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릴 적, 나는 시골 할머니 댁 근처에 있던 작은 수력발전소를 자주 구경하곤 했다. 투명한 물이 거세게 흐르며 커다란 회색의 터빈을 돌리는 모습은 아이였던 나에게 경외심을 불러일으켰다. 그것은 자연이 움직이는 힘이었고, 그 힘이 우리의 전구 하나를 밝힐 수 있다는 사실은 마법처럼 느껴졌다.
수십 년이 지나고, 나는 다시 ‘터빈’이라는 단어 앞에 멈춰섰다. 이번엔 그것이 물리적 구조물이 아닌, 우리 몸속에서 살아 있는 세포 하나하나에 존재한다는 사실 앞에서였다. 그것은 바로 미토콘드리아였다. 나는 경이로움과 함께 질문을 품게 되었다. “우리 몸의 가장 작은 터빈은 어떻게 삶을 움직이는가?”
생명은 결국 에너지다
우리 몸의 모든 움직임은 에너지에서 시작된다. 심장이 뛰는 것도, 뇌가 생각하는 것도, 근육이 움직이는 것도 모두 ATP라는 에너지 화폐 덕분이다. 이 ATP를 만들어내는 공장이 바로 미토콘드리아다. 세포 속에 수천 개씩 자리한 이 작은 존재들은 인간이라는 거대한 시스템의 엔진 역할을 한다.
하지만 우리는 그동안 이 에너지 공장이 어떻게 작동하는지에 대해 너무도 막연하게만 알고 있었다. 마치 자동차가 움직이긴 하지만 엔진 속 구조가 어떻게 동작하는지는 모르는 것처럼 말이다. 과학은 여전히 이 복잡한 구조물의 정교함에 놀라고 있으며, 최근 ‘사이언스’에 실린 한 연구는 우리에게 그 정답에 한 걸음 다가갈 기회를 주었다.
눈으로 본 최초의 ‘생명 에너지 공장’
스위스 바젤대학교의 벤 엥겔 교수 연구팀은 초저온 전자단층촬영 기술을 이용해 미토콘드리아의 내부를 그야말로 ‘들여다보는’ 데 성공했다. 수많은 분홍색과 푸른색 분자들이 질서정연하게 배열된 그 모습은 놀라울 정도로 아름다웠다. 마치 인간이 만든 최고 수준의 기계장치를 들여다보는 것처럼, 세포 속 구조물은 그 자체로 하나의 예술이었다.
이 정교한 분자 기계는 ‘호흡 복합체 단백질’이라는 존재들로 구성되어 있었고, 이들은 이제까지의 추측을 넘어서 실제로 하나의 슈퍼복합체를 구성하며 작동하고 있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생명의 수차(水車)
이 슈퍼복합체의 작동 방식은 흡사 수력발전소와 닮아 있다. 복합체는 미토콘드리아의 막을 가로지르며 수소이온을 이동시키는 펌프 역할을 수행한다. 이 수소이온이 한쪽 방향으로 쏟아지며 에너지를 낳는다. 그리고 이 흐름은 마치 수차(水車)처럼 ATP 합성 복합체를 회전시켜 세포가 사용할 수 있는 에너지를 만들어낸다.
이 장면을 상상해보자. 세포 안, 그 누구도 볼 수 없던 작은 우주에서, 분자들은 한 치의 오차도 없이 움직이고, 수소이온의 흐름은 거대한 폭포수처럼 터져 나오며, 그 흐름을 통해 우리는 눈을 깜빡이고, 마음을 느끼고, 사랑을 기억한다.
우리는 얼마나 작은 존재에 기대어 살아가는가
이 연구가 더욱 놀라운 이유는, 이처럼 고도로 조직된 구조가 수십억 년 전부터 생명체 내에서 유지되어 왔다는 것이다. 진화의 압력 속에서 단 하나의 생존 도구로 살아남은 이 구조는, 에너지 효율을 극한으로 끌어올리기 위해 끊임없이 최적화되어왔다. 이는 생명의 기본 원칙을 증명한다. 최소의 낭비로 최대의 생존을 이루는 것.
연구진은 “모든 호흡 단백질이 실제로 슈퍼복합체로 조직돼 있다는 사실에 놀랐다”고 말한다. 그리고 이 구조 덕분에 에너지 생산의 효율이 극대화되며, 전자 흐름의 손실이 줄어들고, 세포는 한정된 자원으로도 살아남을 수 있다.
이 작은 구조물이 제대로 작동하지 않으면, 우리는 피로를 느끼고, 병에 걸리고, 때로는 삶의 마지막 순간에 다다른다. 인간이라는 존재는 가장 작은 것에 가장 큰 생명을 기대고 있는 셈이다.
막의 주름, 생명의 숨결
연구는 또 하나의 흥미로운 사실을 밝혀냈다. 미토콘드리아의 막 구조가 주름진 형태를 띠고 있다는 것이다. 이 주름이 많을수록 호흡 복합체를 더 많이 수용할 수 있고, 에너지 생산 능력도 그만큼 높아진다. 마치 산맥이 많은 땅이 물을 잘 머금듯, 주름진 막은 에너지를 품고 있었다.
이 주름을 보고 있자니, 나는 인간의 뇌를 떠올렸다. 복잡하게 주름진 뇌피질은 인간의 고등 사고를 가능하게 한다. 그리고 주름진 미토콘드리아는 인간의 생존을 가능케 한다. 주름은 진화가 남긴 흔적이며, 생명이 고단한 여정을 살아낸 증거다.
삶의 본질에 더 가까이 다가가기 위한 과학
이처럼 작은 구조물 하나하나가 우리의 삶과 직결되어 있다는 사실은, 과학을 단지 지식의 축적이 아닌 존재의 이해로 이끈다. 왜 우리는 지치고, 왜 우리는 살아 있으며, 왜 우리는 병들고, 왜 우리는 다시 일어설 수 있는가에 대한 해답이 바로 이 작은 미토콘드리아 안에 있다.
연구팀은 앞으로도 이 슈퍼복합체가 왜 서로 연결되어 있는지, 그리고 어떻게 세포 호흡의 효율을 높이는지를 더욱 심층적으로 탐구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나아가, 이 복합체에 이상이 생겼을 때 발생할 수 있는 인간 질환의 원인을 밝히는 데도 큰 도움을 줄 것이라고 한다.
가장 작은 것에서 가장 큰 것을 보다
우리는 종종 거대한 것에 의미를 둔다. 거대한 빌딩, 거대한 기업, 거대한 업적. 하지만 오늘 우리가 주목한 것은 그 모든 것의 시작점이 되는 ‘작은’ 존재였다. 미토콘드리아의 슈퍼복합체는 크기나 외형이 아니라 기능과 연결로 존재의 가치를 입증한다.
마치 삶도 그렇다. 우리가 나누는 작은 친절 하나, 누군가의 등을 토닥이는 작은 손길 하나, 사라져버릴 것 같은 작은 희망 하나가 삶의 거대한 흐름을 바꾸기도 한다.
미토콘드리아는 이 모든 진실을 세포 단위에서 말해준다. 가장 작은 움직임이 가장 큰 에너지를 만들 수 있다는 것, 그것이 바로 생명의 방식이며, 삶의 방식이다.
당신의 몸은 지금도 기적처럼 작동하고 있다
우리는 매 순간 숨을 쉬고, 음식을 먹고, 움직이며 살아간다. 이 모든 과정은 의식하지 않는 수많은 에너지의 움직임으로 이뤄진다. 그 중심에 미토콘드리아가 있다. 그 안의 슈퍼복합체는 오늘도 끊임없이 돌아가고 있다. 거대한 수차처럼, 생명을 돌려주고 있다.
그러니 기억하자. 피곤한 하루를 마치고, 가슴이 무거운 날에도, 당신의 몸은 여전히 작동하고 있다는 사실을. 당신은 작은 터빈 수천 개가 만들어내는 기적의 총합이다.
그리고 그 기적은 계속된다.
“우리 몸의 가장 작은 터빈은 어떻게 삶을 움직이는가?”
그 답은 지금 이 순간에도, 당신 안에서 회전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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