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직의 구성원이 서로를 신뢰하는 것은 정상적이고 보편적인 리더라면 누구나 간절히 소망하는 것이다. 필요한 비판과 의심은 살려내면서도 어떻게 하면 구성원들 간에 서로 좋은 신뢰 관계를 구축해 조직의 역량과 응집성 두 마리 토끼 모두를 잡는 결과를 만들어 낼 수 있을까.
최후 통첩 게임(Ultimatum Game)이라는 것이 있다. 심리학뿐 아니라 다른 사회과학 분야 전반에 걸쳐 자주 사용되는 게임 형태의 실험 과제다.
이 게임에서는 A와 B 두 명의 플레이어가 게임을 한다. A는 제안자고 B는 수용자다. 예를 들어 A에게 10만 원이 주어졌다고 가정해 보자. 그렇다면 이 A는 자신이 받은 돈의 일부를 B에게 나누어 주어야 한다(제안). 얼마를 줄지는 A 마음대로다. 한편 B는 A가 주는 돈을 받거나(수용) 거부할 수 있다. B가 A의 제안을 수용하면 그 제안대로 각자 돈을 나누어 가질 수 있지만 만일 거부하면 A와 B 모두 돈을 전혀 받을 수 없다.
만약 A가 돈을 5대 5로 나누자고 제안한다면 B는 둘 모두 돈을 받을 수 없는 ‘거부’를 하지 않고 ‘수용’할 가능성이 클 것이다. 하지만 A가 자신은 8만 원을 가지고 B는 2만 원만 가지라는 불공정한 제안을 한다면 B의 입장에 있는 실험 참가자들은 대부분 제안을 거부한다.
물론 어찌 보면 바보 같은 짓일 수도 있다. 왜냐하면 제안을 수용하면 어쨌든 2만 원의 공돈이 생기니 말이다. 하지만 사람들은 대부분 거부한다. 심지어는 이러한 불공정한 제안을 받아들여 챙길 수 있는 금액이 자신의 1~2개월치 월급에 해당하는 돈일 경우에도 거부하는 사람들이 상당히 있다.
사람들은 이 정도로 불공정함이나 불평등함을 혐오한다. 자신이 무언가를 가지지 못해도 불공정한 제안이나 지시를 내리는 사람이 큰 이익을 취하는 것을 막으려 한다는 것이다.
신뢰는 불공정함과 부조리에 대한 부정
뇌과학 연구들을 종합해 보면 그 이유에 관한 흥미로운 점들을 알아볼 수 있다. 최후 통첩 게임에서 불공정한 제안을 받을 경우 뇌의 배외측 전전두피질(DLPFC) 영역이 평상시보다 훨씬 더 많이 활성화된다. 그렇다면 이 뇌 영역이 ‘불공정함’을 알아차리게 만들어 주는 곳일까.
답은 그리 간단하지 않다. 사실 이 영역은 ‘신뢰’를 담당하는 곳이다. 그래서 이 영역이 손상된 환자는 제안을 하는 사람이 얼마만큼 믿을 수 있는 사람인가를 판단하는 능력이 떨어진다. 그 결과 믿을 만한 사람이 아닌데도 무작정 믿는 경향이 곧잘 관찰된다. 실제로 이 영역이 제대로 작동하지 못하는 사람들은 무모한 투자나 부조리한 지시도 쉽게 따르는 것으로 나타난다.
그렇다면 이런 추론이 가능해진다. 우리의 뇌가 정상일 때도 잘못된 신뢰 때문에 이런 일이 얼마든지 일어날 수 있다고 말이다. 그리고 잘못된 신뢰는 대부분 학연, 혈연, 지연 혹은 이른바 라인이라고 부르는 관계에서 시작된다.
가까운 사람들로부터 부적절한 제안이나 지시를 받을 경우 ‘이러지 말아야 하는데’라는 생각을 하면서도 그 일을 결국 하는 경우들 말이다. 왜냐하면 그 사람들을 철석같이 믿기 때문이다. 이는 소집단의 신뢰에 기반한 행동인 것 같지만 결국은 대집단의 신뢰를 망가뜨리는 일이 되고 만다.
조직 내에서의 부조리도 이런 과정을 거치면서 만연하게 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부정이나 불공정한 일을 저지른 사람들을 보면 주위에 철석같이 믿는 사람들의 지시를 아무 생각 없이 따른 경우가 허다하다.
게다가 우리나라처럼 화목과 단결을 강조하고 끈끈한 팀워크를 늘 최고의 조직 역량으로 삼는 문화권에서는 더더욱 위험하다. 이는 신뢰가 아니다. 학연이고 혈연이고 지연이며 부서 이기주의다. 이러한 믿음이 엉뚱한 곳에서 옳지 못한 생각과 조직에 피해를 주는 행동을 아무런 의심이나 되돌아봄 없이 얼마든지 실천으로 옮길 수 있기 때문이다.
진정한 신뢰는 불공정함과 부조리한 것에 ‘노(No)’라는 말을 서로에게 해 줄 수 있을 때 비로소 쌓이게 된다. 그리고 우리는 그런 사람들을 진심으로 신뢰하며 그런 사람이 많을수록 조직에는 신뢰가 쌓인다. 그런 사람에게 리더가 어떤 방식으로든 긍정적 신호를 주고 그 사실을 모든 구성원들이 목격할 수 있어야만 한다.
배려하는 자에게 리더는 칭찬을
당연한 이야기겠지만 서로 신뢰하게 되면 거짓 없이 진실된 내용을 상대방에게 말하게 된다. 다양한 심리학 연구들을 종합해 보면 사람은 상대방으로부터 두 가지 전제조건 모두가 충족돼야 신뢰를 보낸다.
캐나다 워털루대의 심리학자 메건 메카티 박사에 의하면 사람들은 자아존중감(Self-esteem)과 친화성(Agreeableness) 두 가지 모두가 충족돼야 상대방에게 속을 드러낸다. 즉 신뢰를 만들어 낸다는 것이다.
먼저 자아존중감은 자신이 사랑받을 만한 가치가 있는 소중한 존재이며 어떤 성과를 이루어 낼 수 있는 유능한 사람이라고 믿는 마음을 뜻한다. 또한 친화성은 타인과 긍정적이면서도 조화로운 관계를 지니려고 하는 동기를 의미한다.
그런데 메카티 박사에 의하면 사람들은 자신의 가치와 타인이 나에게 보내는 친밀감이 모두 있을 때에만 ‘저 사람이 나를 도울 것이다’라는 신뢰가 발생한다. 실제로 자아존중감과 친화성이 동시에 높은 사람들만이 솔직하게 자신의 감정을 상대방에게 드러내는 것으로 나타났다.
당연히 신뢰라는 것이 결정적인 매개 요인임이 드러났다. 매개한다는 것은 무엇인가의 결과이고 다른 무엇인가에는 원인이 된다는 것을 의미한다. 즉 자아존중감과 친화성이 모두 높은 경우에만 다른 구성원들이 자신에게 우호적이면서 자신이 어려움에 닥쳤을 때 도와줄 것이라는 믿음을 가질 수 있게 된다.
그렇기 때문에 자신의 속내를 잘 드러내어 이후의 갈등을 막고 더 나아가 이차적인 자아존중감, 친화성 그리고 신뢰를 추가적으로 만들어 내는 선순환 구조가 만들어진다. 이런 양상은 슬픔이나 스트레스와 같이 취약 혹은 위험 정서를 표출할 때 특히 결정적이다. 즉 조직 구성원들이 보내는 위험 신호가 정확히 전달될 수 있기 위해서 더더욱 필요하다.
문제는 둘 중의 하나만 있고 나머지가 없으면 그 결과는 별로 좋지 않은 정도가 아니라 지극히 나쁜 쪽으로 흘러간다는 점이다. 자아존중감이 없는 상태에서 친화성만 높은 경우는 어떻게 되겠는가. 이른바 ‘우리가 남이가’ 식의 파벌주의나 조직 이기주의적 측면을 키우면서 창조적 생산성을 죽이는 집단으로 흘러갈 것이다.
반대로 자아존중감은 크지만 친화성이 없는 조직에 있는 사람들은 자신만이 사랑받고 유능해지기 위해 정글 같은 약육강식의 구조와 경쟁을 이차적으로 만들어 낼 것이 뻔하다. 그러니 결론은 분명하지 않겠는가. 타인을 배려(친화성)하는 모습과 행동에 조직에서 아낌없이 칭찬(자아존중감)을 해주어야 한다.
아주대학교 심리학과 교수 김경일
출처: chief executive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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