 별이 바람에 스치운다
- 서시
윤동주 시의 자양분은 네 가지로 여겨진다. 태어나고 자랐던 만주 명동촌의 아름다운 자연환경, 태어날 때부터 소, 중, 전문, 대학에 이르기까지 시종일관된 기독교적 환경, 명동촌과 용정 그리고 연희전문학교 시절 형성된 민족의식, 같은 문학소년이었던 문익환, 송몽규 친구들과의 따뜻한 우정 네 가지다.
Part 2 진(眞) - 무엇을 위해 살 것인가?
01 서로 사랑하라_이태석
너희가 이 가장 작은 이들 가운데 한 사람에게 해준 것이 바로 나에게 해준 것이다(마태25:40)
- 이태석 신부 묘비명에서
신부 마지막 떠나는 모습을 KBS1 휴먼다큐팀의 도움으로 영상으로 접한 톤즈의 아이들은 누구보다 그들을 사랑했던 신부 이태석을 떠나보내는 마지막 노래를 우리나라 말로 부른다.
<사랑해 당신을> 이었다.
사랑해 당신을 정말로 사랑해
당신이 내 곁을 떠나간 뒤에
얼마나 눈물을 흘렸는지 모른다오
예예예예예예예예예예예예예예예
사랑해 당신을 정말로 사랑해
사제 이태석은 '사랑'이었다.
02 내 죽음을 헛되이 말라_전태일
세월이 흐를수록 더욱 생생하게 되살아나는 죽음이 있어
여기 한 덩이 돌을 일으켜 세우나니
아아, 전태일. 우리 민중의 고난의 운명 속에
피로 아로새겨진 불멸의 이름이여
- 전태일 묘비병에서
오늘날 주 5일을 일하고 주말이면 가족과 함께 휴식을 취할 수 있는 이 땅의 모든 노동자들은 그 질기고도 질긴 어둠의 질곡을 끊기 위해 그 푸르디푸른 삶을 던져 파란 하늘에 흩날리는 붉은 꽃잎 되어버린 그들을 한번쯤은 새겨볼 일이다. 전태일의 모비명에서처럼.
03 앞서서 나가니 산 자여 따르라_윤상원
우리가 비록 저들의 총탄에 죽는다고 할지라도 그것이 우리가 영원히 사는 길입니다. 이 나라의 민주주의를 위해 끝까지 뭉쳐 싸워야 합니다. 그리하여 우리 모두가 불의에 대항하여 끝까지 싸웠다는 자랑스런 기록을 남깁니다. 이 새벽을 넘기면 기필코 아침이 옵니다.
- 윤상원이 1980년 5월 26일 계엄군의 유혈진압작전을 앞두고 항전에 나서는 동료들에게 남긴 말에서
아침은 왔다. 그리고 그는 갔다. 그러나 그는 영원히 남았다. 이 나라 민주주의의 제단에, 그리고 자유와 민주주의를 염원하는 아시아인의 가슴에. <임을 위한 행진곡>과 함께 영원히.
04 심지 하나가 창을 밝힌다_장준하
진정한 민주주의 사회를 이룩하기 위하여, 자손만대에 누를 끼치는 못난 조상이 되지 않기 위하여 우리는 지성일관 용왕매진하자. - 장준하 묘비명에서
평화가 일상화되면 사람들은 평화의 고마움을 잊는다. 때로는 지겨워하기까지 한다. 자유가 일상화되면 사람들은 그 자유의 소중함을 잊는다. 자칫 자유 아닌 방종으로 기운다. 이 세상 그 어느 것 하나 그냥 얻어진 것은 없다. 자유가 있으려면 먼저 내 나라가 독립국가여야 하고, 제도가 민주적이어야 하고, 위정자가 권위적이지 않아야 하고, 인권이 철저하게 보장되어야 하고, 그리고 그 무엇보다 그 땅의 사람들이 깨어 있고 상식적이어야 한다. 그래서 지구상에 진정 자유로운 민주주의 국가는 몇 안 되고, 그 몇 안 되는 국가들의 자유 향유는 오로지 응고된 선열들의 그 뜨거웠던 피를 주춧돌 삼는다. 지금의 대한민국은 자유로운 민주주의 국가다. 그 자유와 민주주의에 이르는 험난한 여정 한가운데 민주주의자 장준하의 피 흘림이 있었다. 결코 또 다시 못난 조상이 되지 않기 위한' 그의 피 홀림이 있었다.
05 통일의 선구자 겨레의 벗_문익환
나 올해 안으로 평야으로 갈 거야
기어코 가고 말 거야, 이건
잠꼬대가 아니라고 농담이 아니라고
이건 진담이라고
- 문익환의 시 '잠꼬대 아닌 잠꼬대'에서
'늦봄'은 문익환의 호다. '늦봄'은 다의적이다.
의미가 '늦은 봄(Spring)'일 수도 있고 '늦게 깨달음(See)'일 수도 있다. 또 호를 본인 스스로 지은 만큼 의지를 드러내는 것이냐 자기 관찰의 결과냐에 따라서도 그 의미가 달리 해석될 수 있다. 즉, 같은 '봄(Spring)'이라도 그냥 '늦게 맞이하고 싶은 봄'일 수 있고 '늦바람 났다'는 표현처럼 '늦게 찾아온 봄'일 수도 있다.
06 참선 잘 하그래이_성철
한 평생 사람들을 감쪽같이 속여
하늘에 닿은 죄가 수미산을 넘어선다
산 채로 아비지옥에 떨어지니 그 한이 만 갈래나 되는데
태양은 붉은 빛을 토하며 푸른 산에 걸려 있도다
- 성철 스님이 임종 시 남긴 열반송
사람은 누구나 행복을 원한다. 성철 스님도 마찬가지로 행복을 원했다. 스님에게 행복은 두 가지였다. '영원한 행복'과 '일시적인 행복' 둘이었다. '영원한 행복'은 도를 깨친 사람이 누리는 행복이다. 그리고 '일시적인 행복'은 오감을 충족시킴으로써 얻게 되는 일반의 보통 행복이다. 열반의 순간 스님은 마지막으로 제자들에게 "참선 잘 하그래이"라는 말을 남긴다. 스님의 마지막 말은 여느 스승, 여느 부모의 그것과 다르지 않다. 바로 '행복하게 살아라'라는 것에 다름 아니기 때문이다. 스님에게 참 행복은 '영원한 행복'이고, '영원한 행복'은 도를 깨침으로써 얻을수 있는 것이었다. 그리고 그 도를 깨치는 유일한 수단은 '참선'이었다. 제자는 스님의 임종을 지켜본 몇 명에 한정되지 않는다. 성철 스님의 가르침에 귀기울이는 이라면 모두 그의 제자다. 성
철 스님은 그들 모두에게 말한다. 행복하게 살라고, 더불어 '영원한 행복'을 찾으라고.
07 고맙습니다, 서로 사랑하세요_김수환
너와의 모든 이를 위하여, 야훼는 나의 목자, 아쉬울 것 없노라
- 김수환 추기경 묘비명에서
추기경은 자신이 살아오면서 가장 입에 많이 올린 말이 '사랑'이라고 했다. 그래서 고린토 1서 13장의 '사랑의 송가'를 무척 좋아한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그는 고백했다. "어머니가 보여준 사랑처럼 '모든 것을 덮어주고, 믿고 바라고 견디어내는' 사랑을 온전히 실천하지 못했다”고," 자신의 삶을 통째로 당신의 주님과 이 시대의 이웃들에게 내주며 무소유의 삶을 살았으면서도 당신이 내어준 그 사랑이 그리 만족스럽지 않았던 모양이다. 추기경은 삶의 마지막 순간 이 시대를 함께한 모든 이들에게 감사의 말을 전하면서 아울러 못내 아쉬웠던 것을 당부한다. "고맙습니다, 서로 사랑하세요"라고.
08 우리나라 대한의 완전한 자주독립이오_김구
선생은 '네 소원이 무엇이냐?' 하고 하나님이 물으시면 '나의 소원은 우리나라 대한의 완전한 자주독립이오'라고 대답하겠다”고 말했다. 2020년, 대한민국은 이미 세계의 중심에 서 있다.
K-culture가 그렇고, K-economy가 그렇고, K-democracy가 그렇다. 세계인이 우리를 주시하고 있다. 선생의 꿈, 선생의 소원까지는 이제 그리 멀지 않다. 우리가 좀 더 옳은 민주시민이 되기를 결심하고, 온 민족이 만년대계로 민족의 행복을 바라는 간절한 마음을 갖는다면 그 꿈은 언제라도 이루어질 수 있다. 자유로운 시민이 사는 행복한 나라, 그리고 이웃 모든 나라들에 행목을 전파하는 그런 나라.
09 어린이의 마음은 천사와 같다_방정환
어린이의 생활을 즐겁게 해주십시오. 어린이는 항상 칭찬해가며 가르치십시오. 어린이의 몸을 자주 주의해 살펴주십시오. 어린이에게 책을 늘 읽히십시오. 희망을 위하여, 내일을 위하여 다 같이 어린이를 잘 키웁시다.
- 방정환 묘 입구 어록비에서
이 세상 사람 중에 어린이 아니었던 사람은 없다. 이 세상 사람 중에 부모가 없었던 사람은 없다. '어린이날'은 모두를 어린이로 만든다. 어린이는 어린이여서 그대로 어린이이고, 어른은 자신의 튼튼한 보호막이었던 부모님과의 오래 전 봄날 그 어느 하루의 어린 시절을 추억할 수 있어 어린이다. 방정환 선생은 어린이들에게만 어린이날을 선물하지 않았다. 어른들에게도 선물했다. 1년에 하루는 청년이나 장년, 노인 모든 이들이 어린이로 돌아간다. 방정환 선생은 마법사이기도 하다.
10 매화분에 물을 주어라_이황
태어나길 어리석게 태어났고 자라면서 병도 많았네
어쩌다 학문 좋아해 뒤늦게 벼슬도 탐할 수 있었네
배움은 구할수록 멀어지고 벼슬은 피할수록 더해지네
나아가면 엎어지기 일쑤고 물러서면 마음 맑아지네
나라 은혜에 부끄러울 뿐이고 성인 말씀 두려울 뿐이네
산은 찌를 듯이 높고 물은 한량없이 깊네
벼슬 떠나서야 뭇사람들의 비방 벗어날 수 있었네
내 이리 막혀 있으니 누가 나에게 마음 열수 있을까
생각건대 옛사람들 내 마음 진실로 아실 터이고
후인들 어찌 지금의 일 모를 리 있겠는가
근심 가운데 즐거움 있고 즐거움 가운데 근심 있네
이제 무로 돌아가니 다시 그 무엇을 욕심내랴
- 퇴게 묘비명시서
퇴계는 정신의 온전 여부를 가지고 사람을 차별하지 않았고, 나이나 지위, 역할을 가지고 사람을 차별하지 않았다. 부인은 반려자였고 기대승, 율곡은 소울메이트였고 제자들은 함께 공부하는 동학이었다.
11 어머니 묘 발치에 묻어달라_광해군
돌아가고 싶은 마음에 물리도록 왕손초를 보았더니, 나그네 꿈속에 한양이 자꾸 보이네. 나라는 어찌 되는지 소식 알 길 없고, 안개 자욱한 강각에 누워 있는 배 외롭구나
- 유배지 제주에서 광해군이 읊은 시
광해군은 조선왕조 15대 왕이었다. 종묘는 조선왕조의 정통성을 상징하는 조선왕조의 탯줄이다. 현재 이곳에는 조선왕조 건국자인 태조 이성계의 4대조 신위 및 추존된 왕들을 포함한 35명 조선 왕들의 신위를 모시고 있다. 1592년 임진왜란 중 종묘는 병화로 모두 소실된다. 그 소실된 종묘를 1608년 다시 복구한 이가 광해군이다. 현재 35위의 신위 중 광해군의 신위는 없다. 폐위된 '폭군'이라는 이유 때문이다. 역사의 아이러니다.
12 그 어디에도 얽매이지 않았으니_원효
각승은 처음으로 삼매경의 축을 열었고
무모는 마침내 온 거리의 풍습이 되었네
휘영청 밝은 요석궁에 봄 잠시 사라지니
문 닫힌 분황사엔 돌아보는 그림자 없네
- 일연이 원효의 생애를 기린 말
일연은 <<삼국유사>>를 저술하면서 원효 편을 별도로 편성한다. 그리고 그 편을 <원효불기>라 이름 짓는다. '원효는 그 어디에도 얽매이지 않았으니'라는 의미다. 학자, 대중 강사 그리고 자유인이라는 원효의 다양한 모습 중 '자유인'이 원효의 궁극의 모습이었다는 이야기다. 진리와 자유는 별개가 아니다.
13 내가 죽을 때에는 가진 것이 없을 것이므로_법정
법정은 사리탑이 없다. 물론 묘비명도 없고 묘도 없다. 유골은 당신이 직접 심고 평생 정성들여 키운 후박나무 아래 뿌려졌다. 당신의 '내가 죽을 때에는 가진 것이 없을 것이므로 무엇을 누구에게 전한다는 번거로운 것도 없을 것이다' 라는 말씀이 이루어졌다.
Part 3 선(善) - 어떻게 살 것인가?
01 송강, 사람을 쓰는 데 파당을 가리지 말게_이이
'임금의 인덕을 선양하여 번부를 편안케 하고, 왕위를 떨쳐 오랑캐를 섬멸하고, 민역을 완화하고, 미리 장재를 살펴 등용하였다가 위급에 대처해야 하오.'
- 이이가 병석에서 평안 함경도 순무어사 서익에게 세상 뜨기 3일 전 남긴 말
이이는 세상을 뜨기 1년 전 병조판서로서 선조에게 '긴급하게 힘써야 할 6가지 사항'이라는 '시무육조'를 올린다. 그리고 한 경연 자리에서 '10만 양병설'을 주장한다.
시무육조는 '① 어질고 능력 있는 이를 임용할 것, ② 군사를 양성할 것, ③ 재정을 충분히 갖출 것, ④ 변방 경계를 튼튼히 할 것, ⑤ 전쟁에 쓸 말을 준비할 것, ⑥ 백성들을 가르쳐 무지에서 깨어나도록 할 것' 6가지다.
02 나의 죽음을 알리지 말라_이순신
오늘 진실로 죽기를 결심했사오니 원컨대 하늘은 반드시 이 적들을 섬멸할 수 있게 해주소서.
- 노량해전을 앞둔 장군의 기원
우리나라 사람들이 역사상 가장 존경하는 인물 부동의 1위는 이순신 장군이다. 이순신 장군을 존경하는 이유는 사람에 따라 조금씩 다를 수 있지만 대체적인 공통 배경은 두 가지다. 하나는 일본 침략으로부터 나라를 구한 인물이라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우리가 이상적인 인간상으로 생각하는 전인적 인간에 매우 가까운 인물이라는 것이다.
03 청강에 고이 씻은 몸을 더럽힐까 하노라_정몽주
이 몸이 죽고 죽어 일백 번 고쳐 죽어
백골이 진토되어 넋이라도 있고 없고
임 향한 일편단심이야 가실 줄이 있으랴
- 정몽주 묘비명에서
정몽주는 고려 최후의 충신이다. 그러나 정몽주를 존중하고 역사에 빛나는 인물로 높이 세운 것은 바로 그 고려를 밟고 올라선 조선왕조다. 새로운 왕조 창업에 반대하는 정몽주를 죽이고 등장한 바로 그 조선이 정몽주를 높이 기린 것이다. 역사의 아이러니다.
04 한고조가 장량을 이용한 것이 아니라 장량이 한고조를 이용했다_정도전
푸른 소나무 길 옆에서 자라니 자귀와 도끼질을 면할 길이 없네
그러나 굳고 곧은 자질을 지녀 횃불이 타는 것을 도와주네
어떻게 하면 아무런 재앙 없이 곧은 줄기 하늘 높이 솟아올라
때가 와서 큰 집을 지을 때 우뚝이 대들보 재목으로 쓰일 건가
어느 누가 이러한 뜻을 미리 알아 가장 높은 언덕에 옮겨 심어줄는지
- 정도전의 묘비명에서
정도전은 술에 취하면 자신을 중국 한나라 창업공신인 장량에 비유하면서 "한고조가 장량을 이용한 것이 아니라 장량이 한고조를 이용했다" 고 말했다 한다. 정도전은 태조의 후계자로 둘째 비 강씨 소생의 방석을 지지했고 또 세자 방석의 교육을 담당했다. 재상이 정치의 중심이 되는 왕도정치를 꿈꾼 것이었다. 정도전은 1398년 8월 25일 조선 창업에 적지 않은 지분을 가진 이방원의 습격으로 죽는다. 오늘날의 입헌군주제와 일부 닮은 재상 중심의 왕도정치는 아직 너무 앞서간 것이었다.
05 내가 죽거든 관을 얇게 만들고 두껍게 하지 말아라 먼길 가기 힘들다_조광조
임금을 어버이처럼 사랑하였고
나라를 내 집처럼 근심하였네
밝은 해 세상 굽어보니
이 내 충정 더없이 밝게 비치리
- 조광조의 절명시
조선은 <<경국대전>> 완성 등 국가의 기틀 잡기에 100년을 들인다. 그리고 <<경국대전>>이 완성된 성종 때 비로소 조선의 국시인 성리학의 이상향, 도학정치 실현 시도에 들어간다. 바로 훈구세력을 견제하기 위한 성종의 김종직 등 신진 사림세력 등용으로부터다. 그러나 성종에 의해 의욕적으로 시도된 도학정치는 연산군의 무오사화, 갑자사화로 중단되고 만다. 그리고 중단된 도학정치 시도는 중종 때 다시 되살아난다. 이때 그 되살아난 조선 도학정치의 불쏘시개 역할을 했던 인물이 바로 조광조다.
06 나 죽고 난 다음 곡도 하지 말라_임제
칼 튕기며 행수대에 오르니 기운이 솟는다
초라한 벼슬자리 내 모습 쓸쓸하여라
찬 가을바다 교룡이 꿈틀대고
구름 깊은 장백산엔 호랑이 득실대네
- 임제 묘 입구 시빗말에서
임제는 조선 중기 사대부 세계의 이단아였다.
조선의 사대부들이 중국을 하늘처럼 떠받들고 칭송하는데 중국을 떠받들지 않았고, 조선의 사대부들이 양두구육처럼 위엄과 고고함을 밖으로 내거는데 대놓고 기생의 무덤을 찾아 그녀의 죽음을 애도했고, 조선의 사대부들이 조선 땅과 왕의 나라로 만족하는데 만주를 탐하고 황제의 나라가 되길 원했고, 조선의 사대부들이 벼슬과 녹을 찾아 분주한데 벼슬과 녹 대신 칼과 피리와 술과 방랑과 여인과 친구 그리고 시를 사랑했기 때문이다. 조선이 품지 못하고 시대가 품지 못했다. 그래서 문신이기보다도 시인, 아니 차라리 '자유로운 영혼'이었던 백호 임제는 서둘러 떠났다.
07 하늘이 진실하다고 여기지 않는다면 불질러버려도 좋다_정약용
내가 너의 선행을 기록한 것이
여러 장에 이르는구나
네가 감춘 너의 잘못 모두 옮겨 쓰면
책 한 권으로도 부족하리라
- 정약용의 <<자찬묘지명>>에서
정약용은 이수광·유형원으로부터 시작해 이익으로 이어지는 조선 후기의 실학을 집대성한 인물이자 조선 후기 개혁사상가다. 정치와 경제 등 사회 모든 분야에 걸쳐 개혁을 주장하고 그 대안을 제시한 인물이다. 유배지에서의 18년, 고향으로 돌아와 세상을 뜨기까지의 18년, 합해 36년의 시간을 연구와 저술에 몰두해 500여 권의 방대한 저술을 남겼다. 조선 후기의 대표적 지성이자 학자 그리고 경세가의 표본이다.
08 일본과 타협하려는 자나 기생하려는 자나 다 우리의 적임을 선언하노라_신채호
역사는 아와 비아의 투장이 시간적으로 전개되고 공간적으로 펼쳐지는 정신적 활동 상태에 관한 기록이다.
- 신채호의 <조선상고사>에서
우리나라에서 현존하는 가장 오래된 역사서는 1145년 김부식이 쓴 《삼국사기》다. 그리고 그 다음 오래된 것이 1281년 일연이 쓴 《삼국유사》다. 역사를 배우는 학생들은 의아하다. 반만년의 찬란한 역사라 하는데 기록의 역사가 900년도 안 된다니. 중국의 《사기》가 기원전, 《춘추》는 그보다도 몇백 년을 더 거슬러 올라가 쓰였고, 하다못해 일본의 《고사기》, 《일본서기》도 712년, 720년에 쓰였는데, 중국은 그렇다 치고 근대 이전까지 우리와 중국으로부터 문물을 가져간 일본보다도 400년 늦다니 참으로 이해하기 어렵다. 학생 때 누구나 한번쯤 품었던이 의문을 본격적으로 깊이 파고들었던 이가 단재 신채호다. 물론 신채호는 역사학자이자 동시에 독립운동가이다. 또한 언론인이다.
09 녹두꽃이 떨어지면 청포장수 울고 간다_전봉준
우리가 의를 들어 여기에 이르렀음은 그 본의가 결코 다른 데 있지 아니하고 창생을 도탄 중에서 건지고 국가를 반석 위에다 두자 함이다.
- 전봉준이 고부 관아 탈취 후 방백과 백석들에게 보낸 '격문'에서
19세기 말 창의대장 전봉준의 앞에는 적이 둘 있었다. 먼저는 제국주의의 외세이고, 다음은 민중을 억압하고 수탈하는 이 땅의 봉건지배체제였다. 전봉준의 혁명은 앞선 100년 전의 프랑스혁명에는 이르지 못했다. 당장 발등의 불인 제국주의의 외세를 막아내는 것이 급선무였기 때문이다. 그런 만큼 전봉준의 혁명은 시대적 한계를 지닐 수밖에 없다. 그러나 민중과 그 민중이 몸 붙이고 사는 이 땅을 아끼는 마음에서만은 그 어디에도 뒤지지 않았다. 민중을 나라의 근본에 두려는 전봉준의 혁명이 일찍이 있었다. 그리고 그 정신을 잇는 3.1 운동, 4·19 의거, 5·18 광주민주화운동, 6월항쟁 그리고 촛불항쟁이 있었다. 전봉준은 이땅 민주항쟁의 기수였다.
10 옳은 일이기에, 또 아니하고서는 안 될 일이기에 목숨을 걸고 싸웠지 아니하냐_조봉암
우리가 못한 일을 우리가 알지 못하는 후배들이 해나갈 것이네.
결국 어느 땐가 평화통일의 날이 올 것이고 국민이 고루 잘사는 날이 올 것이네. 나는 싸만 뿌리고 가네.
- 조봉암의 옥중 유언에서
조봉암의 꿈은 아직 완성되지 않았다. 그러나 역사의 흐름은 그가 말하고 희망한 방향으로 진행되어왔고 또 그렇게 가고 있다. '무력통일'이 아닌 '평화통일'이 현실적이고도 민족보존적인 통일 방식으로 굳혀져왔고, 승자독식의 순수자본주의나 프롤레타리아 폭력혁명의 공산주의가 아닌 수정자본주의 또는 사회민주주의 복지국가로 사회가 나아가고 있다. 보수, 진보를 떠나 시대를 앞서가고 시대를 견인한 진보주의자 조봉암을 기억해야 하는 이유다.
11 어찌 살기를 바라겠습니까?_박제상
차라리 계림의 개나 돼지가 될지언정 왜국의 신하는 되지 않겠다.
차라리 계림 왕에게 볼기를 맞는 형벌을 받을지언정 왜국의 벼슬과 녹은 받지 않겠다.
- 박제상이 죽기 전 왜왕에게 한 말에서
김구 선생은 《나의 소원》에서 '옛날 일본에 갔던 박제상이, "내 차라리 계림의 개, 돼지가 될지언정 왜왕의 신하로 부귀를 누리지 않겠다" 한 것이 그의 진정이었던 것을 나는 안다. 제상은 왜왕이 높은 벼슬과 많은 재물을 준다는 것도 물리치고 달게 죽임을 받았으니, 그것은 "차라리 내 나라의 귀신이되리라" 함에서였다"라고 말하고 있다. 박제상은 1,600년 전 신라의 김구 선생이었고 신라의 신채호 선생이었고 신라의 안중근
의사였다. 신라를 침략하려는 왜를 허용하지 않았고, 신라의 사람이기를 고집하였고, 끝내는 자신의 목숨을 던져가면서까지 왜의 신라 침략을 준엄히 꾸짖었다.
12 동양평화 문제에 관한 의견을 제출하노니_안중근
나는 한국 독립을 회복하고 동양평화를 유지하기 위하여 3년간 해외에서 풍찬노숙하다가 마침내 그 목적에 도달하지 못하고 이땅에서 죽는다. 그러니 오직 우리 2천만 형제자매는 각자 분발하여 학문을 면려하고 실업을 진흥하며 나의 유지를 계승하여 자유 독립을 회복하면, 죽은 자가 유감이 없을 것이다.
- 안중근 의사가 2천만 동포에게 남긴 유언에서
안중근이 궁극적으로 바라는 것은 평화였다. 동양평화, 나아가 인류의 평화였다.
서울 효창공원에는 안중근 의사의 무덤과 비문이 있다. 비문 마지막에는 아직 의사의 유해를 찾지 못해 빈 무덤으로 혼백을 모시고 있다고 적혀 있다. 부꾸럽고 죄송하고 슬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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