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의 모든 진화는 선택에서 시작된다. 그리고 그 선택은 늘 생존을 향한다.
크게 나아갈 것인가, 작게 숨을 것인가. 고요히 살아남을 것인가, 드러내며 확장할 것인가. 생명은 언제나 그 경계에서 고민해왔다.
이번 주 국제학술지 ‘네이처’의 표지에 등장한 생물, 눈송이효모는 우리에게 아주 흥미로운 질문 하나를 던진다. 그 작고 소박한 생명체는 지금 우리에게 이렇게 묻고 있는 듯하다.
“왜 어떤 생명은 더 커지기를 선택했을까?”
생명의 유전자, 한 벌 더 갖게 된다는 것
우리가 잘 아는 대부분의 생명체는 2배체(Diploid)다. 즉, 각 염색체가 한 쌍으로 존재한다. 우리도 그렇다. 엄마와 아빠에게서 각각 받은 유전정보가 짝을 이룬다. 안정적이고, 효율적이다.
그런데 어떤 생명체들은, 아주 드물게, 유전체 전체가 한 벌 더 늘어난다. 즉, 4배체(Tetraploid)가 된다. 마치 책 한 권을 복사해 두 권으로 갖는 것과 비슷하다. 생명의 기본 설명서가 두 벌 더 많아지는 셈이다.
그런 변화를 우리는 전체 게놈 복제(WGD: Whole Genome Duplication)라고 부른다. 오랜 세월 생물학자들은 이 WGD가 왜 발생하는지, 그 변화가 생존에 어떤 의미를 가지는지에 대해 명확히 말하지 못했다. 더 많다고 꼭 더 좋다는 법은 없으니까.
하지만 이번에 미국 조지아공대의 윌리엄 랫클리프 교수 연구팀은 실험을 통해 그 질문에 구체적인 답을 내놓았다.
눈송이처럼, 조용히 커져간 생명
눈송이효모(Saccharomyces cerevisiae)는 원래 단세포 생물이다. 하지만 실험실에서 특별히 배양된 이 효모는 다세포 형태로 진화하며, 마치 눈송이처럼 작은 군집을 이룬다. 그 때문에 ‘눈송이효모’라는 이름이 붙었다.
연구팀은 이 효모를 장기 진화 실험에 사용했다. 50일도 되지 않아, 실험군 중 일부가 4배체로 변화했다. 그리고 놀랍게도, 그 4배체 집단은 무려 950일간, 5000세대 가까이 유지되었다.
그것은 단순한 변이가 아니었다. 선택이었다.
생존에 유리하기 때문에, 생명은 스스로 그 형태를 지켜냈다.
크다는 것의 진화적 의미
왜 4배체는 살아남았을까?
연구팀은 다양한 생물물리학 모델링을 통해, 4배체 눈송이효모가 더 크고, 더 길게 자라는 세포를 가진다는 사실을 밝혀냈다. 마치 몸집이 커진 생명체처럼, 눈에 띄게 성장한 것이다.
왜 몸집이 커야 했을까?
효모가 자란 환경에서는 크기가 곧 생존의 조건이었다. 무게가 무겁고, 부피가 큰 군집일수록 환경에 더 잘 적응하고 생존 확률이 높았다. 즉, 더 커야만 했다.
생명은 그 환경에 적응하기 위해, 유전정보를 한 벌 더 추가하는 전략적 결정을 내린 셈이었다.
그리고 때로는 다시 작아지려는 본능
하지만 이 현상은 절대적인 것은 아니었다.
연구팀은 조건을 바꿔, 작아야 생존에 유리한 환경을 만들자, 눈송이효모는 다시 2배체로 회귀하려는 경향을 보였다.
생명은 환경을 읽고, 가장 유리한 크기로 스스로를 조정했다.
크다고 좋은 것도, 작다고 나쁜 것도 아니다.
진화란, 가장 유리한 것을 선택하는 것이다.
이 단순한 진리는 눈송이효모의 실험을 통해 다시금 증명되었다.
복제된 유전자, 더 많은 가능성
WGD의 또 다른 의미는 유전적 다양성에 있다. 유전자가 한 벌 더 있다면, 변이가 발생할 수 있는 기회도 그만큼 많아진다. 진화는 바로 그 변이에서 시작된다.
연구팀은 “WGD는 처음에 즉각적인 이득을 줄 수 있고, 시간이 흐르면서 추가적인 유전자 변이의 가능성을 열어 진화적 혁신을 촉진할 수 있다”고 설명한다.
즉, 처음에는 단지 몸을 키우기 위한 선택이었을지라도, 결과적으로는 진화의 새로운 길을 여는 계기가 될 수 있다는 것이다.
생명이란, 한 번의 선택이 수만 번의 가능성으로 이어지는 놀라운 연속체다.
작은 효모가 던진 큰 질문
눈송이효모는 작고도 소박한 존재다.显微镜으로나 겨우 볼 수 있는 그 생물이, 지금 우리가 가진 진화에 대한 질문에 답을 주고 있다.
“왜 어떤 생명은 더 커지기를 선택했을까?”
그 질문은 단지 생물학적 설명으로 끝나지 않는다. 인간 존재에 대한 질문으로 확장될 수 있다.
우리도 결국, 변화된 환경 속에서 커질 수밖에 없었다
우리 인간도 언젠가 선택을 했다. 무리를 지었고, 언어를 만들었고, 공동체를 이루었다.
한 사람의 뇌가 견딜 수 없던 문제들을, 우리는 집단의 힘으로 해결했다.
개인의 한계를 넘어서기 위해, ‘사회’라는 4배체를 만든 셈이다.
더 많은 정보를 저장하고, 더 많은 가능성을 확보하기 위해 인간은 스스로를 확장시켜왔다. 우리가 가진 문명, 기술, 교육 시스템은 모두 하나의 WGD라고도 할 수 있다.
더 많은 유전자가 더 많은 변이를 만든다면, 더 많은 사람과의 연결은 더 풍부한 사고와 감정을 낳는다.
우리는 그렇게 진화해왔다.
진화는 단순히 생존이 아니라, 의미를 찾는 여정이다
눈송이효모의 실험이 감동적인 이유는, 그것이 단순히 생물학의 발견을 넘어선 존재의 본질을 건드리기 때문이다.
생명은 살아남기 위해 끊임없이 선택한다.
더 커져야만 할 때가 있고, 작아지는 것이 최선일 때도 있다.
그러나 그 모든 선택은 의미 있는 삶을 향한 움직임이다.
작은 존재가 말해주는 진실
눈송이효모는 우리에게 말한다.
“내가 몸집을 키운 것은, 살아남기 위한 본능 때문이었고
유전정보를 늘린 것은, 미래의 가능성을 포기하지 않기 위해서였다.”
그 말은 이렇게 번역될 수 있다.
“나는 앞으로 나아가고 싶었다.”
우리의 삶도 결국 유전의 반복이 아닌, 진화의 실험이다
이 실험은 과학적인 발견이지만, 동시에 우리 모두에게 적용되는 메시지를 담고 있다.
당신의 삶에 새로운 조건이 주어졌을 때, 당신은 더 커져야만 할 수도 있다.
더 많은 가능성을 품고, 더 넓은 세상을 향해 나아가야 할 수도 있다.
그러니 스스로를 확장하길 두려워하지 말자.
그건 단지 변이가 아니라, 진화다.
"왜 어떤 생명은 더 커지기를 선택했을까?"
그 답은 단순하다.
살아남기 위해. 그리고, 더 나아가기 위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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