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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벽하지 않아도 괜찮습니다 당신 충분히 잘하고 있으니까요"
실패를 좋아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하지만 실패에 대해 정상적인 거부감을 느끼는지 극심한 두려움을 느끼는지에 따라 차이가 생긴다. 실패하지 않겠다는 생각은 필요한 예방조치를 취하고 성공하기 위해 좀 더 열심히 노력하게 한다. 반면, 실패에 대한 극심한 두려움은 종종 성장에 필요한 모험을 할 수 있는 용기를 꺾어버린다. 그 결과 능력을 마음껏 발휘할 수 없을 뿐 아니라 전반적인 정신건강에도 문제가 생긴다.
가장 먼저 완벽주의와 최적주의는 서로 아주 다르지 않다는 사실을 이해하는 것이 중요하다. 어떤 사람도 100퍼센트 완벽주의자나 100퍼센트 최적주의자일 수 없다. 그보다는 완벽주의와 최적주의를 동일선상에 놓고 어느 한쪽으로 더 기울어지는지 생각해야 한다.
유명인들의 이야기가 아니더라도 우리는 종종 실패를 딛고 크고 작은 업적을 이룬 사람들의 성공담을 듣는다. 실패가 성공을 하기 위한 충분조건은 아니다. 다시 말해 실패가 성공을 보장해주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실패가 없으면 성공도 없는 것은 확실하다. 실패가 업적과 밀접한 관계가 있다는 것을 이해하는 사람들은 배우고 성장하고 결국 성공한다. 실패하지 않으면 배우지 못한다.
어떤 목적을 갖고 감정을 받아들이는 것은 효과가 없다. 예를 들어, 뭔가를 좀 더 잘하기 위해 어떤 감정을 받아들이는 것을 나는 거짓 수용이라고 부른다. 거짓 수용은 도움이 되지 않는다. 만일 내가 ‘편안한 마음으로 강의하기 위해 불안감을 받아들여야 한다’는 식으로 생각했다면 아무런 효과도 없었을 것이다. 따라서 어떤 바람이나 희망에 대해서는 생각하지 말고 느끼는 감정을 그대로 받아들여야 한다. 감정을 받아들이는 것은, 예를 들어 화가 난다는 사실을 인정하고 그러고 나서도 기분은 나아지지 않을 수 있다는 사실까지 인정하는 것이다. 진정으로 감정을 받아들일 수 있는 능력은 완벽주의자와 최적주의자를 구분하는 차이의 핵심이다.
여기서 고통스러운 감정을 ‘받아들이는 것’과 ‘반추하는 것’을 구분해야 한다. 받아들이는 것은 어떤 감정을 느끼면서 조용히 있는 것이고, 반추하는 것은 그 감정에 대해 편집적으로 생각하는 것이다. 어떤 감정이나 사건을 반추하는 것은 비생산적이고 감정을 강화할 뿐이다. 따라서 반추하는 것은 문제의 일부이며 해결책이 아니다.
누구도 긍정적인 감정만 느끼는 ‘완벽한’ 삶을 살 수 없다. 고통스러운 감정을 거부함으로써 완벽한 삶을 살려고 하면 고통이 더욱 심화될 뿐이다. 최고의 삶을 위해서는 우리 자신에게 오는 모든 감정을 온전하게 느끼고 표현할 수 있어야 한다.
중력의 법칙이 물리적 자연의 일부인 것처럼, 고통스러운 감정은 인간이 지닌 본성의 일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대부분의 사람이 중력의 법칙은 인정하고 받아들이지만 고통스러운 감정은 부정하고 거부한다. 충만하고 건강한 삶을 살기 위해서는 다른 자연 현상과 마찬가지로 우리의 감정을 받아들여야 한다.
마찬가지로 우리는 ‘두려움’이라는 감정을 싫어할 수는 있지만 그 감정 자체의 옳고 그름을 평가할 수는 없다. 감정은 그 자체로 존재할 뿐이다. 그러나 감정에 어떻게 반응하여 행동하느냐에 따라서는 이야기가 달라진다.
긍정적인 수용은 상황을 있는 그대로 인정하고 나서 가장 적절하다고 생각하는 행동 방향을 선택하는 것이다. 두려움을 느끼면서도 용기 있게 행동하고, 질투를 느끼면서도 자애롭게 행동하고, 인간성을 받아들이고 인간애를 발휘하는 것처럼 우리는 매 순간 어떻게 행동할 것인지 선택할 수 있다.
나는 완벽주의의 함정에 빠져 실패에 대한 극심한 두려움과 무력감을 느낄 때마다 능력은 향상될 수 있고, 인생에는 당연히 부침이 있으며, 과거에도 종종 그랬듯이 노력을 하면 더 잘할 수 있다는 사실을 떠올린다. 성장형 사고방식으로 여행에 초점을 맞추면 부담감이 줄어든다. 또한 일의 능률이 오르고 즐기면서 일을 할 수 있다. 또한 우리 집 아이들과 학생들에게도 성장형 사고방식의 본보기를 보여주려고 노력한다.
우리는 모르는 것을 두려워한다. 그래서 지난여름, 어젯밤, 또는 선사시대에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필사적으로 알아내려고 한다. 다음 주에 무슨 일이 일어날 것인지, 지금부터 10년 뒤 또는 천 년 뒤 이 세상이 어떻게 될 것인지 궁금해한다. 현재에서 확실한 것을 추구하고, 현실을 정확하게 알고 싶어 한다. 나쁜 소식보다도 모르는 것을 두려워한다. 불확실한 진단은 종종 확실하게 부정적인 진단보다 우리를 더 두렵게 한다. 단순한 호기심을 넘어서 알고자 하는 욕망은 인간의 뿌리 깊은 실존적 욕구다. 아는 것이 힘이라면 모르는 것은 무기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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