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기주
말을 아껴 글을 쓴다. 쓸모를 다해 버려졌거나 사라져 가는 것에 대해 주로 쓴다. 활자 중독자를 자처하며 서점을 배회하기를 좋아한다. 퇴근길에 종종 꽃을 사서 어머니 화장대에 담담히 올려놓는다. 뤽 베송 감독의 영화 ‘그랑블루’를 좋아한다. 지은 책으로는 『언어의 온도』 『말의 품격』『글의 품격』 『한때 소중했던 것들』『사랑은 내 시간을 기꺼이 건네주는 것이다』등이 있다.
『언어의 온도』
말과 글은
머리에만 남겨지는 게 아닙니다.
가슴에도 새겨집니다.
마음 깊숙이 꽃힌 언어는
지지 않는 꽃입니다.
우린 그 꽃을 바라보며
위안을 얻기도 합니다.
당신의 언어 온도는 몇 도쯤 될까요
언어에는 나름의 온도가 있습니다. 따뜻함과 차가움의 정도가 저마다 다릅니다.
온기 있는 언어는 슬픔을 감싸 안아줍니다. 세상살이에 지칠 때 어떤 이는 친구와 이야기를 주고받으며 고민을 털어내고, 어떤 이는 책을 읽으며 작가가 건네는 문장에서 위안을 얻습니다.
1부말(言), 마음에 새기는 것
더 아픈 사람
상처를 겪어본 사람은 안다.
그 상처의 깊이와 넓이와 끔찍함을.
그래서 다른 사람의 몸과 마음에서 자신이 겪은 것과 비슷한 상처가 보이면 남보다 재빨리 알아챈다. 상처가 남긴 흉터를 알아보는 눈이 생긴다.
그리고 아파 봤기 때문에 다른 사람을 아프지 않게 할 수도 있다.
어린 손자에게 할머니가 알려주려고 한 것도 이런 이치가 아니었을까?
말도 의술이 될 수 있을까
그래서 은퇴 전 직함을 불러드리죠. 그러면 병마와 싸우려는 의지를 더 굳게 다지시는 것 같아요. 건강하게 일하던 시절로 돌아가고 싶은 바람이 가슴 한쪽에 자리 잡고 있기 때문인지도 모르겠어요. 병원에서는 사람의 말 한마디가 의술이 될 수도 있어요.
사랑은 변명하지 않는다
사랑의 본질이 그렇다. 사랑은 함부로 변명하지 않는다.
사랑은 순간의 상황을 모면하기 위해 이리저리 돌려 말하거나 방패막이가 될 만한 부차적인 이유를 내세우지 않는다. 사랑은 핑계를 댈 시간에 둘 사이를 가로막는 문턱을 넘어가며 서로에게 향한다.
틈 그리고 튼튼함
틈은 중요하다. 어쩌면 채우고 메우는 일보다 더 중요한지 모르겠다. 다만 틈을 만드는 일이 어렵게 느껴지는 건, 그때나 지금이나 매한가지다.
말의 무덤, 언총(言塚)
다언이 실언으로 가는 지름길이 될 수 있다는 사실을 망각하지 않으려 한다.
그리고 종종 가슴에 손을 얹고 스스로 물어본다. 말 무덤에 묻어야 할 말을, 소중한 사람의 가슴에 묻으며 사는 건 아닌지....
그냥 한 번 걸어봤다
"그냥"이란 말은 대개 별다른 이유가 없다는 걸 의미하지만, 굳이 이유를 대지 않아도 될 만큼 충분히 소중하다는 것을 의미하기도 한다.
후자의 의미로 "그냥"이라고 입을 여는 순간
'그냥'은 정말이지 '그냥'이 아니다.
여전히 당신을 염려하오
사랑의 종류는 참으로 다양하다. 사랑을 함부로 정의할 수도 없는 노릇이다. 솔직히 말해 사랑이 뭔지 여전히 잘 모르겠다. 다만 내가 보았던 노부부의 모습을 사랑이 아니라고 한다면 도대체 어떤 것을 사랑이라고 말할 수 있겠는가?
당신은 5월을 닮았군요
일 년 열두 달 중에서 난 계절의 여왕으로 불리는 5월을 가장 좋아한다. 5월의 속성을 한 단어로 요약하면 '자라다'가 아닐까 싶다.
목적지 없이 떠나는 여행
처음에 '너'를 알고 싶어 시작되지만 결국 '나'를 알게 되는 것, 어저면 그게 사랑인지도 모른다.
부재(不在)의 존재(存在)
음식을 맛보며 과거를 떠올린다는 건, 그 음식 자체가 그리운 게 아니라 함께 먹었던 사람과 분위기를 그리워하는 건지도 모른다.
그리운 맛은, 그리운 기억을 호출한다.
길가의 꽃
이 꽃은, 여기 이 화단에 피어 있어서 예쁜 건지도 몰라. 주변 풍경이 없다면 꽃의 아름다움이 반감될 걸세. 그러니 꺾지 말게. 책상 위에 올려놓는 꽃은 지금 보는 꽃과 다를 거야.
진짜 사과는 아프다
언젠가 정중히 사과를 건네는 사람의 표정을 들여다본 적 있다.
그는 어딘지 힘겨워 보였다. 숨을 내쉴 때마다 입술이 파르르 떨렸다. 왜일까. 엉뚱한 얘기지만 영어 단어 'sorry'의 어원과 관련이 있을지도 모르겠다.
미안함을 의미하는 'sorry'는 '아픈' '상처'라는 뜻을 지닌 'sore'에서 유래했다. 그래서일까. 진심 어린 사과에는 '널 아프게 해서 나도 아파'라는 뉘앙스가 스며 있는 듯하다.
진짜 사과는,
아픈 것이다.
가짜와 진짜를 구별하는 법
위폐는 진짜처럼 보이기 위해 꾸민 흔적이 역력해요. 어진지 부자연스럽죠. 가짜는 필요 이상으로 화려합니다. 진짜는 안 그래요. 진짜 지폐는 자연스러워요. 억지로 꾸밀 필요가 없으니까요.
우주만 한 사연
대지에 발을 붙이고 사는 사람치고 사연 없는 이가 없다.
아무리 보잘것없는 몸뚱어리의 소유자라 할지라도 우주만 한 크기의 사연 하나쯤은 가슴속 깊이 소중하게 간직한 채 살아가기 마련이다.
다만, 그러한 사정과 까닭을 너그럽게 들어줄 사람이 많지 않은게 현실인 듯하다. 우리 마음속에 그럴 만한 여유가 없기 때문일까, 아니면 우리 가슴에 그 무엇으로도 메울 수 없는 커다란 구멍이 나있기 때문일까. 가끔은 아쉽기만 하다.
가장자리로 밀려나는 사람들
자식이 세상 풍파를 겪을수록 빗줄기는 굵어지고 축축한 옷은 납처럼 무거워진다. 그러는 사이 부모는 우산 밖으로 밀려난다. 조금씩 조금씩, 어쩔 수 없이.
헤아림 위에 피는 위로라는 꽃
상대에 대한 '앎'이 빠져 있는 위로는 되레 더 큰 상처를 주기도 한다. 상대의 감정을 찬찬히 느낀 다음, 슬픔을 달래 줄 따뜻한 말을 조금 느린 박자로 꺼내도 늦지 않을 거라고 본다.
내가 아닌 우리를 위한 결혼
다만 전에는 '나를 위한 결혼을 하려 했던 것 같아. 이 여자를 만나게 되면서 비로소 '우리'를 위한 결혼을 생각하게 됐지. 내가 아닌 우리를 위한...
마모의 흔적
본질은 다른 것과 잘 섞이지 않는다. 쉽게 사라지지 않는다. 언젠가 의도하지 않은 순간에 엉뚱한 방식으로 드러나곤 한다.
여행을 직업으로 삼은 녀석
다들 꿈을 잃어버렸다고 자조하기 분주한 세상이지만, 그 친구만큼은 본인이 내뱉은 말을 실행에 옮기며 살아가고 있는 듯했다. 녀석은 말했다.
"기주야, 나는 아주 오래전부터 이곳에 오는 꿈을 꾸었던 것 같아..."
노력을 강요하는 폭력
"전 서른넷에 죽더라도 사람들이 두고두고 이야기하는 사람이 될 겁니다!"
영화라서 가능한 멘트였으리라. 뭐, 그렇다 해도 이 얼마나 순수하고 절박한 대사인가. 영화는 우리가 현실에서 감히 토해내지 못하는 말을 대신해주는 것 같다.
그뿐이랴. 게다가 어떤 영화는, 어두운 방에서 문을 열면 빛이 들이닥치는 것처럼, 순식간에 어린 시절 기억을 되살려내 마구 솟구치게 한다.
영화를 관람하고 극장을 나서는 순간, 마음 한구석에 은밀하게 숨겨놓았던 스위치 같은 게 '딸각' 하고 들어오는 이유도 여기에 있지 않나 싶다.
솔로 감기 취약론(脆弱論)
연애는 단순히 감정을 나누는 행위가 아니야. 심리적 안정과 스트레스 해소는 물론 체내 면역력 강화에도 도움을 주지. 나를 봐. 연애를 못 해서 감기와 함께 살다시피 하잖아. 솔로가 감기에 취약한게 분명해.
분주함의 갈래
가만히 생각해보면 분주함에도 갈래가 있는 듯하다. 일을 하는 과정에서 방법을 찾기 위해 분주한 경우가 있고 핑계를 찾다 보니 분주한 때도 있다. 오늘 하루, 난 어떤 색깔의 분주함 때문에 "바쁘다"는 말을 쏟아냈을까.
희극과 비극
찰리 채플린이 그랬던가. 세상사는 멀리서 보면 희극이지만 가까이서 보면 비극이라고. 그 말이 새삼 무겁게 다가온다.
자신에게 어울리는 길
솔직히 말해, '솔직하기' 참 어렵지만 그래도 시도는 해 봐야 한다. '남'을 속이면 기껏해야 벌을 받지만 '나'를 속이면 더 어둡고 무거운 형벌을 당하기 때문이다.
후회라는 형벌을...
원래 그런 것과 그렇지 않은 것
돌이켜보면, 내 내면에서 스멀스멀 피어올랐던 질문처럼 절박하고 명확한 것도 없었던 것 같다. 그리고 그걸 따라가는 과정에서 널찍한 신작로는 아니지만 나만의 샛길을 발견하곤 했다.
호기심이 싹틀 때 "원래 그렇다"는 말로 억누르지 않았으면 한다.
삶의 진보는, 대개 사소한 질문에서 비롯된다.
한 해의 마지막 날
이 정도면 애썼다고, 잘 버텼다고, 힘들 때도 있었지만 무너지지 않아 다행이라고. 그러면서 슬쩍 한 해를 음미하고 다가오는 새해를 내다보는 것도 그리 나쁘지 않으리라.
더 주지 못해 미안해
부모는 참 그렇다. 아침저녁으로 밥을 차려주고, 자신의 꿈을 덜어 자식의 꿈을 불려주고, 밖에서 자신을 희생해가며 돈을 벌어다 주고, 그렇게 늘 줬는데도 자식이 커서 뭔가 해드리려 하면 매번 "미안하다"고 말한다.
단지 받는 게 미안해서가 아닐 것이다. 더 주고 싶지만 주지 못하니까, 그래서 부모는, 자식을 향해 "미안하다"고 입을 여는 게 아닐까.
부모와 자식을 연결하는 끈
일순, 임신부의 자궁 안에서 편안히 휴식을 취하는 태아의 모습이 내 머릿속에 그려졌다. 태아는 탯줄을 통해 영양을 공급받는다. 자궁 밖으로, 세상으로 나오는 과정에선 그 줄을 끊어내야 한다.
하지만 내가 목격한 어머니와 아들은 서로의 몸뚱어리를 여전히 탯줄로 연결하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 아직은 서로에게서 떨어질 수 없다는 듯.
애지욕기생(愛之欲其生)
애기욕기생이란 말이 퍼뜩 떠올랐다. '사랑은, 사람을 살아가게끔 한다' 정도로 풀이할 수 있다.
나는 이런 생각에 휩싸였다. 어쩌면 그녀야말로 '애기욕기생'을 몸소 실천하고 있는 게 아닐까. 닥친 현실은 녹록하지 않지만 남편을 향한 애틋한 사랑을 동력으로 삼아 주어진 삶을 버티고, 아니 이겨내고 있는 게 아닐까.
2부글(文), 지지 않는 꽃
긁다, 글, 그리움
채 아물지 않은 그리움은 가슴을 해집고 돌아다니기 마련이다.
그러나 그리움의 활동 반경이 유독 커지는 날이면, 우린 한 줌 눈물을 닦아내며 일기장 같은 은밀한 공간에 문장을 적거나, 책 귀퉁이에 낙서를 끼적거린다. 그렇게라도 그리움을 쏟아내야 하기에. 그래야 견딜 수 있기에...
누군가에겐 전부인 사람
화장실을 깨끗하게 사용해주세요.
이곳을 청소해주시는 분들,
누군가에겐 전부인 사람들입니다.
사랑이란 말은 어디에서 왔을까
나는 어렵게 이야기하기보다 '사람' '사랑' 삶', 이 세 단어의 유사성을 토대로 말하고 싶다.
사람이 사랑을 이루면서 살아가는 것,
그게 바로, 삶이 아닐까?
어머니를 심는 중
이제, 다시는 그 무엇으로도 피어나지 마세요. 지금, 어머니를 심는 중...
사람을 살찌우는 일
어머니를 부축해서 병원을 나서는 순간, 링거액이 부모라는 존재를 쏙 빼닮았다고 생각했다.
뚝.
뚝.
한 방울 한 방울
자신의 몸을 소진해가며
사람을 살찌우고,
다시 일으켜 세우니 말이다.
눈물은 눈에만 있는 게 아니다
눈물은 눈에만 있는 게 아닌 듯하다.
눈물은 기억에도 있고, 또 마음에도 있다.
대체할 수 없는 존재
유다이: "아이들과 함께하는 시간이 중요해요."
료타: "그건 그렇지만 회사에서 제가 아니면 안 되는 일이 많습니다."
유다이: "아버지라는 일도 다른 사람은 못 하는 거죠."
대체할 수 없는 문장
지금도 나쁘지 않지만 앞으로 더 좋아질 것 같은 예감이 드는 순간 우린 살아가는 동력을 얻는다. 어쩌면 계절도, 감정도, 인연이란 것도 죄다 그러할 것이다.
라이팅은 리라이팅
라이팅? 글쓰기? 글은 고칠수록 빛이 나는 법이지. 라이팅은 한 마디로 리라이팅 Writing is rewriting 이라고 볼 수 있지."
내 안에 너 있다
'당신을 향한, 당신을 위한 모든 것이 내 안에 있습니다!'
너를 향한 모든 것이 내 안에 있다? 낭만적이다. 그리고 어디선가 들어본 것 같다. 아, 기억난다. 수많은 여인의 마음을 설레게 만들었던 드라마 '파리의 연인'에서 이동건이 읊조린 대사, "내 안에 너 있다"와 문장 구조가 유사하다.
행복한 사전
누구에게나 바다가 있다.
어떤 유형이 됐든, 깊고 푸른 바다가 눈앞에 펼쳐져 있을 것이다.
어떤 자세로 노를 젓고 있는지, 어떤 방식으로 건너고 있는지 살면서 한 번쯤은 톺아볼 필요가 있다고 본다. 한 번쯤은.
모두 숲으로 돌아갔다
한글은 아름답다.
그리고 섬세하다.
단, 섬세한 것은 대개 예민하다.
딸에게 보내는 굿나잇 키스
딱 한 번이라도 좋다. 낡은 비디오테이프를 되감듯이 그때의 옛날로 돌아가자. 나는 글 쓰던 펜을 내려놓고, 읽다 만 책장을 덮고, 두 팔을 활짝 편다. 너는 달려와 내 가슴에 안긴다. 내 키만큼 천장에 다다를 만큼 널 높이 들어 올리고 졸음이 온 너의 눈, 상기된 너의 뺨 위에 굿나잇 키스를 하는 거다.
둘만의 보물찾기
난 식권을 건네받으면서 J의 표정을 유심히 살폈다. 들떠 있었다.
그의 표정에선 여정에 대한 기대감과 설렘, 책임감을 읽을 수 있었다. 녀석은 신대륙을 찾아 떠나기 전 갑판에서 보급품을 확인한 뒤 망원경으로 먼바다를 내다보는 선장처럼 늠름해 보였다.
세월이 흘렀지만 J는 그때 그 표정을 간직하고 있다. 그리고 다행스럽게도, 녀석은 둘만의 보물섬을 향해 여전히 순항하고 있다.
프로와 아마추어의 차이
프로가 되는 것보다, 프로처럼 달려들지 아마추어처럼 즐길지를 구분하는 게 먼저가 아닐까 싶다. 프로가 되는 노력은 그다음 단계에서 해도 된다.
이건 꽤 중요한 이야기다. 프로처럼 처리해야 하는 일은 아마추어처럼 하면 욕을 먹기 쉽고, 아마추어처럼 즐거야 하는 일에 프로처럼 목숨을 걸다가는 정말 목숨을 잃을 정도로 심각한 상황에 내몰릴 수도 있으니 말이다.
시간의 공백 메우기
기다림은 무엇인가.
어쩌면 기다림은,
희망의 다른 이름이 아닐까?
무지개다리
천국으로 들어가는 입구에는 무지개다리로 불리는 아치형 다리가 있다. 삶을 마감한 개는 푸른 초원이 펼쳐진 그곳에서 모든 걱정을 내려놓는다. 늙은 개는 젊어지고 아픈 개는 건강을 되찾는다.
하지만 천국에 입주한 녀석들도 딱 한 가지 마음에 걸리는 게 있다. 소중한 사람을 이승에 남겨둔 채 이곳에 먼저 와버렸다는 것.
자세히 보면 다른 게 보여
진짜 소중한 건 눈에 잘 보이지 않는 법이다.
가끔은 되살펴야 하는지 모른다. 소란스러운 것에만 집착하느라, 모든 걸 삐딱하게 바라보느라 정작 가치 있는 풍격을 바라보지 못한채 사는 건 아닌지. 가슴을 쿵 내려앉게 만드는 그 무엇을 발견하지 못하는 게 아니라 스스로 눈을 가린 채 살아가는 것은 아닌지.
지옥은 희망이 없는 곳
독사가 우글거리고 불길 치솟는 곳만 지옥일 리 없다. 희망이 없는 곳, 아무런 희망이 없는 막막한 상황이 영원히 지속하는 곳, 그곳이 진짜 지옥이다.
슬픔에게 무릎을 꿇다
차라리 슬퍼할 수 있을 때 마음에 흡족하도록 고뇌하고 울고 떠들고 노여워하자. 슬픔이라는 흐릿한 거울은 기쁨이라는 투명한 유리보다 '나'를 솔직하게 비춰준다. 때론 그걸 응시해봄 직하다.
오직 그 사람만 보이는 순간
상대를 제외한 모든 것이 뿌옇게 보이는 순간은 그야말로 예고 없이 다가온다.
어쩌면 예측이 가능한 감정은 사람이 아닌지도 모른다.
사내가 바다로 뛰어드는 이유
우리를 망가뜨리지 않는 사랑은 우리를 강하게 만든다. 사랑의 가치를 부정할 수 없는 이유도 여기에 있지 않을까?
빵을 먹는 관계
회사를 뜻하는 단어 컴퍼니 company는 com함께, pany 라틴어로 빵을 의미, 가 결합한 꼴이다.
어려운 시기일수록 작은 빵을 나눠 먹는 돈독한 관계, 로 풀이해야 제대로 된 해석이다. 음식을 권하면서 끼니를 해결하고 일상의 고단함과 온기를 공유하는 사이 말이다. 어떤 면에선 식구 같은 단어와도 맥을 같이한다.
길을 잃어버린 사람들
세월이 흐른 뒤 어렴풋하게 깨달았어요. 아니 겨우 짐작합니다. 길을 잃어봐야 자산만의 지도를 그릴 수 있다는 것을. 그리고 진짜 길을 잃은 것과 잠시 길을 잊은 것은 다를 수도 있다는 것을...
활자 중독
여전히 난 활자의 힘을 믿는다.
활자의 집합체인 책을 끌어안은 채 단어와 문장을 더듬거리며 살아가는, 사람이란 존재에 대한 믿음이 여전하기 때문이다.
경비 아저씨가 수첩을 쓰는 이유
하루를 내 인생에서 가장 젊은 날로 받아들이기로 했지. 그리고 다른 건 다 잊어도 아내 생일과 결혼기념일 같은 소중한 것은 잊지 않으려 하네...
침식과 퇴적
'앎'은 '퇴적' 과 '침식'을 동시에 당한다.
살아가면서 자연스레 알게 되는 지식이 있지만 시간의 흐름에 따라 깍이고 떨어져 나가는 지식도 많다. 공부는 끝이 없다는 뻔한 말이 새삼 무겁게 다가오는 경우도 많다. 여전히 모르는 게 많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는 순간이 특히 그렇다.
글 앞에서 쩔쩔맬 때면 나는
때로는 적당한 거리를 유지한 채 몸과 마음을 조금 느리게 움직여야 하는지 모른다. 한 발 뒤로 물러나 조금은 다른 시선과 속도로, 소중한 것일수록...
시작만큼 중요한 마무리
시작을 알리는 것도 중요하지만 끝을 알리는 것도 중요하다. 아니 때론 훨씬 더 중요하다. 당사자에게 알려지는 것과 당사자에게 알리는 건, 큰 차이가 있다.
시작만큼 중요한 게 마무리다. 그게 무엇이든 간에.
3부행(行), 살아 있다는 증거
모자가 산책을 나선 까닭
우리는 생명으로 잉태되는 순간부터 어머니를 만난다. 혹자는 그걸 당연한 일로 여기기도 한다. 그러나 자식에 대한 어머니의 사랑만큼 맹목적인 것도 없다. 어머니는 자식을 대할 때 이해타산을 따지거나 손익 계산에 골몰하지 않는다.
바람도 둥지의 재료
일부 조류는 비바람이 부는 날을 일부러 골라 둥지를 짓는다고 했다. 바보 같아서가 아니다. 악천후에도 견딜 수 있는 튼실한 집을 짓기 위해서다.
이세돌이 증명하다
이 구단은 오늘 아주 중요한 삶의 이치를 증명했습니다. 지는 법을 알아야, 이기는 법도 알 수 있다는 사실을 말입니다. 대국 현장에서, 이기주 기자였습니다.
당신의 추억을 찾아드린 날
가만히 생각해 보면 그때 난 50대 중년 여성이 아니라 친구를 만나 수줍어하는 10대 소녀 두 명을 보았던 것 같다.
사랑은 종종 뒤에서 걷는다
한 발 한 발 보조를 맞춰가며 뒤에서 따가가는 사랑이야 말로 애틋하기 그지없다고. 아름답다고.
그래, 어떤 사랑은 한 발짝 뒤에서 상대를 염려한다.
사랑은 종종 뒤에서 걷는다.
분노를 대하는 방법
빌려온 것은 어차피 내 것이 아니므로 빨리 보내줘야 한다.
격한 감정이 날 망가트리지 않도록 마음속에 작은 문 하나쯤 열어 놓고 살아야겠다. 분노가 스스로 들락날락하도록, 내게서 뒤이 달아날 수 있도록.
동그라미가 되고 싶었던 세모
천천히 구를 때 잘 보이던
언덕 주변 풍경을 제대로 감상할 수 없었고,
구르는 일을 쉽게 멈출 수도 없었습니다.
지지향(紙之鄕), 종이의 고향
여백이 있는 공간을 만들면 신기하게도 그 빈 공간을 다른 무언가가 채우기 마련이다. 반대로 무언가를 가득 채우려 하다가 아무것도 채우지 못하는 경우를, 나는 정말이지 수도 없이 목격했다.
감정은 움직이는 거야
연애 리얼리티 쇼는 이러한 사랑의 기승전을 생략하고 오로지 사랑의 결에만 조명을 비추는 방식으로 사랑을 바라본다.
그건 시간과 정성을 들여 요리해야 제맛이 나는 사랑이라는 슬로푸드의 재료를, 당장 맛은 좋을지 몰라도 몸에 이로울 이 없는 패스트푸드로 대충 조리해서 먹는 것과 같다. 심히 애통한 일이다.
제주도가 알려준 것들
공백을 갖는다는 건 스스로 멈출 수 있다는 걸 의미한다. 제 힘으로 멈출 수 있는 사람이라면 홀로 나아가는 것도 가능하리라.
그러니 가끔은 멈춰야 한다.
억지로 끌려가는 삶이 힘겨울수록, 누군가에게 얹혀가는 삶이 버거울수록 우린 더욱 그래야 하는지 모른다.
여행의 목적
행여 여행길에서 하염없이 방황하고 있다 해도 낙담할 이유는 없다. 방황이 끝날 무렵 새로운 목적지를 향하고 있는 자신을 발견한다면, 훗날 그 방황은 꽤 소중한 여행으로 기억될 테니까.
어두운 밤을 받아들이지 마오
순순히 어두운 밤을 받아들이지 마오
노인들이여 저무는 하루에 소리치고 저항하시오
분노하고 분노하시오 죽어가는 빛에 대해
- '순순히 어두운 밤을 받아들이지 마오' 중에서
선을 긋는 일
인류의 불행 중 상당수는 사람과 사람 사이에 긋는 행위에서 비롯되지 않던가.
그녀는 왜 찍었을까
우린 어떤 일에 실패했다는 사실보다, 무언가 시도하지 않았거나 스스로 솔직하지 못했다는 사실을 깨달을 때 더 깊은 무력감에 빠지곤 한다.
여러 유형의 기억들
상처란 것이 이별의 아픔을 정면으로 맞으며 몸부림친 흔적인데 어찌 쉽게 지울 수 있겠는가.
그런 기억은 옷에 묻은 얼룩을 세척제로 지워내듯 말끔히 씻어낼수는 없다. 아니, 지우려 하면 할수록 더욱 선명해질 뿐이다.
어른이 된다는 것
사실 어른이 되는 것 자체는 그리 중요한 일이 아니다. 어른으로 자라야 한다는 발상은, '어른인 사람이 어른이 아닌 사람보다 무조건 우월한 존재'라는 조금은 헐거운 논리를 바탕에 깔고 있다.
나이를 결정하는 요소
느끼는 일과 깨닫는 일을 모두 내려놓은 채 최대한 느리게 생을 마감하는 것을 유일한 인생의 목적으로 삼는 순간, 삶의 밝음이 사라지고 암흑 같은 절망의 그림자가 우리를 괴롭힌다. 그때 비로소 진째 늙음이 시작된다.
여행을 이끄는 사람
우리 사회에는 자칭 타칭 리더로 불리는 이들이 넘쳐난다. 그러나 자신을 믿고 따르는 사람을 끝까지 책임지고 권한과 책임 사이에서 심도 있게 방황하는 리더는 그리 많지 않은 듯하다. 뭐랄까. 다들 리드를 하겠다고 목소리만 높인다고 할까. 그들이 이 들을 리드했으면 하는 소박한 바람을 가져본다.
부드러운 것과 딱딱한 것
여보게, '부드러움'에는, '강함'에 없는 것이 있다네. 그건 다름아닌 생명일세. 생명과 가까운 게 부드러움이고 죽음과 가까운게 딱딱함일세. 살아 있는 것들은 죄다 부드러운 법이지.
이름을 부르는 일
이름을 부르는 일은 숭고하다.
숭고하지 않은 이름은 없다.
가능성의 동의어
당당하게 교무실을 나서면서 나는 이런 생각을 떠올렸다. 사람 보는 '눈'이란 건 상대의 단점을 들추는 능력이 아니라 장점을 발견하는 능력이라는 것과, 가능성이란 단어가 종종 믿음의 동의어로 쓰인다는 것을.
하늘이 맑아지는 시기
오늘은 절기와 꽤 잘 어울리는 장면을, 거친 일상을 정화하는 맑은 광경을 목격한 것 같다.
계절의 틈새
다들 저마다의 방식으로 계절의 틈새를 건너가며, 자신이 살아있음을 느낀다.
참, 나는 계절이 변화하는 미묘한 시기에, 수분크림이나 계절에 어울리는 양산을 어머니 화장대 위에 은밀하게 올려놓는 편이다.
계절이 보내온 편지
내려앚은 꽃잎 따라,
하나의 계절이 가고 있다.
몸이 말을 걸었다
나는 "자신과의 싸움에서 이겨야 한다"는 말을 좋아하지 않는다.
살다 보면 싸워야 할 대상이 차고 넘치는데 굳이 '나'를 향해 칼끝을 겨놀 필요가 있을까 싶다. 자신과의 싸움보다 자신과 잘 지내는게 훨씬 더 중요하다고 나는 생각한다.
화향백리 인향만리
꽃은 향기로 말한다. 봄꽃은 진한 향기를 폴폴 내뿜으며 벌과 나비와 상춘객을 유혹한다. 향기의 매력은 퍼짐에 있다. 향기로운 꽃 내음은 바람에 실려 백 리까지 퍼져 나간다. 그래서 화향백리라 한다.
관찰은 곧 관심
그래서일까. 돌이켜보면 관심이 멈추던 순간,
상대를 향한 관찰도 멈췄던 것 같다...
나를 용서해야 하는 이유
가끔 삶이 버겁거나 내가 느끼는 죄책감이 비겁함으로 둔갑하려는 순간마다 나는 숀 교수가 들려준 "네 잘못이 아니야"라는 문장을 소리내어 읽곤 한다.
그러면서 하릴없이 되뇐다.
살면서 내가 용서해야 하는 대상은 '남'이 아니라 '나'인지 모른다고.
우린 늘, 다시 시작하지 않으면 안 된다고
타인의 불행
인간은 얄팍한 면이 있어서
타인의 불행을 자신의 행복으로 종종 착각한다.
하지만 그런 감정은 안도감이지 행복이 아니다.
얼마 못 가 증발하고 만다.
아름다운 걸 아름답다 느낄 때
"아름다운 것을 아름답다고 느낄 때 우린 행복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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