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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 하루 종일 굳은 의지로 생활할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by 욕심쟁이77 2025. 1. 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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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에 일어나자마자 “오늘은 건강식을 고집해야지”라고 결심하고, 일부러 입맛에 맞지 않는 채소 스무디를 만들어 마신다. 회사에 출근해서는 끊임없이 울리는 이메일과 동료들의 요청을 차분히 해결하느라, 사소하지만 의외로 에너지를 꽤나 소모하게 된다. 점심시간에는 햄버거 세트의 유혹이 강렬하게 다가오지만, “그래도 다이어트 중이니까”라는 생각에 샐러드를 먹는다. 오후 회의 후에는 또 한 번의 중요한 결정이 기다리고 있고, 퇴근 무렵에는 머리가 지끈지끈하며 ‘쉬고 싶다’는 욕구가 폭발한다. 그리고 저녁에 집에 돌아오면, 아침에는 분명 “오늘은 저녁도 가볍게 먹고 운동해야지!”라고 다짐했던 결심이 마치 땅속에 꺼져버린 듯, “그래, 고생했으니 오늘은 치킨을 시켜도 괜찮아”라는 달콤한 자기 합리화가 고개를 든다.

이처럼 살다 보면, 우리는 매일 크고 작은 유혹과 결정을 만나고, 그때마다 의지력이 조금씩 소모되는 듯한 기분을 느낀다. “이렇게 결심했던 게 어제 같은데, 왜 지금은 영 힘이 안 나지?” 하고 스스로에게 묻게 되기도 한다. 심리학자들은 이런 현상을 자아 고갈(Ego Depletion) 이론으로 설명한다. 한마디로, 우리의 의지력과 자기 통제력한정된 자원처럼 작동한다는 것이다. 즉, 여러 차례 자기 통제를 하다 보면 어느 순간 의지력이 바닥나기 시작해, 더 작은 유혹에도 쉽게 무너진다는 말이다.


1. 자아 고갈 이론은 어떻게 나왔을까?

이 이론이 유명해진 계기는 한 실험 연구에서 비롯됐다. 참가자들을 쿠키 냄새가 폴폴 풍기는 방에 두고, 한 그룹은 갓 구운 초콜릿 칩 쿠키를 ‘맘껏’ 먹게 했고, 다른 그룹에는 “너희는 무(radish)만 먹어야 해”라고 지시했다. 그다음에 두 그룹 모두에게 난이도 높은 퍼즐 문제를 풀도록 했다. 결과는 꽤 충격적이었다. ‘쿠키를 참아야 했던 그룹’이 더 빨리 포기해버렸다는 것.
연구진은 “맛있는 쿠키를 억지로 참아내느라 이미 정신적 에너지를 써버렸으니, 문제 풀이에 필요한 ‘의지력’이 고갈된 것”이라고 해석했다(Baumeister & Tierney, 2011). 즉, 의지력은 한정된 배터리 같은 것이라, 한 번 크게 소모하고 나면 그걸 충전할 시간이나 계기가 없이 바로 또 다른 과제를 만나면 쉽게 무너진다는 것이다.


2. 의지력은 정말 배터리처럼 소모되는 걸까?

물론 모든 학자가 이 이론에 전적으로 동의하는 건 아니다. 예컨대 “사람들이 의지력을 ‘한정된 자원’이라고 믿는 탓에, 조금만 소모됐다고 느껴도 스스로를 ‘이제 힘들다’고 합리화하는 것”이라는 반론도 있다(Inzlicht & Schmeichel, 2012). 하지만 일상에서 체감되는 경험치만 봐도, 중요한 선택이나 자기 통제 상황이 여러 번 반복되면 집중력이 점차 떨어지고, 사소한 유혹에도 쉽게 넘어가는 것처럼 느끼는 사람들이 많다.
결국 “의지력이 진짜로 제한된 자원인 것인가, 아니면 제한적이라고 믿기 때문에 제한되는 것인가”라는 문제에 대해서는 연구마다 관점이 다르다. 하지만 그 어떠한 경우라도, 우리 뇌가 자기 통제 행위를 ‘힘든 작업’으로 인식하고, 이를 계속 반복할수록 피로해진다는 개념 자체는 꽤나 설득력이 있다.


3. 어디에서, 언제 자아 고갈이 발생할까?

자아 고갈은 일상 속 수많은 장면에서 나타난다. 예를 들어,

  1. 식습관 관리
    다이어트를 하거나 건강식을 유지하려고 결심했을 때, 아침에는 “오늘은 단 한 개의 과자도 먹지 않겠어”라고 확신하지만, 저녁에 피곤이 몰려오면 어느새 손이 과자 봉지를 향해 있다. 이미 하루 종일 “안 돼!”라고 외치며 충돌을 반복한 끝에, 더 이상 버틸 힘이 남아있지 않게 된 것이다.
  2. 업무나 학업에서의 결정 피로
    사소한 이메일 회신부터 시작해, 고객 응대, 팀 프로젝트 의사결정, 추가 자료 조사 등 하루 동안 수많은 ‘결정’을 내려야 하는 직업이라면, 오후 늦게는 확실히 정신적인 피로가 크게 다가온다. 그래서 막판에는 “에라 모르겠다, 아무거나 하자”라고 느낄 만큼 의욕이 소진되기도 한다.
  3. 사회적 갈등 상황
    갈등 상황에서 예의바른 태도를 유지하고, 감정을 통제하며, 무례한 말을 하고 싶어지는 걸 참아내는 것도 상당한 에너지를 요구한다. 그래서 직장에서 상사나 동료와의 갈등을 하루 종일 참아내고 나면, 퇴근 후 가족에게는 작은 일에도 짜증을 부리거나 신경질적인 반응을 보이는 경우가 생긴다.

4. 자아 고갈을 줄이거나 극복하는 방법

자아 고갈이 실제로 우리의 의지력 발휘에 영향을 준다면, 어떻게 하면 그 부정적 효과를 완화할 수 있을까? 의지력 배터리를 조금 더 효율적으로 쓰고, 고갈됐을 때 ‘재충전’하는 전략이 필요하다.

a) 중요한 결정을 상쾌한 시간대에

마치 휴대폰 배터리가 100%일 때 고성능 앱을 구동하는 게 낫듯, 자신의 두뇌 컨디션이 최상일 때 어려운 결정을 내리는 게 좋다. 예컨대 아침형 인간이라면, 아침에 중요한 업무를 시작하고 중대한 의사결정을 미루지 않는다. 반대로 저녁이 더 편한 사람이라면, ‘나만의 황금 시간대’를 찾아 그 시간에 주된 과제를 몰아넣을 수 있다.

b) 의사결정의 개수 줄이기

결정 피로(Decision Fatigue)는 자아 고갈의 대표 원인이다. 하루에도 수십 개의 사소한 결정을 내리다 보면, 정작 중요한 결정에서 이미 에너지가 고갈된다. 그래서 “오늘은 옷을 뭘 입지?” 같은 걸 미리 전날 정해두거나, 일정한 패턴으로 간소화하는 게 좋다. 많은 성공한 사람들이 매일 같은 티셔츠나 비슷한 옷을 입는다는 이야기도 이런 맥락에서 이해할 수 있다.

c) 충분한 수면과 휴식

의지력은 말 그대로 정신적 자원이라, 신체 컨디션과 직결된다. 제대로 쉬지 못하면, 뇌의 전반적인 기능이 저하되어 의지력도 함께 바닥을 보이게 된다. 수면 부족 상태에서는 작은 도전과 갈등에도 극도로 예민해진다. 그러니 수면 시간을 충분히 확보하고, 중간중간 짧은 휴식을 통해 뇌를 ‘리프레시’해주는 것이 중요하다.

d) 작은 보상으로 동기 유지

‘작은 보상’을 적절히 섞으면, 자아 고갈을 어느 정도 완화할 수 있다. 예컨대, 다이어트 중이라도 “이번 주 5일간은 식단을 철저히 지키고, 주말에는 내가 좋아하는 음식을 조금 맛보기” 같은 식의 룰을 설정해보자. 완전히 즐거움을 박탈해버리면 자아 고갈이 빨리 오지만, 어느 정도 보상을 허용하면 “조금만 더 참고 버티면 보상이 온다”는 생각에 지속 가능해진다.

e) 사회적 지원, 함께하는 동료

자기 통제를 혼자만의 힘으로 이겨내기란 쉽지 않다. 누군가와 함께 목표를 공유하면, 내 의지력이 약해질 때 상대가 도와줄 수도 있고, 서로 격려하고 재충전하는 효과가 있다. 다이어트를 예로 들면, 친구와 식단을 공유하거나 함께 운동 계획을 짜서 실천하면, 혼자 “힘들어!”라고 투덜댈 때 옆에서 붙잡아주거나 동기 부여해줄 수 있다.


5. 자아 고갈 이론을 통해 본 ‘인간다운’ 면모

자아 고갈 이론은 한편으로는 “결국 우린 완벽한 로봇이 아니라 사람이라는 것”을 상기시킨다. 무한대의 의지력을 기대하는 대신, 우리가 쉽게 흔들릴 수도 있고 지칠 수도 있음을 먼저 인정하자는 것이다. 실제로 많은 사람들이 스스로를 탓할 때가 있다. “왜 난 이렇게 의지가 약하지?”라고 말이다. 하지만 ‘나’만 그런 게 아니라 대부분의 사람이 크고 작은 자기 통제 노력 끝에 지칠 수 있다는 걸 알면, 좀 더 유연하게 접근할 수 있다.

  • “시간관리를 못 해서 그렇다”가 아니라, 정말 바쁜 일정 속에서 잔뜩 결정을 하고 갈등을 참고 견디느라 지쳤을 수 있다.
  • “내가 다이어트를 포기한 건 의지가 약해서”가 아니라, 하루 종일 맛있는 음식 유혹을 참다 보니 이미 의지력이 고갈되었을 수도 있다.

그리고 그 사실을 인식하면, “다음에는 어떤 식으로 휴식과 작은 보상을 설계하면 좋을까?” “어떻게 의사결정 횟수를 줄일까?” 같은 실용적 대안을 생각할 여유가 생긴다.


스마트폰처럼 ‘충전과 사용’을 반복하는 삶

자아 고갈 이론은 결국, 우리에게 의지력 역시 배터리처럼 작동할 수 있으니, 무제한으로 쓰다간 방전될 수도 있다는 메시지를 던진다. 물론 이 이론에 대한 비판과 변형된 해석도 있지만, 수많은 일상 경험들을 설명해주는 데는 꽤 유용하다. 매 순간 인내와 통제만을 강조하기보다는, 휴식과 보상을 통해 다시금 의지력을 살릴 방법을 강구해보자.

예를 들어, 일주일에 하루나 몇 시간 정도는 완전히 ‘아무것도 안 해도 되는 자유시간’을 줘보는 건 어떨까? 의지력을 다잡아야 하는 상황과 순간들을 보다 신중하게 배치하는 것도 좋다. 극단적으로 억제만 하다 보면, 결국 크게 폭발할 위험이 있다.

“쓸 때는 쓰되, 쉴 때는 쉬어야 한다.” 이 단순한 진리가 자아 고갈 이론이 우리에게 주는 가장 큰 교훈일지도 모른다. 자신이 어디에서 에너지를 쓰고, 어디에서 충전하는지를 깨닫고 균형을 맞춘다면, 오히려 ‘의지력’이라는 자원을 좀 더 효과적으로 운용하면서 목표를 향해 나아갈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난 왜 이렇게 의지가 약할까?”라는 자책 대신, “어떻게 하면 오늘 쓴 의지력을 잘 보충할까?”라는 더 생산적인 질문을 던지게 될 때, 우리는 한결 인간적인 방식으로 성장해갈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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