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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ook Review

"트렌드 코리아 2021" 서울대 소비트렌드 분석센터의 2021 전망

by 욕심쟁이77 2021. 5. 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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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난도

교수, 트렌드 연구자, 컨설턴트, 작가. 서울대학교 생활과학대학 소비자학과에서 학생들을 가르치고, 생활과학연구소 소비트렌드분석센터를 이끌며 소비트렌드를 연구하고 있다. 서울대학교 교육상, 매일경제신문 정진기언론문화상, 한국소비자학회 최우수논문상, 한국정책학회 학술상, 한국갤럽 최우수논문지도상, 한국마케팅협회 공로상, 한중경영대상 한중경제협력상 등을 수상했다. 코웨이, 아모레퍼시픽, 에버랜드, 현대자동차, 삼성전자, SK텔레콤, LG전자, CJ그룹, 신한카드, 한국외식산업연구원, 신세계그룹, SK경영경제연구소, 롯데마트, 제일기획, 한라마이스터, AK플라자 등 여러 주요 기업들을 자문하며, 이론적 지식과 실무적 경험의 시너지를 도모하는 데도 힘을 쏟고 있다.

KBS 해피FM에서 「김난도의 트렌드 플러스」라는 라디오 프로그램을 진행했으며, 한국형 대규모 온라인 공개강좌 K-MOOC에서 ‘소비자와 시장’이라는 강좌를 운영하고 있다. 최근에는 유튜브 채널 「트렌드코리아TV」를 개설해 트렌드 관련 콘텐츠를 업로드하고 있다.

12년째 [트렌드 코리아] 시리즈를 매년 집필하며 언택트·뉴트로·세포마켓·필환경·가심비·편리미엄·1코노미 등의 트렌드 신조어를 발표한 바 있다. 그 외에도 『2020 Consumer Trend Insights』(『트렌드 코리아 2020』 영문판), 『트렌드 로드: 뉴욕 임파서블』, 『트렌드 차이나』(공저), 『럭셔리 코리아』 등의 소비·트렌드 관련 경제경영서와 『아프니까 청춘이다』, 『천 번을 흔들려야 어른이 된다』, 『김난도의 내:일』, 『웅크린 시간도 내 삶이니까』 등의 에세이를 출간했다.

서문 4

2021년 10대 소비트렌드 키워드 20

1 2020년 소비트렌드 회고

Me and Myselves 멀티 페르소나 25

유산슬, 유고스타, 유두래곤, 지미유, 유르페우스, 닭터유…….

위 인물들의 공통점은 무엇일까? 연예가 소식에 관심이 많은 사람은 금방 맞힐 것이다. 모두 유재석의 ‘부캐(副캐릭터)’다. 다시 말해 위의 인물들은 모두 유재석이라는 것이다. ‘국민연예인’의 인기를 증명하듯, 그는 2020년 9월 현재까지 여덟 가지 캐릭터를 혼자서 소화한 바 있다. 그처럼 8개까지는 아니더라도 2020년을 기점으로 많은 연예인들이 본래의 정체성 대신 다양한 ‘부캐’를 선보였다. 연예인은 마치 정말 다른 사람인 것마냥 태연하게 부캐로 활동하고, 대중들도 알면서 모르는 척, 누가 또 어떤 정체성을 만들어 등장할지 궁금해하며 방송가의 캐릭터놀이에 흠뻑 빠져들었다. 부캐 현상은 2020년 연예가에서 가장 눈에 띄는 트렌드였다.

하나의 고유한 ‘메인 캐릭터’의 컨셉을 잡기 위해 부단히 노력하던 연예인들이 돌연 ‘다른 캐릭터’로 활동하는 트렌드는 어떻게 이해할 수 있을까? 그 답은 『트렌드 코리아 2020』에서 첫 키워드로 제시했던 ‘멀티 페르소나’에서 찾을 수 있다. 다양한 정체성으로 생활하는 것에 익숙해진 시청자들이 연예인들의 정체성 바꾸기에도 거부감을 느끼지 않고, 오히려 재미있게 받아들인 것이다. 사실, 멀티 페르소나는 유명인의 전유물이 아니다. 직장인들도 직장에서와 퇴근 후의 정체성이 다르고, 학생들도 일상생활을 할 때와 SNS를 할 때의 정체성이 다르다.

다중역할놀이multiple role playing가 일상화된 현대인들은 그동안 무겁게 쓰고 있던 ‘사회적 가면’을 눈치 보지 않고 벗어던질 수 있게 됐다. 바야흐로 ‘다중이(다중인격자를 귀엽게 지칭하는 말)’들이 사랑받는 세상이다. 과연 멀티 페르소나는 소비자들의 어떤 가면을 벗겨냈고, 그들에게 어떤 가면을 새로 씌웠을까?

다양해진 정체성의 가면들

직업의 멀티 페르소나

일과 삶에서 자신의 정체성을 여러 개로 분리하는 모습이 직장인들에게서 뚜렷이 나타났다. 2020년 3월, 잡코리아가 직장인 559명을 대상으로 ‘멀티 페르소나 트렌드’ 조사를 실시한 결과, 설문에 참여한 직장인 중에서 87.8%가 멀티 페르소나 트렌드에 공감한다고 답했다. 특히 이들 중 77.6%는 “회사에서의 내 모습이 평상시와 다르다”라고 응답했다. 이러한 답변은 40대 이상(71.2%)에 비해 20대(80.3%)와 30대(78%)에서 상대적으로 많이 나와 젊은 층에서 멀티 페르소나 현상이 더욱 강하게 작용했음이 드러났다. 젊은 세대의 정체성 전환은 생활 속에서 매우 유연하고도 신속하게 이루어진다. 예를 들어, 회사원이라는 가면을 언제 쓰는지에 대한 질문에는 “회사 건물에 도착해 엘리베이터를 탈 때”라는 답변이 40.6%로 가장 많았다. 물리적 경계를 넘어서는 순간 심리적 구별 짓기를 수행하며 빠르게 정체성을 전환하는 것이다.

SNS의 멀티 페르소나

SNS를 중심으로 한 온라인 정체성은 현실의 오프라인 정체성과 매우 다른 양상으로 펼쳐진다. SNS에서는 여전히 셀카놀이가 인기인데, 이제 카메라 앱을 활용해 자신의 모습을 훨씬 더 예쁘고 이상적으로 바꿀 수 있게 됐다. 특히 인물 사진에 다양한 포토샵 효과를 간편하게 구현해주는 보정 애플리케이션의 인기가 매우 높다. 실제로 인스타그램·카카오스토리·스냅챗 등의 SNS에 올라와 있는 멋진 풍경이나 인물 사진들 중 대부분은 보정을 거친 이미지다. 얼굴을 뽀얗게 만들고 눈동자와 입술을 더 선명하고 아름답게 표현해주는 사진 필터링 기술이 도입되면서 소셜미디어 환경에서 새로운 미의 기준이 구축되고 있다.

문제는 그렇게 보정된 사진 속 자신과 실제 자신 사이의 괴리가 일반화되면서, SNS에서의 멀티 페르소나 현상이 현실로 전이된다는 것이다. 2018년 미국의학협회의 국제학술지 JAMA, Journal of American Medical Association의 성형수술 분과에 실린 논문에서는 “필터링된 이미지가 현실과 환상 간의 경계를 허물고 자신의 실제 신체적 특징을 고쳐야 할 결함으로 인식해 이에 집착하게 만드는 정신 질환인 신체이형장애BDD, Body Dysmorphic Disorder를 유발할 수 있다”고 경고하기도 했다. 영국의 성형외과 의사인 티지온 에쇼Tijion Esho는 SNS로 인해 성형수술 환자들의 요구가 달라진 것에 주목하면서 ‘스냅챗 이형증Snapchat Dysmorphia’이라는 용어를 만들어냈다. 과거에는 환자들이 유명 연예인 사진을 들고 와서 그와 비슷하게 성형을 해달라고 했는데, 최근 카메라 앱 필터로 보정된 자기 사진을 들고 와서 이대로 고쳐줄 것을 요구하는 사람들이 늘었다는 것이다. 미국 얼굴성형·재건수술학회 회원을 대상으로 진행한 조사에 의하면, 환자의 수술 동기 중에서 “더 멋진 셀카를 찍기 위해서”라는 응답이 2016년에는 13%였는데 2017년에는 55%로 4배 이상 증가했다. 디지털 이미지의 페르소나가 현실의 실제 페르소나를 부정하고 전복시키는 움직임이 커지고 있는 상황이다.

향후 전망

변화무쌍한 멀티 페르소나 소비자를 위한 재빠른 대응이 필요

멀티 페르소나 현상은 앞으로도 다양한 영역에서 더욱 자연스러운 현상이 될 것이다. SNS는 다원화되고, 직업은 다양해지는 등 빠르게 변화하는 환경 속에서 스스로의 정체성을 더욱 유연하게 변화시켜 대응하지 않으면 더 이상 생존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취향의 시대를 맞이하여 소비자의 라이프스타일이 취미 위주로 재편되면서 성별·연령·직업 등 사회인구학적 변수를 통해 형성되는 정체성은 점점 더 의미를 잃을 것이다. 취향을 계발하는 과정을 통해 자신이 무엇을 좋아하고 어떠한 개성을 지니는지 더 잘 알게 되고 이를 미래의 직업을 선택하는 중요한 판단의 잣대로 활용하기도 한다. 정체성 의식이 점점 공허해지는 현대인에게 진정한 취향의 향유가 인생에 중요한 의미를 부여하는 새로운 계기가 되고 있는 것이다. 이에 따라 소비 시장에서도 개인의 취향을 고려하는 것이 시장 세분화를 위한 가장 중요한 기본적 토대가 되고, 상품과 서비스의 개선을 위해 우선적으로 고려해야 할 요소로 자리 잡을 전망이다.

Immediate Satisfaction: the ‘Last Fit Economy’ 라스트핏 이코노미 37

Goodness and Fairness 페어 플레이어 49

Here and Now: the ‘Streaming Life’ 스트리밍 라이프 59

Technology of Hyper-personalization 초개인화 기술 71

You’re with Us, ‘Fansumer’ 팬슈머 81

2020년 6월 17일, 농심켈로그의 시리얼 제품 ‘첵스 파맛’의 발매가 예고되자 팬들의 이목이 집중됐다. 이야기는 2004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농심켈로그는 자사의 시리얼인 ‘첵스’의 홍보를 위해 ‘첵스 초코나라 대통령 선거’ 이벤트를 열고 ‘기호 1번 초코맛 체키’와 ‘기호 2번 파맛 차카’ 중 더 많은 표를 얻은 제품을 출시하겠다고 밝혔다. 사실 이 이벤트는 농심켈로그의 의도가 담겨 있는 고객참여 마케팅이었다. 차카 캐릭터를 고약한 인상에 협박조의 말투를 구사하는 비호감으로 만든 데다가 어린이들이 싫어하는 채소인 파맛까지 더해 자연스럽게 체키에게 투표하게끔 유도했다. 투표 초반에는 당연히 체키가 앞섰지만 이 소식이 모 인터넷 커뮤니티 사이트에 알려지면서 전세가 갑자기 역전됐다. 소비자들에게 선택권을 주는 듯하지만 사실상 답이 정해져 있는 듯한 홍보에 심기가 불편해진 누리꾼들이 차카에게 표를 몰아주면서 차카의 당선이 유력해진 것이다. 투표대로라면 정말로 파맛 첵스를 출시해야 하는 상황에 처한 농심켈로그는 누리꾼들이 행사한 중복투표 4만2,000표를 모두 무효 처리하고, ARS와 현장 투표를 추가해 체키의 당선을 발표했다.

그런데 최근 이 ‘첵스 초코나라 대통령 선거’ 사건이 각종 온라인 커뮤니티에서 다시 언급되며 부정선거로 당선된 첵스 초코 대신 첵스 파맛을 출시하라는 요구가 빗발치기 시작했다. 이에 농심켈로그는 무려 16년 만에 첵스 파맛을 한정판으로 전격 선보였다. 이때 첵스 파맛의 광고 모델로 가수 태진아를 선정하고 그의 히트곡 ‘미안 미안해’를 개사하여 활용했을뿐더러, “너무 늦게 출시해서 미안합니다”라는 사과 문구를 카피로 넣고, 과거 부정선거 논란을 거론하는 누리꾼들의 댓글을 캡처해 홍보용 이미지에 넣는 등 자사의 ‘흑역사’를 유쾌하게 승화시켰다. 16년 전 과오를 씻고 고객의 요구를 수용하여 진정한 팬슈머를 되찾기 위한 시도였다. 소비자들의 반응은 폭발적이었다. “첵스 파맛은 우유보다 설렁탕에 말아서 먹는 것이 맛있다”는 시식 후기가 SNS에 쏟아지고, 첵스 파맛을 활용한 다양한 레시피도 공유됐다. 제품을 미처 구하지 못한 소비자들이 중고거래 플랫폼에서 소분 포장된 것을 구매할 정도로 인기가 높았다.

이는 브랜드 소비 과정에서 새로운 경험과 재미를 추구하는 MZ세대의 면모를 확인할 수 있는 사례다. 지속가능한 팬덤이 기업의 경쟁력이 된 시대, 이제 기업들이 소비자와의 소통을 강화하면서 브랜드 이미지 개선에 적극적으로 나서고 있다. 2020년, 기업의 파트너 역할을 자처하며 시장을 움직이는 주체로 급부상한 팬슈머들의 뜨거웠던 목소리에 기업은 어떻게 화답하고 있을까?

재출시를 불러온 바이미 신드롬

2020년 시장에는 고객의 요청에 의해 재출시된 제품들이 줄을 이었다. 2019년에 한정 출시되어 화제가 된 KFC의 닭껍질 튀김은 소비자들의 뜨거운 재출시 요구에 2020년 5월부터 정규 메뉴로 격상되어 다시 등장했다. 인도네시아 자카르타에 있는 일부 KFC 매장에서만 판매되던 닭껍질 튀김은 2019년 초, 한 네티즌이 한국에서도 판매해달라고 KFC에 호소한 결과 국내에서도 먹어볼 수 있게 됐다. 이 네티즌은 닭껍질 튀김을 먹으려고 자카르타 여행까지 계획했지만 인도네시아의 정국 불안으로 가지 못했다는 사연을 온라인 커뮤니티에 올리기도 했다. “얼마나 맛있길래 해외여행까지 계획하나?”라는 궁금증과 함께 사람들의 관심이 쏟아졌고, 문의가 쇄도하자 KFC가 정식 메뉴 출시로 응답한 것이다. 닭껍질 튀김에 대한 소비자들의 높은 관심은 편의점 등의 유사 상품 출시로 이어지기도 했다.

팔도비빔면 액상소스도 팬슈머들의 요청에 의해 탄생된 제품이다. 이전부터 비빔면에 들어가는 액상소스만 따로 판매해달라는 소비자가 많았지만, 소스만 구매하는 이들이 많지 않을 것이란 기업의 판단에 실제로 제품이 출시되지는 않았다. 그러던 중 팔도 측이 2017년 만우절 이벤트로 자사의 공식 블로그에 ‘New 팔도 만능 비빔장 출시’라는 글을 올렸는데, 소비자들이 이를 격렬히 반겼다. 해프닝으로 끝날 수도 있는 일이었으나 소비자들의 반응을 눈여겨본 팔도는 이를 정식 제품으로 만들어 출시했다. 이후 비빔장 소스는 다양한 맛으로 추가 출시될 만큼 꾸준한 인기를 누리고 있다.

향후 전망

팬슈머를 만들기 위해 필요한 세 가지, 열정·친밀감·신뢰

미국의 심리학자 로버트 스턴버그Robert Stern-berg는 ‘사랑의 삼각형 이론’을 주장하며, 성숙한 사랑이 완성되려면 열정·친밀감·신뢰가 균형을 이뤄야 한다고 강조했다.

연인 간의 사랑에 이 요소들을 대입해보면 이해가 쉽다. 사랑이 시작되기 위해서는 불꽃 튀는 열정이 전제되어야 하지만, 그 사랑을 더 발전시키려면 정성스러운 만남과 대화를 통해 친밀감을 형성해야 한다. 여기에 더해 서로에 대한 헌신과 책임감이 견고하게 자리 잡는다면 그 사랑은 완성된 모습에 더욱 가까워질 것이다. 기업과 고객의 관계도 마찬가지다. 브랜드를 뜨겁게 사랑하는 팬슈머를 만들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열정·친밀감·신뢰가 중요하다.

사랑의 삼각형 이론

소비자가 불꽃처럼 사랑할 수 있는 자사 브랜드의 매력이 무엇인지 더욱 진지하게 고민해야 한다. 브랜드의 가치는 더 이상 제품이나 서비스의 우수성에만 기대지 않는다. 브랜드의 철학과 스토리가 사회적 가치에 부합하는지가 중요해진 가운데, 소비자의 애정을 넘어 존경을 받을 수 있는 가치 창출이 필요하다. 이제 신비주의는 위험하다. 고객과 기업이 함께 브랜드 스토리를 만들어가며 자연스러운 공감을 이끌어낸다면 보다 성숙한 사랑의 삼각형을 완성해나갈 수 있을 것이다. 그중에서도 고객의 신뢰는 브랜드가 지켜야 할 최후의 보루다. 아무리 멋지고 매력적이며 친근한 브랜드라도 위선적이거나 거짓된 모습을 보여준다면 고객은 주저없이 절교를 선언할 것이다. 팬슈머의 사랑을 끝까지 책임지고 지켜주는 기업만이 장수하는 브랜드의 산실이 될 수 있음을 기억해야 한다.

모두가 뒤바뀐 일상에 적응하기 위해 고분분투하지만 불안과 공포감은 쉬이 해소되지 않고 있다.

Make or Break, Specialize or Die 특화생존 95

Iridescent OPAL: the New 5060 Generation 오팔세대 105

Convenience as a Premium 편리미엄 117

Elevate Yourself 업글인간 129

2. 2021년 소비트렌드 전망

Coming of ‘V-nomics’ 브이노믹스 142

브이노믹스

 

코로나19 바이러스의 전 세계적 유행이라는 미증유의 위기 속에 우리는 한 번도 경험해보지 못한 세상을 만나고 있다. 영화나 소설에서나 상상했던 그런 세상이 지금 우리 앞에 펼쳐지고 있는 것이다. 역사를 되짚어보면 팬데믹은 항상 미래를 앞당겼던 전력이 있다. 변화는 이미 서서히 진행되고 있었지만, 사회적 대변혁은 그 진행 속도를 가속화시킨다. 그렇다면 현재까지 코로나 바이러스가 초래한 경제와 소비의 변화는 무엇이며, 앞으로 어떻게 진행될 것인가? 본서의 첫 키워드인 브이노믹스V-nomics는 바이러스virus의 V에서 출발한 단어로 “바이러스가 바꿔놓은 그리고 바꾸게 될 경제”라는 의미다. 브이노믹스는 다음 네 가지 질문으로 시작한다. ① 경기의 반등, 즉 ‘V자 회복’은 가능할 것인가? ② 코로나로 가속화된 ‘언택트’ 트렌드는 어떻게 변화variation할 것인가? ③ 코로나 사태로 소비자들의 가치value는 어떻게 변화할 것인가? ④ 브이노믹스 시대를 헤쳐나가기 위해 우리에겐 어떤 비전vision이 필요한가?

미래를 예측하는 것은 늘 가능성과 불가능성 사이에 위치하지만, 위 질문에 대한 대답을 다음과 같이 준비하고자 한다. ① 향후 경기회복의 양상은 전반적으로 K자형 양극화를 보이겠지만 업종별로는 V, U, W, S, 역V 등 다양한 모습을 보일 것이다. ② ‘언택트’ 트렌드는 대면·비대면·혼합의 황금비율을 찾아갈 것인데 조직 관리에서는 ‘성과 위주의 KPI’, 교육에서는 ‘블렌디드·플립 러닝’, 유통에서는 ‘고객경험’ 극대화가 핵심 요소로 떠오를 것이다. ③ 소비자들의 가치는 안정적인 브랜드와 상생을 위해 노력하는 기업으로 옮겨가고 친환경과 본질에 대한 관심이 커지는 질적 변화를 보일 것이다. 마지막으로 심각해져가는 코로나 양극화에 대처하기 위해서 공동체 의식의 회복, 정부 역할의 균형 회복, 각 조직의 변화대응역량이 중요하다. 흑사병이 중세를 끝내고 르네상스를 이끈 결정적 계기가 됐듯, 이 세계적인 희생이 진정한 21세기의 르네상스로 이어지기 위해서는 분명한 비전과 용기 있는 트렌드 대응 능력이 절실하다.

믿어지지 않는 일들이 현실이 됐다. 우리의 일상이 이토록 짧은 시간에 달라진 적은 없었을 것이다. 코로나19는 전 세계의 정치·경제·사회·문화 등 모든 영역을 통째로 빨아들이는 거대한 블랙홀과도 같았다. 2020년 1월부터 본격적으로 퍼지기 시작한 이 바이러스는 이후 모든 나라로 확산되며 엄청난 수의 감염자와 사망자를 기록했다. 8월 12일을 기준으로 전 세계의 총 확진자 수는 2,050만 명을 돌파해 2009년, 세계적인 대유행으로 670만여 명을 감염시켰던 신종인플루엔자의 기록을 3배 이상 압도하고 있다. 잠정 치명률도 약 3.6%로, 신종플루의 치명률(약 0.3%)보다 약 12배에 달하는 위험한 수치다.

코로나19 바이러스는 2021년 소비 시장을 어떻게 바꿀까? 이 책이 집필되는 시점에도 코로나 사태는 급격하게 그 양상이 바뀌는 현재진행형이지만, 그럼에도 지금까지 변화의 양적·질적 변화를 다각적으로 분석해봄으로써 앞으로의 향방에 대해 전망하는 것은 여전히 필요한 일이다. 이러한 취지에서 『트렌드 코리아 2021』에서는 첫 트렌드 키워드로 브이노믹스V-nomics라는 용어를 제안한다. 바이러스virus의 V에서 출발한 단어로 “바이러스가 바꿔놓은 그리고 바꾸게 될 경제”라는 의미다.

재택근무의 향후 전망

코로나 사태를 계기로 재택근무·시차출근·선택근로·탄력근로 등 그동안 도입하기 어려웠던 유연한 근무제도가 시행되고 있다. 특히 출근하지 않고 집에서 근무하는 ‘재택근무’는 많은 조직에서 전면적으로 도입할 수밖에 없었던 새로운 근무 형태다. 이에 화상회의 플랫폼을 제공하는 ‘줌Zoom Video Communications’은 단연 코로나 시대의 신데렐라로 부상했다. 줌은 팬데믹 이전부터 화상회의 시스템 분야에서 하루 이용자 수가 1천만 명에 이르는 탄탄한 중소기업이었고 2019년에는 나스닥에 상장되기도 했으나 일반인들에게는 낯선 이름이었다. 그러던 것이 코로나19 발생 이후 하루 이용자 수가 순식간에 20배인 2억 명으로 늘어나면서화제의 기업으로 떠올랐다. 이렇듯 디지털로 무장한 새로운 서비스가 주축이 되면서 조직의 채용 방법도 바뀌었다. 삼성은 63년 만에 첫 온라인 공채 시험을 실시했으며, 주요 시중 은행도 채용 시기를 정기·수시 모집으로 이원화했다. 돌발 악재가 부른 고육지책이지만 오히려 비효율 거품을 걷어내는 기회가 됐다고 보는 시각이 다수다.

고통을 분담하는 브랜드와 기업들

소비자들은 재난 상황에 적극적으로 대처하며 위기를 함께 넘기 위해 노력하는 기업들에게 안정감과 호감을 갖는다. 코로나19 위기 속에서 직원들의 임금을 오히려 인상하거나, 셧다운 조치로 영업을 중단한 기간에도 급여를 유지하는 등 직원들의 복리에 힘쓴 브랜드나 상품을 선호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맥킨지는 대표적인 예로 룰루레몬을 꼽았는데, 요가복 등 스포츠웨어를 주력으로 하는 룰루레몬은 코로나19의 급격한 확산으로 2020년 3월 북미와 유럽 매장의 문을 일시적으로 닫게 되자, 200만 달러 규모의 펀드를 조성해 운영비와 생활비에 타격을 입은 매장 운영자들과 직원들을 긴급 지원하기로 했다. 이로써 ‘앰배서더ambassador’라고 불리는 룰루레몬 영업점 운영자와 직원들은 팬데믹 속에서도 최소한의 안정감을 되찾을 수 있게 되었다.

팬데믹 불안 속에서 CEO의 대응 능력이 더욱 중요해지고 있는 가운데, 페이스북의 마크 저커버그도 2020년 3월, 4만5,000명 전 직원에게 코로나 위로금 1,000달러를 지급한다고 발표했다. 위로금의 성격은 재택근무로 인해 구내식당을 비롯한 회사의 각종 복지 시설을 이용하지 못하는 것에 대한 보상이다. 이 밖에 재택근무의 성과 측정에 불안해하는 직원들에게 6개월 동안 모두 ‘초과 달성’ 실적을 주기로 해 직원들을 안심시키는 등 발 빠른 조처가 눈길을 끌었다. 고객 정보 유용과 가짜뉴스 등으로 몸살을 앓은 페이스북은 기업 이미지가 실추되고 주가도 하락하는 등 악재를 겪고 있지만, 코로나 사태에 자사 직원을 추스르기 위한 CEO의 신속한 대처가 전 세계 언론에 앞 다퉈 소개되면서 시장에 긍정의 메시지를 보냈다.

"적응하거나 죽거나"

홍익대 유현준 교수는 “흑사병이 중세 시대와 르네상스 시대의 분기점이 됐다. 만약 흑사병이 아니었다면 중세가 20세기까지 지속됐을 수도 있기에, 코로나19가 흑사병과 마찬가지로 새로운 시대를 만들 기회가 될 수 있다”고 진단한다.33이 세계적인 희생이 헛되지 않고 21세기의 진정한 르네상스의 계기가 되도록 하려면, 우리에게는 무엇이 필요한가? 세계경제포럼WEF 클라우스 슈밥 회장의 한 마디 말이 묵직하게 다가온다.

“적응하거나 죽거나(Die or adapt).”

Omni-layered Homes 레이어드 홈 174

레이어드 홈

 

너무나 당연하게 여겨지던 정형적이고 고정된 공간, 집이 변화의 진앙지가 되고 있다. 사실 ‘집과 동네’는 지난 10여 년간 꾸준히 영향력이 커지고 있는 트렌드였다. 그러다가 2020년 코로나 사태로 전 국민이 오랜 시간 집에 머무르면서 집에 대한 관심이 폭발적으로 늘었다. 그 결과 마치 여러 벌의 옷을 겹쳐 입어 멋을 부리는 ‘레이어드 룩layered look’ 패션이나, 이미지 프로그램 ‘포토샵’에서 이미지의 층層을 의미하는 ‘레이어layer’처럼, 집이 기존의 기본 기능 위에 새로운 층위의 기능을 덧대면서 무궁무진한 변화의 양상을 보여주고 있다. 이처럼 집의 기능이 다층적으로 형성된다는 의미에서 ‘레이어드 홈’이라는 트렌드를 제안한다.

최근의 집이 보여주는 층위는 크게 세 가지다. 첫째, 기본 레이어Basic Layer는 기존에도 수행해왔던 기능을 심화하는 층이다. 둘째, 응용 레이어Additional Layer는 그동안 집에서는 별로 하지 않던 일을 집에서 해결하는 층이다. 셋째, 확장 레이어Expanding Layer는 집의 기능이 집 안에서만 이뤄지지 않고 집 근처, 인근 동네로 확장되며 상호작용하는 현상을 지칭한다. 기본 레이어에서는 집의 기본적인 기능이 강화되면서 위생 가전·가구·인테리어 산업의 발전을 가져오고 호텔 아이템이나 로봇 등을 활용해 프리미엄화하고 있으며, 응용 레이어에서는 집에서 학습·근무·쇼핑·취미·관람·운동 등의 전에 없던 활동을 수행하면서 다기능화되는 집의 모습을 보여준다. 확장 레이어는 슬리퍼를 신고 다닐 수 있는 집 근처, ‘슬세권’으로 경제활동의 영역이 넓어지는 현상을 말한다.

코로나 사태는 공간의 미래를 앞당겼다. 환금성 높은 자산으로서 욕망의 대상이 되어버린 ‘하우스’의 의미가 삶을 영위하는 공간으로 재정의되는 ‘홈’으로의 변화가능성을 보여주고 있다. 레이어드 홈 트렌드는 2021년의 대한민국을 넘어 미래주택 공간의 패러다임이 이동하고 있음을 보여주는 신호다. 생각이 변하면 미래도 변한다. 단언컨대 미래 소비산업 변화의 요람은 집이 될 것이다.

최근 방송가의 두드러진 트렌드 중 하나는 ‘집방’, 즉 집과 관련한 프로그램이 눈에 띄게 늘었다는 점이다. 메인 타깃인 2049층의 시청률이 31주 연속 동시간대 1위를 차지할 만큼 인기가 높은 MBC의 〈구해줘! 홈즈〉를 필두로, 주거 문화에 대한 다양한 아이디어를 제시하는 〈집사의 선택〉(SBS CNBC), 건축가들이 독특한 매력을 지닌 전국의 집들을 소개하는 〈건축탐구–집〉(EBS) 등 각 채널마다 여러 프로그램이 방영되고 있다. 특히 tvN의 〈바퀴 달린 집〉은 집에 머물면서도 자연 속으로 떠나고 싶은 현대인의 이율배반적인 욕구를 진짜 바퀴 달린 집으로 풀어내 시청자들의 호응을 받았다. 이 밖에도 연예인 출연자의 집 정리를 대신해주는 tvN의 〈신박한 정리〉도 집 안의 작은 공간까지 새롭게 활용하며, 집이 떠나고 싶은 공간에서 머물고 싶은 공간으로 변화하는 과정을 보여주고 있다.

이러한 ‘집방’의 성공은 최근 집에 대한 사람들의 관심이 얼마나 높아졌는가를 잘 보여준다.

인생의 주기에 따라 우리의 라이프스타일이 변하는 동안에도 집은 웬만해선 고정되어 있었다. 결혼을 하고 아이가 커감에 따라 달라지는 상황에 맞추어 집을 옮겨 다녀야 하는 번거로움을 당연시했다. 그런데 전 세계를 공황으로 몰아넣은 팬데믹을 겪으며 사람들이 가장 안전한 공간인 집에 은신하면서, 오랫동안 변치 않았던 집의 기능이 좀 더 유연하고 다기능적으로 바뀌고 있다.

너무나 당연하게 여겨지던 정형적이고 고정된 공간, 집이 코로나시대 변화의 진앙지가 되고 있다. 마치 여러 벌의 옷을 겹쳐 입어 멋을 부리는 ‘레이어드 룩layered look’ 패션이나, 이미지 프로그램 ‘포토샵’에서 이미지의 층層을 의미하는 ‘레이어layer’처럼, 집이 기존의 기본 기능 위에 새로운 층위의 기능을 덧대면서 무궁무진한 변화의 양상을 보여주는 것이다.

기본 레이어: 집의 기본 기능, 심화되다

레이어드 홈의 가장 기초적인 레이어는 집 본래의 안식처로서의 기능을 강조한 기본 레이어다. 코로나19 확산으로 반강제적으로 집에 머무는 시간이 늘어나자 안식처로서의 기능이 확장되면서 더욱 강화되고 있다. 모든 것이 빠르게 돌아가는 현대사회에서 소외되거나 정보와 유행에 뒤처져 고립되는 것을 두려워하는 것을 FOMOFear of Missing Out 증후군이라고 한다. 그런데 단절의 기간이 길어지면서 이 고독을 오히려 즐기는 JOMOJoy of Missing Out 증후군이 등장했다. 사회적 거리두기로 발이 묶여 외부 활동 자제를 호소하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코로나19가 원치 않는 만남을 피할 수 있는 좋은 구실이 되어주자 집돌이·집순이들이 JOMO족을 자처하고 나선 것이다. 이들은 불필요한 접촉을 선택적으로 최소화하고, 혼자만의 온전한 휴식을 즐기며 고독마저도 긍정적인 일상으로 받아들인다.

집의 기본 기능이 강화되면서 수혜를 입은 산업은 위생 가전·가구· 인테리어 영역이다. 먼저 건강과 면역에 대한 관심이 커지면서 위생가전을 구비하는 움직임이 두드러졌다. 2020년 1월 말부터 코로나 사태가 심각해지기 시작하자 2월 들어 LG전자의 ‘트롬 스타일러’는 전년 대비 30%, SK매직 공기청정기는 1~2월 매출이 전년 대비 166% 늘었다. 이 밖에 평소 잘 쓰지 않던 소독 가전과 살균램프 초음파 가전을 찾는 사람들도 크게 증가했다.

이제 집에서 할 수 없는 건 없다

팬데믹은 집에서 노는 방식도 바꿔놓았다. 유튜브는 집에서 놀기 콘텐츠들로 가득 채워졌고 넷플릭스 등 OTT 서비스 가입자도 크게 늘었다. 사람들은 어쩔 수 없는 고립을 놀이로 승화시켰다. 가장 눈길을 끌었던 것은 감금이라는 불편함 자체를 놀이화하는 ‘페인 플레이pain play’ 현상이다. 자가격리 중의 지겨운 시간을 보내기 위한 갖가지 시간 죽이기 놀이 방법들이 유튜브에 올라왔고, 자가격리의 일상 그 자체를 브이로그로 전하는 기발함을 보였다. 강제감금을 놀이로 승화시키는 MZ세대의 놀라운 적응력은 1천 번 저어 만드는 달고나 커피와 수플레, 400번 저어 만드는 제티떡, 역시 1천 번 이상 꼬아 만든다는 꿀타래와 같은 ‘자진 노동’ 레시피를 개발해냈다.

그동안 모바일 게임에 밀렸던 콘솔 게임도 코로나 사태 이후 다시 빛을 발했다. 콘솔 게임을 즐기려면 닌텐도나 플레이스테이션처럼 TV에 연결해 이용하는 덩치 큰 비디오 게임기가 있어야 한다. 그동안 게이머들이 스마트폰으로 어디서든 할 수 있는 모바일 게임 쪽으로 대거 이동하면서 콘솔은 대표적인 사양기기로 취급됐었다. 그런데 이제 집콕 생활의 상시화로 가족과 함께 커다란 화면으로 즐길 수 있는 콘솔 게임의 장점이 부각되고 있는 것이다. 그동안 PC 온라인과 모바일 게임에 주력했던 엔씨소프트·넷마블·넥슨 같은 국내 게임사도 콘솔 게임에 관심을 보이고 있다. 닌텐도의 ‘위핏’을 잇는 피트니스 게임 ‘링피트 어드벤처’는 전술한 홈트의 인기에 어드벤처 장르의 게임까지 결합해 품귀 현상을 빚을 만큼 인기를 모았다.

전망 및 시사점

집은 미래 소비산업의 요람

프랑스의 철학자 가스통 바슐라르Gaston Bachelard는 “집은 세계 안에 있는 우리의 일부이며 우리가 경험하는 최초의 세계”라고 말했다. 진부한 이야기지만 집은 삶의 터전이자 인간을 존재하게 하는 기본 바탕이다. 또한 개인적인 공간에 국한되지 않고 개개인의 집이 모여 사회와 시대의 주거 문화를 이룬다. 레이어드 홈 트렌드는 2021년의 대한민국을 넘어 미래주택 공간의 패러다임이 이동하고 있음을 보여주는 신호다. 이렇듯 변화하는 공간에서 거주하는 사람들의 사고방식 역시 점차 변할 것이다. 생각이 변하면 미래도 변한다. 미래 소비산업 변화의 요람은 단언컨대 집이 될 것이다.

We Are the Money-friendly Generation 자본주의 키즈 198

자본주의 키즈

 

돈과 소비에 대한 편견이 없는 새로운 소비자들이 등장하고 있다. 어릴 때부터 광고·시장·금융 등 자본주의적 요소에 친숙하고 자본주의 생리를 몸으로 체득한 세대가 소비의 주체로 성장한 것이다. 어릴 적 월드컵 경기를 보며 축구 선수의 꿈을 키운 차세대 선수들을 ‘월드컵 키즈’라고 일컫듯이 이 새로운 소비자들을 ‘자본주의 키즈’라고 부를 수 있다. 그렇다고 자본주의 키즈가 젊은 세대만을 지칭하는 것은 아니다. IMF 경제 위기 이후 차츰 자본주의 논리에 익숙해진 기성세대 또한 경제와 소비에 대한 사고방식이 전과 같지 않다. 결국 자본주의적 어법을 제1언어로 구사하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자본주의 키즈에 해당한다.

시장의 이윤 논리를 정확히 이해하는 자본주의 키즈들은 광고에 관대하며 이를 ‘이용’할 줄 안다. 이 때문에 PPL 혹은 ‘앞광고’는 그냥 넘어가지만 협찬을 숨기는 ‘뒷광고’에는 격렬하게 분노한다. 소비자가 광고를 수용할지 여부를 선택할 수 있는 주체성을 훼손했기 때문이다. 또한 자신의 욕망에 솔직한 이들은 소비를 통해 행복을 구하는 데 주저함이 없지만 구매 과정에 많은 공을 들이며 돈을 허투루 쓰지 않는다. 이른바 ‘플렉스flex’라고 불리는 과시형 소비를 할 때도 렌트할 것과 구매할 것을 구분하고, 구매를 하더라도 여러 경로를 찾아 최저가로 구매하는 등 나름의 합리적인 소비를 한다. 마지막으로 투자에 매우 적극적이다. 카페에 앉아서 영화 이야기를 하던 커플이 부동산 투자 강의를 함께 듣고 ‘임장(부동산 현장 답사) 데이트’를 즐기기도 하며, 대학생·군인 등도 투자 대열에 합류한다. “돈 밝히면 못쓴다”는 말은 옛말이 됐고, 이제 “돈에 밝지 않으면 정말 ‘못 쓰게’ 된다”는 말이 생활신조가 되고 있다.

경제와 시장에 대한 정보가 넘쳐나는 환경 속에서 스스로 ‘인적 자본’이 되어 경쟁하고 경제적 불안에 시달리지만, 그렇다고 이들이 무작정 물질주의적이거나 충동적이지만은 않다. “행복은 충동적으로, 걱정은 계획적으로” 할 줄 아는 자본주의 키즈들은 새로운 경제관념으로 무장한 채 브이노믹스와 그 이후를 이끌게 될 것이다.

흔히 어린 시절 그 시대를 풍미한 시대적 아이콘의 영향을 받아 성장한 후세대를 ‘○○ 키즈’라고 부른다. 한국의 외환 위기 직후 세계 무대에서 맨발 투혼을 발휘하며 우승을 차지한 박세리 선수의 영향을 받아 골프에 입문한 골퍼들을 ‘박세리 키즈’라 부르고, 2002년 한일 월드컵의 열기 속에 축구에 대한 꿈을 키운 선수들을 ‘월드컵 키즈’라 부르는 식이다. 『트렌드 코리아 2021』에서는 자본주의 속에서 입고 먹고 배우고 놀며 자랐기에 자본주의의 생리를 누구보다 잘 알고, 이에 최적화된 경제활동을 영위하는 요즘 소비자들을 ‘자본주의 키즈’라 명명하고자 한다.

자본주의란 단어는 자칫 무겁게 느껴질 수 있지만 요즘 한국 사회에서 자본주의는 일종의 ‘시장 논리’를 광범위하게 일컫는 단어이자 세태를 재치 있게 꼬집는 표현으로 사용된다. 영리 추구의 의도가 섞인 가식적인 웃음을 ‘자본주의 미소’라고 부르거나, 체질상 커피를 마시지 못하는 아이돌 가수가 커피 광고를 하는 것을 보고 ‘자본주의에 굴복한 ○○○’이라며 농담하는 것이 그 예다. 이러한 맥락에서 ‘자본주의 키즈’란 표현은 이전 세대와는 다른 현실감각과 경제관념을 지닌 소비자들을 너무 무겁지도, 너무 가볍지도 않게 다루고자 하는 이름이다.

자본주의 키즈가 꼭 젊은 세대만을 지칭하는 것은 아니다. IMF 경제 위기 이후 차츰 자본주의 논리에 익숙해진 기성세대 또한 경제와 소비에 대한 사고방식이 젊은 세대와 크게 차이 나지 않는다. 즉, 자본주의적 어법을 제1언어로 구사하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자본주의 키즈라고 부를 수 있다. 엄마 뱃속에서부터 시작해 태어나자마자 브랜드의 고객이었으며, 이윤 추구를 당연한 인간의 본능이라고 여기는 이들은 이전 소비자와는 완연히 다른 사고방식과 생활상을 보인다.

재무관리: "돈 Worry, Be Happy!"

최근 몇 년 사이 20~30대 모임에서는 성별과 직종을 불문하고 투자 관련 주제가 가장 뜨거운 화제로 부상 중이다. 예전에는 영화나 방송 프로그램 이야기를 나누던 젊은이들이 이제는 자리에 앉자마자 투자 이야기부터 꺼낸다. 부동산 투자 강의를 함께 듣고 ‘임장(부동산 현장 답사) 데이트’를 즐기는 직장인 커플의 모습도 심심찮게 눈에 띈다. 대학생 사이에서는 투자연구회·부동산학회·국제금융재무학회·가치투자동아리·프롭테크 등 가지각색의 투자 관련 동아리가 대세이고, 온라인 재테크 커뮤니티에는 친구들이 게임을 할 동안 게임 회사의 주식을 산다는 중학생 투자자의 글이 올라온다. 군부대 내에서 스마트폰 사용이 가능해지면서 군인 신분의 개인 투자자를 의미하는 ‘병정개미’라는 용어까지 등장했다. 젊은이들이 큰돈은 아니더라도 그 돈을 묵혀두기보다 빠르게 회전시키며 불리는 재테크로 일찌감치 눈을 돌리고 있는 것이다. 풍요롭게 자란 세대답게 돈이 없는 불행한 미래를 방지하기 위한 ‘돈 걱정’은 자본주의 키즈의 필수 덕목이다.

자본주의 키즈의 셀프 재무관리는 돈 모으기에서 시작된다. 주머니 사정이 넉넉지 않은 이들의 재테크 입문을 돕는 ‘잔돈금융’의 목적은 돈 모으는 습관을 기르는 것이다. 카카오뱅크의 ‘저금통’은 계좌에 남은 1,000원 미만의 잔돈이 자동으로 저축되는 서비스로, 저금통에 들어간 금액은 숫자 대신 ‘짜장면 한 그릇’, ‘서울-부산 KTX 승차권’과 같이 직관적인 이미지로 보여주어 궁금증을 유발하면서도 소소한 저축의 위대함을 체감할 수 있게 했다. 출시 13일 만에 이용 계좌가 100만 개를 넘을 정도로 인기가 높다. KB국민은행의 ‘KB스마트 스타폰 적금’의 경우 ‘하루에 커피 한 잔만 덜 마셨어도’라며 후회하는 습관성 지출의 관리를 도와준다. 예를 들어 커피가 마시고 싶을 때 커피를 사는 대신 스마트폰에서 커피 아이콘을 누르면 아낀 커피 비용이 자동으로 계좌에 저축된다. 신한카드는 신한금융투자와 연계하여 카드 결제 시 발생하는 자투리 금액으로 아마존·애플·나이키·스타벅스 등 인기 해외주식을 0.01주 단위로 매매할 수 있는 해외주식 소수점 매매 서비스를 제공한다. 소액으로도 글로벌 대기업의 (초소형) 주주가 되는 기쁨을 누릴 수 있는 것이다. 잔돈금융의 핵심은 투자에 대한 갈증을 느끼는 젊은 세대가 적은 금액으로도 즐거운 금융생활을 누릴 수 있도록 풀어준 재미 요소에 있다.

전망 및 시사점

균형 잡힌 시각으로 자신의 삶을 설계할 줄 아는 소비자들

요즘 중고등학생들의 SNS에 나타나는 새로운 현상이 있다. 바로 ‘#협찬환영’ 해시태그다. 팔로워가 많은 인플루언서도 아닌 평범한 학생들이 광고를 해주겠다고 자처한다. 기업들이 홍보를 위해 일반인 체험 후기를 활용하거나, 적은 비용으로 입소문을 내줄 수 있는 마이크로 인플루언서를 찾는다는 것을 잘 알고 있는 청소년들이 용돈벌이를 겸해 스스로 광고를 모집하는 것이다.19 광고 시장의 생태계를 훤히 알고 있는 자본주의 키즈다운 모습이다. 그런데 이러한 현상을 보다 보면 한편으로 하버드대 마이클 샌델Michael Sandel 교수의 저서 『돈으로 살 수 없는 것들』에 실린 몇 가지 사례가 오버랩된다. 외국의 한 항공사의 경우 광고비 777달러를 지급하는 대가로 뒤통수의 머리를 밀고 일회용 문신으로 광고 문구를 넣을 사람을 모집했다. 식당 로고 모양 문신을 몸에 새기는 사람에게 점심식사 평생 무료권을 제공하는 사례도 있었다. 돈으로 환산할 수 있다면 자신의 신체까지 광고판으로 만들 수 있는 것이다. 자본주의 키즈의 모습에서 이러한 사례를 떠올리는 것은 과도한 상상일까?

시장의 논리는 “돈 내겠다는데 뭐가 문제야?”라며 무엇이든 손쉽게 거래의 대상으로 만든다. 하지만 샌델 교수는 그의 책에서 이러한 시장주의의 무서움을 경고한 바 있다. 예를 들어 우리가 ‘친절함’에 가격을 매기기 시작하면 점원의 미소는 소비자의 마음을 따듯하게 만드는 상냥함이 아니라 돈을 낸 만큼 마땅히 누려야 하는 서비스가 된다. 점원의 입장에서도 금전적 대가 없이는 제공할 필요 없는 업무로 여기게 될 것이며, 사람 사이에 주고받는 ‘호의’라는 가치는 점차 뒷전이 될 것이다. 그렇다면 시장의 논리에 충실한 자본주의 키즈가 점차 많아지는 현상은 단지 자본주의 사회의 자연스러운 모습이 아니라, 우리 사회에서 ‘돈으로 살 수 없는’ 어떠한 가치들이 밀려나고 있다는 신호는 아닌지 짚어볼 필요가 있다.

Best We Pivot 거침없이 피보팅 222

거침없이 피보팅

 

피보팅pivoting이란 원래 ‘축을 옮긴다’는 뜻의 스포츠 용어인데, 코로나19 이후에는 사업 전환을 일컫는 중요한 경제용어가 됐다. 바이러스 확산이나 트렌드 변화로 인해 소비 시장이 급격히 바뀔 때, 기민한 비즈니스 모델의 변환은 조직의 생사를 좌우하는 중요한 전략이다. 하지만 이제 피보팅은 단지 위기 상황에서의 방향 수정만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조직운영 전반의 중요한 트렌드로 확장하고 있다. 제품·전략·마케팅 등 경영의 모든 국면에서 다양한 가설을 세우고 끊임없이 테스트하면서, 그 방향성을 상시적으로 수정해나가는 일련의 과정을 의미하게 된 것이다.

피보팅은 새로운 아이템과 기술로 사업을 시작하는 스타트업에게 필수적인 덕목이지만, 극도로 VUCAVolatility, Uncertainty, Complexity, Ambiguity해지는 환경에 직면하고 있는 대기업에게도 피할 수 없는 과제가 됐다. 어떤 자원을 중심으로 사업 전환을 꾀하는지에 따라 피보팅 전략은 ① 기술, 운영 노하우 등을 중심으로 사업을 전환하는 ‘핵심역량 피보팅’, ② 시설 설비·공간·건물 등을 중심으로 사업 전환을 꾀하는 ‘하드웨어 피보팅’, ③ 그동안의 사업을 통해 이미 잘 알고 있는 소비자 집단을 중심으로 사업을 전환하는 ‘타깃 피보팅’, ④ 새로운 품목을 기획하고 판매 경로를 변경해 사업 전환의 기회를 모색하는 ‘세일즈 피보팅’, 이렇게 네 가지 유형으로 나눌 수 있다.

위기는 부실한 기업을 솎아내는 자본주의의 정리 메커니즘이다. 기존 시장을 파괴하고 새로운 혁신을 창조하는 기업은 ‘혁신 기술’을 보유한 기업이 아니라 ‘소비자의 변화하는 행동 양식’에 신속하게 대응하는 기업이라는 점을 기억하자. 코로나19 위기와 디지털 대변혁을 넘어 새로운 시대로의 도약을 앞둔 지금, ‘거침없이 피보팅’하는 기업만이 살아남는다. 끊임없이 변하는 시장을 상대하기 위해 주저 없이 피보팅하라. 누가 이 위기의 순간에 승자의 자리를 차지할 것인가?

On This Rollercoaster Life 롤코라이프 252

롤코라이프

 

1995년 이후에 출생한 10대 후반에서 20대 중반까지의 세대인 Z세대는 이전 세대와는 확연히 다른 라이프스타일로 기성세대와 기업들을 놀라게 하곤 한다. 갑자기 뜬 챌린지에 너도나도 몰려들고, 특이한 것에 반응하며 색다름을 즐기는 이들은 얼마 지나지 않아 흥미를 잃고 다른 재미로 갈아탄다. 뜨겁게 달아올랐던 유행도 금세 식어버린다.

이런 Z세대의 라이프스타일은 롤러코스터를 타는 것과 비슷하다. 반짝하고 지나가는 짧은 유행에 우르르 몰려가 참여하고, 그 안에서 재미를 찾아 즐기다가 얼마 지나지 않아 다음 놀거리로 넘어가는 모습이 놀이기구를 요리조리 갈아타는 모습과 무척 닮았기 때문이다. 『트렌드 코리아 2021』에서는 이처럼 롤러코스터를 타듯 자신의 삶을 즐기는 Z세대의 라이프스타일을 ‘롤러코스터 라이프’, 줄여서 ‘롤코라이프’라 명명하고, 이러한 방식의 삶을 사는 사람들을 가리켜 ‘롤코족’이라고 부르고자 한다. 놀이기구 앞에 긴 줄이 있으면 더 타고 싶듯 이 젊은 소비자들은 유행하는 이벤트나 챌린지에 자발적으로 합류하고, 롤러코스터의 ‘예측할 수 없는 속도감’을 즐기듯 상식적인 예측의 범위를 넘어서는 짧은 변주와 이색적인 협주(컬래버레이션)를 찾으며, 하나의 유행이 끝나면 뒤돌아보지 않고 하차한 후 다음 유행으로 서둘러 갈아탄다.

롤코라이프의 등장은 참여를 중시하고 일상에서의 재미를 찾아다니는 Z세대의 정체성과 흐름을 같이한다. 디지털 네이티브인 이들은 ‘디지털 역마살’이라도 든 것처럼 스마트폰을 손에 들고 더 자극적이고 새로운 콘텐츠를 이리저리 찾아다닌다. 롤코라이프는 이제 소수 젊은이들의 변덕이 아니라 진지하게 대응해야 할 시장의 일반적 변화가 되고 있다. 이에 따라 기업은 고객의 변화에 맞춰나갈 수 있는 ‘빠른 생애사 전략’을 바탕으로, 오랜 기간 공들여 준비한 100% 완벽한 마케팅보다는 미완성일지라도 끊임없이 치고 빠지는 ‘숏케팅’이 필요해졌다.

Your Daily Sporty Life #오하운, 오늘하루운동 278

#오하운,

오늘하루운동

 

운동 붐이 일고 있다. 등산로에는 형형색색의 레깅스를 차려입은 젊은이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고, 소수의 전유물로 여겨졌던 골프·서핑 등의 저변이 넓어지고 있다. 러닝은 트레일 러닝·클린 세션 등으로 변주되고, 요가는 플로팅 요가·명상 요가·선셋 요가 등으로 분화된다. 중요한 사실은 이러한 트렌드가 단순히 활동 자체로 끝나지 않고, 패션·인증샷·챌린지 등으로 이어져 사회 전반에 선한 영향력을 미치고 개인의 성장까지 이룬다는 점이다. 나아가 크루나 커뮤니티를 통해 여러 사람이 함께 운동하면서 관계를 확장해나가는 경향도 강해지고 있다.

운동 열풍은 단지 코로나19의 영향으로 건강 증진과 면역력 강화에 관심이 커진 결과만은 아니다. 자기 관리에 투철한 MZ(밀레니얼+Z세대)의 세대적 특성, 정체의 시대에 운동으로 성취감을 찾으려는 경향, 관련 기기 및 플랫폼 시장의 성장 등 복합적인 원인이 일으킨 현상이다. 운동의 일상화는 소비자가 시간을 소비하는 패러다임의 변화를 예고한다. 무엇보다 운동이 일상의 영역으로 확장되면서 브랜드는 소비자의 여가를 지원하는 내비게이터이자 라이프스타일 전반을 설계하는 ‘라이프 액티비티 디자이너’로서의 역할을 요구받게 될 것이다. 운동의 일상화는 한국인의 삶의 기준이 성취와 경쟁에서 즐겁고 건강한 가치를 찾는 일로 이동하고 있음을 시사한다.

Heading to the Resell Market N차 신상 304

N차 신상

 

중고시장의 성장세가 심상치 않다. 요즘 중고마켓은 ‘아나바다 운동’으로 대표되는 이전의 중고거래와는 질적으로 다르다. 단순히 ‘남이 쓰던 상품’이 아니라, 몇 번째 받아쓰더라도 새것에 버금가는 가치를 가지고 있는 중고품은 이제 ‘신상품’과 다름없어졌다. 이러한 현상을 ‘N차 신상’이라 지칭하고자 한다. ‘여러 차례(N차)’ 거래되더라도 ‘신상(품)’과 다름없이 받아들여지는 트렌드를 표현한 것이다.

N차 신상은 새로운 재테크 수단으로도 주목받고 있다. 안 쓰는 물건을 팔아 현금화하거나 재능을 거래해서 용돈을 버는 식인데, 특히 명품이나 한정판 운동화에 프리미엄을 붙여 파는 ‘리셀’은 MZ세대의 새로운 투자 방법으로 떠올랐다. 나아가 N차 신상의 거래 플랫폼은 소비자의 놀이터다. 마케팅놀이·댓글놀이는 물론이고 보물찾기의 매력에 빠진 소비자들이 N차 신상의 성장을 주도하고 있다. 중고마켓은 사람과 사람을 잇는 공동체로도 기능한다. 지역을 기반으로 뭉치고 취미로 엮이면서 중고시장이 생활 플랫폼으로 진화하는 중이다. 이렇게 N차 신상의 판이 커지게 된 원인으로는 구매할 때 처분까지 생각하는 필환경 시대의 도래, 공유에 너그럽고 싫증을 빨리 내는 MZ세대의 등장, 코로나19로 인한 짠테크와 집콕소비 증가, 쉽고 안전한 거래 플랫폼의 발달 등을 들 수 있다.

N차 신상 시장이 정착되려면 중고품 시장을 투명하게 관리하며 신뢰성을 높일 수 있도록 서비스와 제도가 보완돼야 할 것이다. 앞으로는 중고시장에 인공지능AI과 빅데이터 기술을 접목하여 서비스 차별화를 시도하는 사례가 많아지는 동시에, 단지 중고거래 플랫폼의 기능을 넘어 커뮤니티로서의 역할이 강화될 것으로 보인다. 이러한 상황에서 기업들에게는 중고마켓에 열광하는 소비자의 감성을 끌어안는, 보다 유연한 시도가 필요하다. N차 신상은 이제 더 이상 낡고 오래된 2등 물건을 의미하지 않는다. 새 제품보다 N차 신상이 더 매력적이라고 말하는 소비자들, 이제 시장이 소비자에게 답해야 할 차례다.

MZ세대(밀레니얼+Z세대)와 기성세대를 구별하는 특성으로는 여러 가지가 있지만, 소비와 관련해서 가장 두드러지는 차이는 바로 ‘중고거래’에 대한 태도다. 풍요롭지 못한 시대를 거친 기성세대에게 ‘중고’란 남이 쓰던 것을 물려서 쓰는, 부정적인 이미지가 컸다. 중고는 새 제품을 구매하지 못했을 때 어쩔 수 없이 선택해야 하는 차선책이자 가난의 상징으로 여겨지기도 했다. 하지만 MZ세대에게 중고시장은 합리적인 가격으로 가치 있는 소비를 하고, 투자의 수단이 되고, 취향을 거래하며, 보물찾기를 하는 놀이터이자, 사람과 사람을 잇는 공간이다. 이제 ‘중고거래를 얼마나 잘 활용하느냐’가 ‘힙hip함’의 새로운 기준이 되고 있다.

업계에서 추산하는 국내 중고거래 시장 규모는 무려 20조 원에 달한다. 최근의 중고시장은 완성품을 판매하는 1차 시장보다 더 핫하다.

소비자의 새로운 패러다임, 'N차 신상'이 떳다

글로벌 톱스타인 BTS가 택배비까지 챙겨 중고거래를 한다는 사실에 세간의 이목이 집중됐다. BTS뿐 아니라, 연예인이 개인적으로 중고거래를 하는 경우가 종종 화제가 되고 있다. 중식의 대가 이연복 셰프는 본인이 쓰던 조리 기구를 중고로 내놨고, 걸그룹 걸스데이의 멤버인 소진은 tvN 예능 프로그램 〈온앤오프〉에서 당근마켓을 통해 직거래하는 모습을 보여주기도 했다.

N차 신상의 등장은 단지 중고시장의 양적 팽창만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연예인들도 스스럼없이 나설 만큼 중고거래에 대한 선입견이 바뀌고 있다. 1997년 외환 위기를 극복하기 위해 온 국민이 동참했던 ‘아나바다 운동’ 같은 절약 목적의 중고거래와는 질적으로 다르다. N차 신상은 크게 두 가지 측면에서 소비 패러다임을 바꾸고 있다.

첫째, 신상품의 신화가 깨지고 있다. 이제 중고품은 신상품을 살 만한 여력이 안 되어 어쩔 수 없이 선택하는 차선책이 아니다. 남이 사용한 흔적이 있는 께름칙한 물건이 아니라 사용성이 충분히 남아 있는 쓸 만한 물건이며, 합리적인 가격의 가성비 높은 제품이다. 특히 최근 중고마켓의 성장을 주도하고 있는 MZ세대는 어릴 때부터 많은 브랜드와 상품에 노출된 ‘자본주의 키즈’다. 시장이 성숙되면서 제품들 간의 차별화가 크지 않은 상황에서 이들은 새 제품이 주는 효용을 크게 느끼지 못한다. 새로운 것을 사도 결국 중고가 된다는 것을 잘 알고 있는 자본주의 키즈는 굳이 비싸게 값을 치러야 하는 신상에 집착하지 않는다.

둘째, 중고마켓의 급성장은 소비 기준이 ‘소유’에서 ‘사용’으로 이동하고 있음을 시사한다. 중고마켓 이용자들은 10만 원짜리 옷을 하나 사서 10번 입고 옷장에 보관하느니, 30만 원짜리 옷을 5번 입고 20만 원에 되파는 편이 더 낫다고 말한다. 10만 원짜리 옷을 소유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30만 원짜리 옷을 “입어봤다”는 경험을 얻기 위해 소비를 한다는 뜻이다. MZ세대는 빠르게 변화하는 트렌드에 적응하고 자신의 정체성과 가치를 끊임없이 찾아내기 위해 새로운 자극에 노출되는 것을 즐긴다(전망편, ‘롤코라이프’, ‘레이블링 게임’ 키워드 참조). 이들은 새 제품을 많이 소유하는 것보다 힙하고 희귀한 아이템을 발굴해 사용하는 경험 자체를 더 중요시한다. 경험이 끝나면 나에게 필요 없는 물건은 집에 쌓아두지 않고 다른 사람에게 팔거나 무료로 나누기도 한다. 다시 말해서 중고품이 사용 후 버려지는 것이 아니라 소비자의 구매 및 사용 목록에 다시 등판해 새 상품과 경쟁하며 어깨를 나란히 할 수 있게 됐다. 즉, N차 신상의 성장은 처분에서 다시 구매로 이어지는 순환형 소비 문화로의 전환이다.

본래 중고시장은 MZ세대가 주도했지만, 최근에는 다양한 연령대로 확산되는 추세다. 〈조선일보〉가 20~60대 남녀 1,535명을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진행한 결과, 중고거래를 가장 활발히 즐기는 연령대는 30대(65.4%)였고, 40대(60.8%)가 그 뒤를 이었다. 코로나19로 모바일 사용에 차츰 익숙해진 50~60대 소비자들도 중고시장의 저변을 확대하는 데 한몫하는 중이다. 이제 자녀들이 중고 앱을 사용하는 모습을 보고 집에서 안 쓰는 물건을 팔아 용돈벌이를 한다는 중·장년층의 후기를 흔하게 볼 수 있다.

중고거래 플랫폼도 다양하게 성장하고 있다. 가장 주목을 받는 중고거래 앱은 앞서 소개한 ‘당근마켓’이다. 당근마켓은 2015년 ‘판교장터’로 시작해 같은 해 10월 ‘당근마켓’으로 이름을 바꾸고 2018년 1월부터 전국 단위의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다. 당근마켓은 ‘당신 근처의 마켓’의 준말로, 이용자의 거주 지역을 기준으로 반경 6km 이내에서만 거래가 가능하다. 지역 기반이라는 신뢰성 덕분에 최근 1년 새 이용자가 3배가량 늘었다. 이용자 1인당 월평균 24회, 하루 20분씩 사용했고, 당근마켓 앱의 총 다운로드 횟수가 2천만 회를 넘는 등 폭발적인 성장세를 보이는 중이다. 그 인기를 증명하듯 최근에는 ‘당근하다’라는 신조어까지 등장해 ‘당근마켓에 중고품을 내놓는다’라는 의미로 쓰이고 있다. 당근마켓에서 구매했다가 다시 재판매하는, 일명 ‘재당근’ 행위가 늘면서 몇 번째 재판매된 상품이냐는 의미로 ‘몇 당근’한 물건인지도 자연스럽게 물어볼 정도가 됐다.

늦게 배운 처분놀이에 날 새는 줄 모른다, N차 신상 놀이터

중고거래가 하나의 놀이가 되며 사용자들이 뜻밖의 재미와 감동까지 만들어가고 있다. 판매자는 마케터이자 세일즈맨이 되고, 구매자는 흥정을 가장한 일명 ‘티키타카(짧은 대화 주고받기)’를 즐긴다. 물건을 잘 팔기 위해 재치 있는 홍보 문구를 만드는 것도 즐거운 고민이다. 사용하다 남은 줄을 판매할 때는 “동아줄 잡고 높이 올라가세요!”라는 멘트를 붙이고, 1972년도에 발행된 희귀 주화를 팔면서 1970년대생이 공감할 법한 이야기로 관심을 유도한다. 제품을 직접 큐레이션하는 사례도 등장하고 있다. 1인 가구가 필요할 만한 생필품들을 모아 꾸러미로 만들거나 중고 도서를 팔면서 책과 어울리는 LP판을 함께 판매하는 식이다. 상상하기 어려운 이색 조합으로 눈길을 끄는 경우도 있다. 봄·가을용 재킷 2벌과 골뱅이 통조림을 묶어 팔며 호기심을 자극하는 등 나름의 판매 노하우를 동원해 중고거래를 즐긴다.17 사는 사람 입장에서도 가격을 두고 흥정하는 자체를 재미로 받아들인다. 과도한 흥정은 무례한 요구가 될 수 있지만 적당한 수준의 ‘밀당’은 마치 재래시장에서 값을 깎거나 덤을 받던 추억을 떠올리게 한다.

N차 신상의 세계에서 '1차 신상'이 살아남을 수 있을까?

중고마켓은 더 이상 낡고 오래된 2등 물건들의 집합소가 아니다. 첫 번째 주인이 되기보다 나만의 N번째 가치를 찾는 소비 문화가 시장의 패러다임을 바꾸고 있다. 박노해 시인은 ‘오래된 것들은 다 아름답다’라는 시에서 ‘오래된 것’을 가리켜 “낡아짐으로 꾸준히 새로워지는 것”이라고 노래한 바 있다. 끊임없이 누군가에게 새로워지는 N차 신상의 가능성은 여전히 무궁무진하다. ‘Useful’에서 ‘Usedful’로 소비자의 변화가 시작됐다. 이제 시장이 소비자에게 답해야 할 차례다.

Everyone Matters in the ‘CX Universe’ CX 유니버스 332

CX 유니버스

 

고객이 접하는 상품과 브랜드의 수는 폭발적으로 증가하고, 넘쳐나는 소비자 정보 속에서 고객충성도는 갈수록 떨어지고 있다. 이러한 상황에서 편의성을 좇는 소비자를 위해 브랜드를 관리하고, 디지털 트랜스포메이션Digital Transformation을 성공적으로 이뤄내기 위해서는 무엇이 가장 중요한가? 바로 고객경험, 즉 CXCustomer eXperience의 총체적 관리다. CX가 단편적인 접점 관리에 그치지 않고 마치 마블 유니버스처럼 특정 브랜드의 세계관을 함께 공유할 때, 『트렌드 코리아 2021』에서는 이를 ‘CX 유니버스’라고 부르고자 한다.

셀 수 없이 많은 디지털의 접점을 접하며 살아가는 오늘날, 소비자들은 모든 접점에서 마찰과 번거로움이 없는 매끈한seamless 고객경험을 원한다. 특히 체험 마케팅에 익숙한 MZ세대 고객들을 대상으로 한 CX의 차별화가 최우선의 시장 경쟁 전략이 되면서, 고객경험을 기획하는 일은 점점 고도화되고 있다. CX 유니버스를 구축하기 위해서는 ① 물 흐르듯 매끈한 심리스 경험을 제공하고, ② 고객의 자발적 데이터 제공 경험을 유도하며, ③ 색다르고 흥미로운 경험을 제공하는 것이 필요하다.

CX는 신뢰와 몰입을 거쳐 충성까지 가는 여정이다. 이 여정은 끝나지 않고 되먹임 되어 다음 구매 때 다시 시작된다. 이 과정은 반복될수록 확고해지는데, 이를 ‘CX 사이클’이라고 한다. 충성 고객이 사라진 시대, CX 사이클은 고객충성이라는 황금알을 낳을 수 있는 거위다. 마블 유니버스처럼 팬덤을 만들고 고객이 브랜드와 함께 자신이 원하는 세계를 확장해나가는 즐거움을 누리게 하고 싶다면, 2021년을 CX 고객경험 혁신의 원년으로 삼아야 할 것이다.

‘Real Me’: Searching for My Own Label 레이블링 게임 356

레이블링 게임

 

나를 꽃으로 표현한다면 무슨 꽃일까? 혹은 색깔이라면, 브랜드라면? 최근 다양한 유형의 자기진단 테스트가 인기다. MBTI·꼰대레벨·학과 테스트 등 각종 자기성향 유형화 테스트가 급격히 유행하는 것은 다원화된 현대사회에서 ‘찐(진짜)’ 자아를 찾으려는 현대인의 갈구로 해석할 수 있다. 한 사람이 여러 개의 정체성을 동시에 갖는 ‘멀티 페르소나’의 시대, 한 사람에 대해서도 맥락에 따라 다양한 큐레이션을 실시하는 ‘초개인화’의 시대에 “나는 누구인가?”는 스스로도 대답이 쉽지 않은 질문이 됐다.

사회적 접촉이 현격히 줄어들며 실존적 불안을 가중시키는 팬데믹 시대의 현대인이 ‘내 안의 나’, 자기정체성을 찾는 과정을 일컫는 ‘레이블링 게임Labeling Game’이라는 용어를 새롭게 제시한다. 이는 자신에게 스스로를 규정하는 딱지를 붙인다는 의미로서, “자기정체성을 특정 유형으로 딱지(레이블)를 붙인 뒤, 해당 유형이 갖는 라이프스타일을 동조·추종함으로써 정체성의 불확실성을 해소하려는 게임화된 노력”을 말한다. 레이블링 게임은 현실의 자아를 확인해줄 뿐 아니라 타인과의 공유와 비교를 통해 ‘자기정체성 찾기’ 놀이로 진화하기도 한다. 나의 정체성에 대한 고민이 일상에서 소비의 즐거움으로 치환되는 것이다.

소비 사회를 사는 현대인에게 자아란 단지 철학적 영역에 머무르지 않는다. 이제 소비자들은 각종 테스트를 통해 자기정체성을 확인하고 이에 따라 자기 유형에 맞춘 소비를 하게 됐다. 과거에는 자신을 표현하기 위해 자기정체성에 맞는 브랜드를 선택했다면, 이제는 “이런 브랜드를 구매하는 걸 보니 나는 이런 사람”이라는 역의 인과관계가 성립하는 것이다. 레이블링 게임이 우리 산업에 의미하는 바는 이제 브랜드는 브랜드 정체성과 타깃 고객의 자기특성이 정확히 들어맞는다는 느낌을 줄 수 있어야 한다는 점이다. 소비자와 쌍방향으로 소통하며 자발적인 정체성의 동일시를 이룰 수 있을 때, 새로운 트렌드를 이끄는 브랜드로 성장할 수 있을 것이다. 분명 쉬운 일은 아니지만, 브랜드의 미래는 바로 이 동일시에 달려 있다.

‘Ontact’, ‘Untact’, with a Human Touch 휴먼터치 380

휴먼터치

 

코로나19 사태로 가장 조명받은 트렌드는 ‘언택트untact’ 기술이다. 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언택트 기술이 지향해야 할 방향은 인간과의 단절이나 대체가 아니라, 인간적 접촉을 보완해주는 역할이어야 한다는 점이 부각되고 있다. 역설적이게도 ‘휴먼터치Human Touch’의 필요성이 커진 것이다. 온라인과 오프라인이 혼재한 시장에서 소비자가 구매 결정을 내리는 가장 중요한 순간인 ‘진실의 순간’에 반드시 필요한 것이 바로 휴먼터치다. 진정한 공감대를 이끌어내는 능력은 여전히 인간에게 있기 때문이다. 휴먼터치를 구현해나가기 위해서는 ① 고객 중심의 공간과 동선 꾸미기, ② 인간적 소통의 강화, ③ 기술에 사람의 숨결 불어넣기, ④ 내부 조직 구성원들의 마음 챙김이 중요하다. 장시간 이어지는 온라인 접속 상태는 인간의 연결 강박을 강화시키며 오히려 더 큰 외로움을 느끼게 만든다. 화상회의 시스템도 전에 없던 스트레스를 주고 있다. 나만 따돌려질지 모른다는 FOMOFear Of Missing Out 증후군과 디지털 패러독스에 따른 외로움을 극복할 수 있는 능력을 기르는 것이 그 무엇보다 중요한 과제가 될 것이다.

휴먼터치가 의미하는 바는 인간적인 손길을 기술로 만들거나 기술을 최대한 인간적으로 만들겠다는 것이 아니라, 말 그대로 “인간의 손길은 여전히 필요하다”는 점이다. 휴먼터치는 사실 대단한 첨단 기술이 필요하거나 세계적인 큰 기업만 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 소비자의 마음에 다가가는 진정성을 가진 조직이라면 누구나 실천할 수 있는 기본 중의 기본이다. ‘브이노믹스’ 키워드에서 언급했듯이, 코로나19 사태는 우리로 하여금 ‘기본’에 대해 다시 돌아보게 만들었다. 불가항력의 역병이 창궐하고, 첨단 기술은 빛의 속도로 앞서나가며, 트렌드는 숨 가쁘게 바뀌는 어려운 시대다. 『트렌드 코리아 2021』이 이 변화의 삼각파도에서 살아남을 수 있는 가장 중요한, 그리고 마지막 키워드를 제시해야 한다면 그 답은 하나, 바로 진심이 담긴 인간의 손길이다.

넓은 운동장을 가득 채운 건 사람들이 아니라 응원의 메시지가 적힌 플래카드들이었다. 학생도 학부모도 보이지 않는 운동장에서 그 어느 때보다 조용하고 작은 졸업식이 시작됐다. 학사모를 쓴 학생들은 각자의 차량에 탑승한 채 졸업장을 수여받았다. 2020년 8월 21일, 홍익대학교 서울캠퍼스에서 진행된 드라이브 인Drive-In 졸업식은 코로나19 여파로 대면 졸업식이 어려워지자 학교와 KT가 손잡고 학생들이 직접 학위증서를 받을 수 있도록 마련한 행사다. 졸업식 전 과정은 KT와 홍익대 공식 유튜브 채널에서 생중계됐으며, 행사장 전면에 설치된 대형 전광판을 통해 각자의 공간에서 졸업식에 참석한 학생과 학부모의 모습도 담았다. 졸업식을 기다려온 학생들에게는 아쉬우면서도 한편으로는 따뜻한 위로와 축하의 장이 됐다. 졸업식뿐 아니라 비대면 방식으로 결혼식을 연 커플도 있다. 이들은 유튜브를 통해 결혼식을 생방송으로 진행하며 양가 친척 및 지인들과 축하 메시지를 실시간 영상으로 주고받았다.

두 사례는 모두 KT가 2020년 4월부터 시작한 ‘마음을 담다’ 캠페인의 비대면 소통 시리즈 ‘마음: TACT(마음택)’의 일환으로 진행됐다. 사회에 첫발을 내딛는 졸업생, 결혼식이 연기된 예비부부 등 인생의 새로운 출발선에 선 이들이 낙담하지 않도록 기업이 적극적으로 나서 온라인 라이브 방송을 지원한 것이다. 일방적 행사 홍보에서 벗어나 사람들의 마음을 헤아리고 어루만져주는 기업의 노력이 언택트untact의 시대를 감성적인 터치로 컨택트contact하고 있다.

코로나19라는 유례없는 상황에서 디지털 트랜스포메이션의 속도가 이전과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빨라지며, 더 많은 사람들이 비대면 서비스의 편리함과 효율성을 경험하기 시작했다. 그런데 언택트 사용이 늘어날수록 디지털 기술의 한계도 더욱 명확하게 드러나고 있다. 디지털 기술에만 의존하게 되면 인간적 공감과 스킨십의 가치가 쉽게 묻혀버리기 때문이다. 감성적 공감과 따뜻한 체온으로 스킨십하는 휴먼 감성이 그 어느 때보다 중요해지고 있다. 첨단 기술이 발전할수록 역설적으로 사람의 따뜻한 감성에 대한 목마름이 강렬해질 것이다.

필요성: 언택트 기술을 보완하는 휴먼터치

언택트 기술과 문화가 자리 잡아가고 있는 이 시대에, 휴먼터치가 왜 필요한가? 이 질문의 답은 미국에서 가장 주목받고 있는 언택트 건강관리 기업 ‘눔코치’가 인간적 손길을 어떻게 활용했는가를 보면 잘 알 수 있다.

 

AI가 따라오지 못하는 인간 코치와의 공감

눔코치는 한국 청년 정세주 대표가 2007년 뉴욕에서 창업한 이후 1억 달러가 넘는 투자 유치에 성공하고 전년 대비 4배가량의 성장을 거듭하고 있는 디지틸 헬스케어 서비스 회사다. 처음 눔코치의 목표는 헬스케어 분야에서 가장 뛰어난 IT 기술을 가진 회사가 되는 것이었다. 그래서 초기에는 모든 초점을 기술에 맞췄고, 극소수를 제외한 대부분의 직원을 엔지니어로 채웠다. 그러나 뛰어난 기술에도 한계가 있었다. AI의 알고리즘이 아무리 정교해지고 흥미를 유발하는 게임 요소 gamification를 도입한다고 해도 사용자가 혼자 스스로 건강 관리를 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지속적인 동기부여와 흥미 유발이 무엇보다 중요했다. 결국 눔코치는 사용자에게 진짜 사람을 붙여주기로 했다. 휴먼터치가 결합된 것이다. 다이어트는 사람의 마음이 중요한데, AI 기반 코칭 알고리즘만으로는 사용자들의 운동 의지·스트레스·귀찮음 등의 감정까지는 세밀하게 헤아리기가 어렵기 때문이다. 먼저 회원들에게 이메일로 응원의 메시지를 보내고 다이어트의 고충에 공감해주며 식사나 운동 관련 궁금증에 대해 구체적인 답변 등을 제공하자, 회원들의 만족도가 높아졌다. 마라톤을 할 때의 페이스메이커pacemaker와 같은 역할을 한 것이다.

가장 중요한 것은 사람 코치의 역할이었다. 눔코치는 사용자에게 일대일로 사람 코치를 붙이되, 역으로 AI가 사람을 보조하는 방식을 도입했다. 사람과 AI가 협업해서 코치 1명이 20명이 넘는 회원을 관리할 수 있게 하자는 아이디어였다. 자동 응대가 가능하거나 반복적인 일은 AI에게 맡겨 사람의 노동을 대체하게 함으로써 효율적인 코칭이 가능해졌다. 기술을 활용해서 사람이 잘하는 것은 더 잘할 수 있도록 돕고 기술적으로 가능한 것은 기술에 맡기는 하이브리드hybrid 접근 방식인 셈이다. 눔코치에서 사람의 역할은 ‘지적인 대화rich conversation’를 만들어내는 것이다. 2015년 10월부터는 기존 AI 기반 앱에 인간 코치를 붙이고 일대일 원격 상담 서비스를 강화하면서 가격을 올렸는데 가입자는 오히려 늘었다. 사용자들은 저가의 획일화된 서비스가 아니라 더 비싸더라도 나만을 위한 맞춤형 건강 코치가 필요했던 것이다.

눔코치의 사례는 소비자가 구매를 결정하고 서비스의 지속적인 유지를 마음먹게 하는 ‘진실의 순간MOT, Moment of Truth’을 만드는 가장 강력한 힘은 사람의 손길, 즉 휴먼터치에서 나온다는 점을 잘 보여준다.

전망 및 시사점

인간의 손길은 여전히, 언제나 필요하다

스타벅스는 이제 단순한 카페가 아니라 디지털 기업으로 자리 잡았다. 하지만 데이터기술 기업을 표방하고 있는 스타벅스도 휴먼터치의 중요성을 설파한다. 스타벅스의 CEO인 케빈 존슨Kevin Johnson은 다음과 같이 강조한다.

 

“로봇이 바리스타를 대체하는 이야기를 하는 것이 아닙니다. 디지털 트랜스포메이션을 통해 바리스타가 좀 더 자유로워지면서 음료를 만드는 데 더 능력을 발휘하고 고객에게 조금 더 가까이 다가갈 수 있도록 지원해주는 것을 표방합니다.”

이 말을 다시 표현하면, 인간적인 손길을 기술로 만들거나 기술을 최대한 인간적으로 만들겠다는 것이 아니라 말 그대로 “인간의 손길은 여전히 필요하다”는 것이다. 앞서 설명했듯이 온라인과 오프라인을 넘나드는 고객 여정Customer Journey에서 고객을 붙잡을 수 있는 ‘진실의 순간’은 인간의 손길이 느껴지는 그 순간이다. 카페에서 고객이 느끼는 가장 중요한 순간은 에스프레소 머신이 아니라 커피를 내리는 바리스타의 손길과 커피를 전달하는 매니저의 미소에 의해 비로소 결정된다. 핵심 품질을 결정하는 가장 중요한 순간은 바로 휴먼터치의 지점이라는 것이다.

휴먼터치는 사실 대단한 첨단 기술이 필요하거나 세계적인 큰 기업만 할 수 있는 일이 아니라, 소비자의 마음에 다가서기 위한 진정성을 가진 기업이라면 누구나 실천할 수 있는 기본 중의 기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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